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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옷 입었네요? 1000만원 주세요"…'음주운전 헌터' 커플의 최후 [사건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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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지난해 11월 1일 새벽 전북 전주시 효자동 한 아파트 인근에서 음주운전을 한 남성(45·작은 빨간 원)에게 A씨 일당 중 한 여성(큰 빨간 원)이 욕설하고 있다. 당시 이 장면을 한 주민이 휴대전화로 촬영한 영상 캡처. 사진 피해 남성





공동공갈 등 혐의 징역 3년 선고



한밤중 여럿이 유흥가 주변에서 음주운전자가 모는 차를 뒤따라가 신고할 것처럼 협박해 수천만원을 뜯어내려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20대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과거 음주운전 혐의로 수감된 이 남성은 출소 후 여자 친구 등과 함께 일명 '음주운전 헌터'가 됐다가 또다시 징역살이하는 신세가 됐다.

전주지법 형사3단독(부장 정재익)은 6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공갈)과 사기·폭행·절도 등 8가지 혐의로 기소된 A씨(28)에게 최근 징역 3년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A씨와 연인 사이인 B씨(20대·여) 등 나머지 공범 4명은 공동공갈 혐의로만 징역 10개월~1년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범행에 가담한 10대 1명은 지난 10월 30일 소년부로 송치했다고 재판부는 전했다.

법원에 따르면 A씨는 2021년 4월 음주운전 혐의(도로교통법 위반)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은 뒤 창원교도소에서 복역했다. A씨는 지난해 7월 B씨와 다른 커플을 비롯해 지인 5명이 모인 자리에서 "내가 아는 사람이 음주운전자를 잡은 뒤 112에 신고하지 않는 대가로 1000만원인가, 2000만원인가 받았다. 우리도 이렇게 해보자"는 취지로 범행을 제안했다.

이후 A씨 일당은 지난해 8~11월 전주 일대 유흥가 등을 돌아다니며 범행 대상을 물색했다. 음주운전이 의심되는 차를 발견한 사람이 먼저 그 차를 뒤쫓으면서 휴대전화로 다른 이들에게 연락해 상대 차 위치와 상황 등을 공유하는 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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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 혐의로 입건된 남성이 지난해 11월 1일 본인 차를 막고 돈을 요구한 일당 중 A씨에게 받은 문자. 이 남성은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약식기소돼 벌금 600만원을 냈다. 사진 피해 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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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 의심 車 뒤쫓아 돈 요구



A씨 커플은 음주운전 의심 자동차를 뒤따라간 후 운전자에게 돈을 요구하는 역할, 다른 커플은 상대 차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 두 남성은 음주운전자를 붙잡은 현장에 합류해 돈 요구를 거드는 '바람잡이' 역할을 분담했다. 주로 외제 차나 고급 중형차를 범행 대상으로 골랐다.

조사 결과 A씨 일당은 음주운전자에게 "왜 운전을 X같이 하냐" "사장님, 술 마신 거 아니냐. '후' 불어 봐라" "경찰에 신고할까요"라고 겁을 줬다. 운전자가 "신고하지 말아 달라. 뭘 원하냐"라고 부탁하면 "루이비통 슬리퍼에 명품 옷을 입었네요" "신고하지 않을 테니 여기저기 연락해 돈을 구해 봐라"라고 말하며 1000만~2000만원을 요구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운전자 대부분이 A씨 일당의 요구를 거부하거나 스스로 경찰에 신고하면서 미수에 그쳤다.

A씨 일당은 지난해 10월 27일 오후 10시30분쯤 전주시 덕진구 장어집 인근 도로에서 C씨(70대)를 노렸다. A씨 커플은 승용차를 몰아 C씨가 운전하던 차 앞으로 갑자기 끼어들며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멈춰 세웠다. 일당 중 다른 커플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으로 C씨 차 앞을 가로막았다.

이들이 차에서 내려 C씨에게 다가가 "아저씨 술 드셨죠? 급정지해 사고 날 뻔했다"고 하자 C씨는 음주운전 사실을 인정했다. A씨 일당이 "봐줄 테니 1000만원을 달라"고 했지만, C씨가 인근 파출소로 걸어가 자수하는 바람에 범행은 불발됐다.

A씨 일당은 지난해 11월 1일 0시30분쯤 전주시 완산구 한 술집에서 D씨(45)가 술을 마시고 차를 운전하는 모습을 발견한 뒤 돈을 뜯어내려다가 주민 신고를 받고 경찰이 현장에 출동하면서 실패했다. A씨는 범행 과정에서 D씨가 몰던 차와 접촉한 일을 빌미로 병원 진료비와 합의금 명목으로 200만원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사흘간 D씨에게 전화와 문자 메시지로 "진단서를 넣으면 특수상해죄가 된다"고 협박했다. 그러나 수상한 낌새를 챈 D씨가 경찰에 고소하면서 A씨 일당은 덜미를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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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전북 전주에서 음주운전자를 협박해 돈을 뜯어내거나 청년을 끌어들여 시중은행에서 대출금을 가로챈 혐의 등으로 A씨 일당이 검찰에 송치됐다. 사진은 경찰이 밝혀낸 범행 흐름도. 김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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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누범 기간 중 범행"



경찰 수사 결과 사기 행각도 드러났다. A씨는 2022년 3월 한 은행을 속이고 전세 대출금 1억원을 가로챈 혐의도 받고 있다. 무주택 청년 주거를 지원하기 위한 정부 시책에 따라 국내 시중은행에서 일정한 요건을 갖춘 청년에게 형식적인 서류 심사만으로 돈을 빌려 주는 '청년 전세 대출' 제도의 허점을 이용했다.

A씨는 대출 광고를 보고 연락한 20대 2명을 범행에 끌어들였다. A씨는 이들에게 "무자본 갭 투자를 이용해 대출금을 받을 수 있다"거나 "1년간 대출 이자를 꾸준히 납입하면 큰돈을 주겠다"고 꼬드겼다. A씨는 청년 2명 명의로 서울 한 원룸 소유권과 전세 계약서 등을 허위로 작성한 뒤 은행 어플리케이션에 업로드하는 방식으로 전세 보증금을 챙겼다. 두 청년도 사기 혐의로 기소돼 징역 6~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이 밖에 A씨는 지난해 4~5월 전주시 송천동 한 마트에서 9차례에 걸쳐 한우 등심과 삼겹살·가스버너 등 216만원어치 물건을 장바구니째 훔친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성인이 된 2016년 이후 특수절도·공동공갈·사기 등으로 수차례 처벌받은 전력이 있고, 누범 기간 중인데도 자숙하지 않고 범행을 저질렀다"며 "진술 태도 등에 비춰 준법의식이 결여된 것으로 보여 일정 기간 수형 생활을 하면서 교화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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