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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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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청약·위장임신…신혼부부 생존법 담은 80년대생 감독들의 독립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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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부부 생존법 담은 독립영화

'한 채' '딜리버리' 20일 개봉

불법 청약, 위장 결혼·임신…

80년대생 감독들의 요지경 세태극

중앙일보

영화 '한 채'(20일 개봉)는 안정적인 삶을 꿈꾸며 가짜 가정이 된 두 가족이 서로를 통해 진짜 집을 지어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 지적장애가 있는 30대 딸 고은(이수정)과 아버지 문호(임후성), 어린 딸을 둔 택배기사 도경(이도진), 두 가족이 아파트 불법 청약을 계기로 뒤얽히게 된다. 사진 씨네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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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딸 키우는 택배기사인데요. 브로커 통해서 소개받은 30대 여자랑 허위 혼인신고하고 신혼부부 특별공급 아파트 청약 넣기로 했거든요. 오늘 상대 여자를 처음 소개받았는데 지적장애가 있네요. 이거 어떡하죠?’

20일 개봉한 영화 ‘한 채’(감독 정범‧허장)의 주인공 도경(이도진)이 자신의 고민을 온라인 게시판에 익명으로 올리면 이런 내용이 될 법하다. 집 한 채 갖기 힘들고 육아 또한 만만치 않은 시대, 신혼부부의 매운 맛 생존법을 다룬 독립영화 2편이 나란히 개봉했다.

‘한 채’가 신혼부부 특공을 노린 가짜 커플의 불법 청약을 다뤘다면, 같은 날 개봉한 영화 ‘딜리버리’(감독 장민준) 또한 신문 사회면에 나올 법한 사연을 담았다. 피임 실패로 낙태를 하려던 백수 커플 미자(권소현)와 달수(강태우)가 유산 상속을 위해 아이가 필요한 불임 부부 우희(권소현)·귀남(김영민)과 뱃속 아기를 불법 거래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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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 채'(20일 개봉)에서 아버지 문호(임후성)와 여관방, 비닐하우스를 전전하던 지적 장애 여성 고은(이수정, 오른쪽)은 불법 청약을 계기로 만난 도경(이도진, 왼쪽)의 택배일을 돕게 되면서 그의 택배차량, 반지하방을 마치 집처럼 여기게 된다. 사진 씨네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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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작품 모두 내 집 마련, 물질적 풍요를 지상 목표로 삼는 세태 속에 가족과 생명의 가치가 경시되는 우리 시대 현주소를 되짚었다. 서스펜스 가득한 전개(‘한 채’), 허점투성이 캐릭터 코미디(‘딜리버리’) 등 장르적 재미도 놓치지 않았다. 1980년대생 감독들이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또래 세대의 요지경을 비췄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빌라왕' 시대, 내 집 '한 채'가 인생을 책임져줄까



‘한 채’는 2022년 깡통 주택을 수천 채 보유하고 전세 보증금을 세입자에게 돌려주지 않아 적발된 악질 임대인, 일명 ‘빌라왕’ 사건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공동 연출을 맡은 정범(37)‧허장(40) 감독은 “집 한 채를 소유하는 것이 과연 우리의 안정된 삶을 책임져 줄 수 있을까”란 질문에서 출발해 물리적 집 자체보다 집 한 채를 채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나갔다.

지적 장애가 있는 30대 여성 고은(이수정)과 아버지 문호(임후성) 부녀는 집을 얻기 위해 홀로 딸을 키우는 젊은 남자 도경과 가족 행세를 한다. 상황 설명을 절제한 채, 관객이 극 중 사건을 쫓게 만들어 긴장감을 극대화한 연출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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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 채' 공동 연출한 정범, 허장 감독과 주연 배우들이 지난 4일(월)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진행된 언론 시사회 후 간담회에서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가졌다. 사진 씨네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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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경과 가짜 커플 사진을 찍는 초반 장면부터 어쩔 줄 모르는 고은에게 이 사기극은 아빠와 약속한 '소꿉놀이'다. 청약에 당첨될 때까지 도경의 반지하방에서 더부살이하게 된 문호는 목욕도 혼자 못하는 고은을 도경에게 맡겨두고 돈 벌러 다닌다. 어린 딸을 월셋집 사는 누나에게 맡겨두고 일을 하는 도경은 서류상 부부일 뿐 생판 남인 고은을 택배 차량에 태우고 다니며, 목욕할 때 등까지 밀어주는 처지가 되자 난감하기만 하다.

