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스스터디 | CJ올리브영
현시점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기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년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해나가고 있는 ‘CJ올리브영’ 얘기다.
화장품·유통을 넘어 모든 업종으로 범위를 넓혀도 올리브영만 한 성장세를 보이는 곳이 없다.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연결 기준 매출 2조1192억원을 기록하며 사상 첫 2조원을 돌파한 데 이어 불과 2년 뒤인 지난해에는 3조8682억원까지 매출이 불어났다. 1999년 올리브영이 서울 신사동에 첫 매장을 오픈한 뒤 매출 1조원 달성까지 걸린 기간은 17년. 이후 5년 만에 2조원을 넘어서더니 3조원 돌파까지는 2년이 채 안 걸렸다.
지금이야 ‘K뷰티 절대 강자’로 평가받는 올리브영이지만, 지난 25년을 돌이켜보면 오히려 위기의 연속이었다. 약사와 갈등으로 사업 자체가 존폐 기로에 놓인 적도 있고, 뷰티 대기업이 자체 브랜드에 힘을 주는 과정에서 팔 상품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른 경험도 있다. 비교적 최근에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방문객이 급감하며 임대료만큼도 매출을 못 올린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올리브영은, 기어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내며 성장을 거듭했다. 올리브영이 위기를 극복한 과정에서 보여준 ‘역발상 혁신’은, 여러 글로벌 유통 기업에서도 모범 사례로 꼽을 만큼 평가가 좋다.
CJ올리브영은 수도권은 물론 지방을 중심으로 매장을 꾸준히 늘려가고 있다. 사진은 올해 6월 광주에 문을 연 ‘올리브영 광주타운’. (CJ올리브영 제공) |
위기 1 약사 반발로 사업 무산 위기
드러그스토어 → H&B → K컬처 ‘변신’
올리브영은 1999년 11월, 서울 신사동에 대형 매장을 내며 사업을 시작했다. 지금이야 ‘뷰티 플랫폼’ 인식이 강한 올리브영이지만, 당시만 해도 ‘드러그스토어’를 표방하며 출발했다. 올리브영은 약국과 소매점을 결합한 사업 모델을 국내에 들여오며 ‘한국 최초 드러그스토어’로 주목받았다. 당시 신사동 매장 면적 약 100평 중 25평 정도가 약국 공간이었을 정도로 의약품 비중이 높았다.
하지만 시작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대한약사회를 비롯해 국내 약국업계에서 ‘대기업의 영업권 침해’를 주장하며 격한 반발에 나섰다. 드러그스토어는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고 올리브영은 약사법 위반으로 고소까지 당했다.
올리브영은 과감하게 드러그스토어 모델을 내쳤다. 그리고 뷰티 카테고리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선회했다. 드러그스토어에서 건강·뷰티를 취급하는 ‘H&B스토어(헬스앤뷰티)’로의 변신이다. H&B스토어는 한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생소한 개념이었다. 외부 논란으로 자칫 사업을 접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아예 새로운 업태를 만들어내며 생존에 성공했다. 드러그스토어 특성상 젊은 고객 확보가 어려웠지만 H&B스토어로 변신 후에는 연령대도 낮아졌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2020년대 들어서는 H&B스토어를 넘어 ‘K컬처 플랫폼’으로 거듭났다. 단순히 상품을 사고파는 공간이 아닌, 외국인 고객이 한국 고유의 뷰티 정보를 공유하는 ‘뷰티 커뮤니티’로 업을 재정의했다. 해외 150개국을 대상으로 K-뷰티 상품을 판매하는 역직구 플랫폼 ‘올리브영 글로벌몰’이 성장을 거듭하고 있고 2023년 10월에는 사진과 리뷰 등을 통해 상품 정보를 공유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기능을 추가한 ‘셔터(Shutter)’ 서비스를 앱 내 구현했다. K뷰티 플랫폼으로 전환한 2023년 외국인 매출은 전년 대비 590% 넘게 급증하는 성과를 거뒀다.
