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9일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나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에서 오찬을 마친 뒤 산책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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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선택에 여권의 운명이 달렸지만, 그 답을 내놓아야 할 윤 대통령은 침묵하고 있다. 지난 7일 12·3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대국민사과 뒤 닷새째 관저에 칩거 중인 윤 대통령은 소수 참모에게 현안 보고는 받고 있지만, 하야와 탄핵이란 정치적 선택지에 대해 조언을 구하지도, 자기 생각을 공유하지도 않고 있다고 한다.
법조계 일각에선 윤 대통령이 검사 선배인 김홍일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중심으로 변호인단을 꾸려 수사와 탄핵에 대비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김 전 위원장은 최근 법무법인 세종에 사표를 냈다. 한 대형 로펌 인사는 “윤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든, 혹은 탄핵을 당하든 내란 수사의 물길을 막아야 하는 처지”라며 “그 어떤 대형로펌도 윤 대통령의 사건은 맡고 싶지 않아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칩거 중인 사이, 오랜 지인과 전·현직 대통령실 참모들은 과거 윤 대통령의 발언을 근거로 향후 행보를 관측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과거 야당이 자신에 대한 탄핵을 언급할 때면 “나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다르다. 내가 그렇게 쉽게 무너질 것 같으냐”며 버럭 화를 내곤 했다고 한다. 2016년 10월 국정농단 의혹이 제기된 뒤 두 차례의 대국민 사과 후 탄핵 국면에서 속절없이 무너졌던 박 전 대통령과 달리 자신은 야당에 강경히 맞설 것이라는 취지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비상계엄과 관련해 대국민담화를 열어 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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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은 현직 검사 시절 국정농단 의혹 특검 수사팀장을 맡아 박근혜 정부의 붕괴를 생생히 목도했었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의혹에 대한 사과 요구가 빗발쳤을 때도 용산과 친윤계에서 반대 논리로 내세웠던 것이 이른바 ‘박근혜 반면교사론’이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로 국정농단이란 범죄가 기정사실화되고 여론에 휩쓸려 정권을 내줬다며, 섣부른 사과는 안 된다는 논거였다.
이들은 윤 대통령이 결국 자진 하야보단 탄핵을 당하고, 헌법재판소에서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정당성을 내세우며 여론전을 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전직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야당에게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것이 윤 대통령의 평소 생각이다.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여권 고위 관계자도 “헌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던 박 전 대통령과 달리, 윤 대통령은 직접 나와 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셀프 변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6년 10월 25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연설문 유출과 관련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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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인사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최근 참모들에게 계엄사태 당시 곽종근 특전사령관이 자신으로부터 “국회의원들을 끄집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발언과 관련해 “국회 관계자의 국회 출입을 막지 말라고 지시했다”며 여전히 비상계엄의 정당성을 항변했다고 한다.
다만 여당에선 탄핵보다 윤 대통령의 내년 2월, 혹은 3월 자진 하야를 통한 질서 있는 퇴진 로드맵이 국민의 혼란을 줄일 수 있는 더 나은 선택지란 입장이다. 검찰과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서 윤 대통령의 신병 확보를 위한 속도전을 펼치고, 국회에선 불리한 증언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탄핵까지 이어지는 장기전이 여권의 공멸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윤 대통령의 오랜 지인들도 윤 대통령에게 대국민 사과 뒤 자진 하야를 권유하고 있다고 한다. 복수의 전직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입장을 밝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에도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2021년 6월 9일 윤석열 대통령(당시 전 검찰총장)이 서울 남산예장공원 개장식에서 오랜 친구인 이철우 연세대 교수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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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윤 대통령 부부가 지난달 핸드폰을 교체하며 윤 대통령에게 쓴소리하던 법조계와 정치계 인사들, 그리고 옛 친구들과 연락이 끊기며 이같은 조언이 윤 대통령에게 제대로 전달될지는 미지수다. 전직 국민의힘 의원은 “윤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해왔던 사람들은 새 전화번호를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의 죽마고우로 알려진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1일 통화에서 “바뀐 번호를 알지 못한다. 주변 몇몇 사람이 ‘번호를 알려줄까’라고 물었지만 거절했다”며 “예전엔 텔레그램으로 쓴소리라도 전했는데, 이젠 연락이 아예 끊긴 상태”라고 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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