자칫 불행한 사고라도 날까 봐 관객도 덩달아 불안해진다.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만 갖고 삶을 건 도박에 나선 주인공들처럼, 각 인물이 어떤 됨됨이를 가졌는지 마지막까지 지켜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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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딜리버리’(20일 개봉)에서 금수저 우희(권소현, 왼쪽 두번째)는 딸이 철들길 바라는 아버지(명계남)의 유산 상속 조건에 맞춰 산부인과 의사인 남편 귀남(김영민, 맨왼쪽)과 짜고 임신한 척 위장한다. 백수 미자(권소현, 오른쪽 두번째) 달수(강태우, 맨오른쪽) 커플이 임신한 아기를 출산하면 자신의 아기로 바꿔치기하려는 속셈이다. 사진 마노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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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고은을 위해 안정된 보금자리를 원하는 문호와 분양권을 팔아 새출발하려는 도경, 다르면서도 닮은 두 아버지의 사연을 데칼코마니처럼 펼쳐낸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현장감이 생생하다. 주연 배우를 제외하고 일반인 배우를 동원해 통제하지 않은 현장에서 서민의 삶을 들여다보는 듯한 일상적인 장면들을 담아냈다.

대학원(단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영화과 동기인 두 감독이 각각 연극 조연출(정범), 영화 프로듀서(허장) 경험을 살려, 3개월 간 20번 이상 사전 리허설을 거쳤다. 지난해 부산 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 선정돼 “영민한 구조와 인물들의 표정과 품성과 관계에 주목하게 만드는 연출 형식”을 칭찬 받으며 LG올레드 비전상‧시민평론가상 2관왕을 차지했다.



물질만능 시대의 뱃속 아기 불법 거래 '딜리버리'



‘딜리버리’ 역시 부산 국제영화제 같은 부문에 이어 이달 초 파리 한국영화제 페이사쥬 부문에 초청된 화제작이다. 제목은 영단어 '딜리버리(Delivery)'가 배달 뿐 아니라 출산을 의미한다는 점에 착안했다.

영아 유기 기사를 접한 장민준(35) 감독이 직접 아내와 임신‧출산 과정을 겪으며 느낀 바를, 대리모‧입양 가족의 엇갈린 입장을 통해 한바탕 소동극으로 풀어냈다.

‘금수저’ 우희가 백수 미자의 뱃속 아기를 사는 과정은 마치 건물 임대 계약처럼 그려진다. 열 달 간 매달 500만원의 월세를 지급하고 출산 후 아기를 넘길 때 5000만원 잔금을 치르는 계약이다. 미자 부부가 임신 기간 동안 편안히 지낼 수 있도록 빌트인 고급 아파트도 제공한다. 단, 아기가 기형아일 경우 계약은 무효가 된다.

게임 폐인 달수의 전세방에서 ‘짝퉁’ 명품 중고 거래를 하며 별생각 없이 살아온 미자는 뜻밖에 모성애에 눈 뜨게 되면서 철없는 달수와 어긋나기 시작한다. 자신이 불임이라 믿어온 우희는 산부인과 의사인 남편 귀남이 감춰온 비밀을 알게 되면서 결혼 생활 전체가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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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딜리버리' 장민준 감독이 지난 11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점에서 열린 영화 '딜리버리' 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4.11.11 ryousant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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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부모 됨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까지 나아가진 못하지만, 철들지 못한 부모 세대, 서로 간의 불신이 저출생의 한 요인이라는 자기 반성적 주제를 드러낸다. 영화 ‘마돈나’(2015)로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부문에서 주목받은 권소현과 걸그룹 포미닛 출신 권소현, 동명의 두 배우가 정반대 처지의 예비 엄마 역을 맡아 임신‧출산 전 과정을 실감나게 소화했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2020, JTBC), ‘눈물의 여왕’(tvN)에 출연한 배우 김영민이 오랜만에 독립영화로 돌아간 작품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KAFA)가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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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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