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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 (수)

이슈 미술의 세계

중국인들도 ‘못 보는’ 그림들이 한국의 심장 서울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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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복판서 벌어진… ‘100년 수묵화 한중전’
국립현대미술관·중국미술관 ‘수묵별미’ 展

중국 유일한 국가미술관 함께
양국 공동 수묵채색화 첫 전시
쉬베이홍·우창숴 등 ‘1급’ 작품
대거 서울에서 처음 공개돼
국현 덕수궁관서 내년 2월까지


매일경제

쉬베이훙, ‘전마(戰馬)’(110.5×61.3cm).


중국 근대미술 작가 쉬베이홍(1895~1953)의 그림은 편편마다 ‘국화(國畵)’로 평가받는다. 국화란 중국적 기개의 정수를 표현한 작품을 뜻한다.

쉬베이홍 그림 중에서도 최정상 걸작으로 평가받는 한 점이 있으니, 1942년작 ‘전마(戰馬)’다. 이 작품은 중국 국가문물국 지정 ‘1급’ 예술품으로 분류돼 있어서 중국인도 쉽게 접근이 어렵다.

그런 ‘전마’가 한국에 왔다. 중국 유일의 국가미술관인 중국미술관과 한국 유일의 국가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이 ‘먹(墨)’이란 공통분모로 머리를 맞댄 전시 ‘수묵별미(水墨別美)’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1층과 2층에 빼곡히 들어선 한중 각 74점의 작품은 한중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2022년 전시 예정이었으나 팬데믹으로 미뤄져 이번에 한국을 찾았다. 먼저 한국에서 개최된 뒤 내년 중국을 순회한다.

한중 미술 거장들이 서로에게 응전하듯 대화하는 이번 전시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은 ‘전마’다.

쉬베이훙이 이 그림을 그리던 때는, 전쟁의 미래에 나라의 중국의 국운이 달렸던 절체절명의 시기, 즉 중일전쟁 와중이었다.

한 마리 말의 위풍당당한 풍채와 결기만이 ‘전마’의 탁월성은 아니다. 당시만 해도 수묵화는 풍경화, 산수화, 정물화가 주를 이뤘는데 쉬베이홍은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이 그림을 그렸고, 이를 통해 서구적 사실주의를 동양식 수묵화에 결합하는 최초의 시도를 감행했다.

배원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전투마가 발걸음을 멈추고 황량한 풍경을 갑작스럽게 되돌아보고 있다. 중국 회화의 방향성을 제시한, 동양 수묵화의 교과서적 작품”이라고 ‘전마’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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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숴, ‘구슬빛’(139.6×69cm).


우창숴(1844~1927)의 1920년작 ‘구슬 빛’도 중국 국가문물국 1급 작품으로 이번에 한국을 찾았다.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그린 검은 필치 이면에서 수묵의 자유를 획득한 듯한 작가의 호방한 정서가 묻어나는 그림이다. 무질서해 보이는 먹의 흐름은 우창숴 내면의 기세를 짐작케 한다.

역시 1급 문물인 치바이스(1864~1957)의 ‘연꽃과 원앙’은 그 그림이 갖는 중국 내부의 상징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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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바이스, ‘연꽃과 원앙’(137.7×67.8cm).


치바이스는 중국 예술 대가로 평가받는 또 한 명의 인물이다. 그는 이 그림에서 거대한 연잎은 먹의 농담으로, 연꽃은 새빨간 물감으로 대비를 이루게 했다. 꽃잎의 빨강은 중국 사회주의를 암시한다. 더 자세히 보면 흐드러지고 뭉개진 검은 연잎의 작법과 달리, 이 붉은 꽃잎은 상방으로 우뚝하고 색의 경계선 역시 명료하다. 작가의 의도가 읽히는 지점이다.

그렇다고 이번 전시가 이념으로 경직된 것만은 아니다. 중국 역사를 풍자하는 랴오빙슝(1915~2006)의 1979년작 ‘자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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랴오빙슝, ‘자조’(65.5×49.5cm).


항아리에 갇혔던 한 지식인이 항아리가 깨진 뒤 손발을 옴짝달싹 하지 못하는 모습을 그렸다. 이 작품의 작화 시기가 문화대혁명(1966~1976) 직후임을 감안하면 이 그림에 내재된 비판 정신은 날카롭다. 퀭한 눈과 앙다문 입술은 경직된 사회, 부자유한 덫에 걸린 인간 심리를 포착해낸다.

특히 그림 위에 라오빙슝이 적은 ‘사인방이 사라진 뒤에야 나 스스로 그리고 나와 비슷한 종류의 사람들 비웃으려 이 글을 쓴다(四凶覆灭后写此自嘲并嘲与我相类者)’란 글귀는 꽤 비판적이다. ‘4인방’은 문혁 기간 동안 마오쩌둥 옆에서 권력을 장악했던 네 인물을 뜻하는 고유명사다.

한국 수묵채색화 거장의 작품은 이런 중국 화풍에 응수한다.

쉬베이홍의 ‘전마’ 때문인지 운보 김기창의 1955년작 ‘군마’가 먼저 눈에 어른거린다. 서로를 희롱하듯 엉킨 여섯 필의 말들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포효소리를 들어버린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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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창 ‘군마’(212x12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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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노 ‘구성’(169x129cm).


이응노의 1973년작 ‘구상’, 변관식의 1960년대 작품 ‘금강산 구룡폭’, 석철주의 1981년작 ‘외곽지대’, 조인호의 2017년작 ‘청풍-석문’ 등이 시대순으로 관객과 조우한다.

전시는 내년 2월 1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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