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된 아름다움은 편견일 뿐...
아름다움에 공식은 존재할 수 없어"
오는 20일까지...박여숙 화랑에서
서울 이태원 박여숙 화랑에 전시된 이헌정 작가의 달 항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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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하고 둥근 순백의 항아리.'
흔히 '달항아리'라고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다. 이달 20일까지 서울 용산구 박여숙 화랑에서 열리는 달항아리 도예전은 이런 달항아리를 기대하고 오는 관람객을 당황시킨다. 이른바 '한국적 미의 표상'이자 '완벽하게 둥근 조선의 달항아리'가 전시장엔 없다. 대신 모양이 찌그러지고 갈라지고 바닥이 내려앉은 16점의 항아리가 있다.
도예가 이헌정(57) 작가의 작품이다. 유명 인사들이 줄서서 작품을 사는 작가로 유명하다.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 인도 예술가 수보드 굽타, 할리우드 스타 브래드 피트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해 '예술가들의 예술가'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이 작가는 자신을 '여행자'라고 부른다. 한국, 미국, 포르투갈의 작업실에서 도예, 도자 가구, 벽화, 설치미술, 미디어아트 등 여러 장르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그는 이번 달항아리 작업을 '귀향'이라고 정의했다. "물레를 돌려 항아리를 만드는 작업은 저에게 초심이에요. 1년에 한 번씩은 집중적으로 물레를 돌리는데 고향에 돌아온 것만 같습니다. 흙과 내 자신만 있을 뿐이거든요. 조각이 흙을 선택해 달려드는 작업이라면, 달항아리 작업은 흙에 의해 선택되는 작업이죠."
이 작가의 항아리는 왜 틀어지고 무너진 모습일까. 달항아리의 정의와 아름다움에 대한 규정을 비틀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형화된 달항아리를 탈피한 각양각색의 도자기에 유약을 칠했더니 가마에서 구워지는 과정, 무너지고 내려앉는 과정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는 "완벽한 형태와 빛깔을 만들어내기 위해 모든 조건을 통제하기보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항아리가 바람에 마르고 불을 통해 찌그러지고 뭉개지는 것을 그대로 수용해 작품의 일부로 남겨뒀다"고 설명했다.
"질문하지 않는 예술은 죽은 예술"
바닥에 내려앉은 일그러진 모양의 달항아리가 전시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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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지고 찌그러진 달항아리는 완벽한 달항아리를 추구하는 정통 도예가의 세계관과 충돌할 수 있지만, 이 작가는 개의치 않는다. 실험으로 충돌을 만들고, 새로운 미학을 선보이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믿기 때문. "달항아리의 미학은 완벽하지 않음을 받아들이는 자세에서 나온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물레에서 항아리와 사발을 빚으면서 완벽한 형태를 향해 가다가 우연적 요소가 개입되며 자연의 일부로 변해가는 과정을 남긴 것이죠. 감동은 완벽한 기술로 빚어낸 예술 그 너머에서 나와요."
이 작가가 작품에 불어넣고 싶었던 건 '시대정신'이다. 전시 제목을 '달을 닮을 항아리에게 아름다움을 묻다'라고 정한 것도 그런 이유. 예술가에게 '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는 그는 질문을 통해 이 시대의 미학을 찾아가고 있다고 했다. "21세기를 살면서 18세기에 만들어진 달항아리의 이미지를 모방하고 재생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저 역시 처음부터 도발적인 작업을 했던 것 아니에요. 틀을 깨려는 작업이 쌓이고 쌓이면서 때로는 파괴적인 형태로, 과감한 질감으로 나타나고 있는 거죠. 아름다움에 공식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예술가에게는요."
글·사진=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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