최근에는 화장품 집중에서 벗어나 식품·전자기기·생활용품·K팝 음반, 여기에 와인과 전통주 같은 주류 판매에도 나섰다. 더 이상 H&B라는 카테고리만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 또 한 번 변모한 모습이다. 올리브영 관계자는 “K컬처 플랫폼 역할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 온오프라인 채널을 방문한 외국인이 뷰티뿐 아니라 K팝 앨범과 패션, 미용 가전, 먹거리 등을 함께 구경하고 구입하며 한국 문화 접근성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올리브영은 드러그스토어, H&B스토어를 넘어 K컬처와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 진화 중이다. 올리브영 매장을 찾은 외국인이 먹거리 설명을 듣는 모습. (CJ올리브영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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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2 우후죽순 대기업 로드숍
중소 K뷰티 발굴·육성 ‘돌파구’
H&B스토어로 입지를 다지고 있던 2010년경, 올리브영에 또 다른 위기가 찾아왔다. 아모레퍼시픽 등 올리브영이 판매하는 제품 공급 대부분을 차지했던 뷰티 대기업이 자체 브랜드 키우기에 집중하면서다. 미샤, 더페이스샵, 아리따움 등 자체 뷰티 로드숍이 국내 상권에 들불처럼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자사 로드숍을 우선하다 보니 올리브영으로 납품은 당연히 제한됐고, 올리브영은 매장에서 팔 상품을 구하지 못하는 지경에 처했다. 해외 뷰티 브랜드를 판매해왔던 외국계 H&B스토어 ‘왓슨스’ 같은 경쟁사는 위기에서 한 발짝 벗어나 있었다.
올리브영이 대안으로 찾아 나선 것이 바로 ‘중소 뷰티 브랜드’다. 제품력은 있지만 자본 부족으로 전국 판매 채널을 만들기 어렵고 마케팅 여력도 없는 중소기업 브랜드를 하나씩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생소하지만 경쟁력 있는 중소 브랜드를 적극 입점시키고 올리브영이 홍보·판매·마케팅을 돕는 방식으로 함께 브랜드를 알려나가는 전략을 택했다. 판매 채널에서 ‘K뷰티 인큐베이터’로의 변화다. 인지도가 높고 방문 판매 영업 역량이 월등한 대기업 뷰티 위주로 시장이 형성돼 있던 당시로서는 ‘도박’에 가까운 수였다.
중소 뷰티 입점 효과는 확실했다. 가성비가 뛰어난 새로운 뷰티 상품에 목말라 있던 소비자 수요를 제대로 건드렸다. 다른 로드숍에서 볼 수 없는 브랜드를 대거 만나볼 수 있는 채널로서 그 입지가 단단해져갔다. 2010년대 이후 메디힐, 아이소이, 닥터자르트, 닥터지 등 이른바 기능성 화장품 브랜드 중심으로 올리브영을 통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면서 시장이 급격히 커졌다. 현재 올리브영 입점 브랜드는 2400여개다.
이제는 올리브영과 중소 뷰티 브랜드 모두 ‘윈윈’한 모습이다. 올리브영에서 100억원 이상 매출을 올리는 브랜드 중 중소 브랜드 비중은 2020년 39%에서 2023년 51%까지 늘었다. 2019년 처음 올리브영에 입점한 스킨케어 브랜드 ‘토리든’은 2022년 100억 클럽에 입성 후, 지난해에는 매출이 4배로 뛰었다. 2021년 입점한 ‘넘버즈인’ 역시 최근 1년 올리브영 매출 규모가 3배 이상 증가했다. 올리브영을 통해 글로벌 브랜드로 거듭난 곳도 많다. 올리브영에서 연 1000억원 이상 판매하는 클리오와 라운드랩 등이 대표적이다. 이제는 해외에서 핫한 K뷰티 브랜드 덕에 올리브영 인지도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과거와는 반대되는 상황도 연출되고 있다.
올리브영의 K뷰티 발굴·육성 전략은 현재 진행형이다. 현재 전체 상품 80%를 국내 중소기업 브랜드로 채웠다. 협력사당 최대 10억원까지 융통 가능한 ‘상생펀드’를 조성해 올해 9월 기준 640억원 가까운 대출이 집행됐다. 협력사가 직접 라이브 방송을 제작할 수 있는 스튜디오·마케팅 툴·쇼호스트를 지원하는 ‘파트너 라이브’, 중소벤처기업부와 손잡고 신진 브랜드 글로벌 진출을 지원하는 ‘슈퍼루키 위드 영’ 프로그램도 중소 브랜드 육성의 일환이다.
2015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10년 차를 맞은 ‘올리브영 어워즈’도 중소 브랜드 입장에선 주력 마케팅 수단으로 떠올랐다. 한 해 동안 고객에게 사랑받은 상품을 부문별로 선정하고 공동으로 마케팅을 진행하는 연말 행사로, 국내 유망 중소 브랜드를 국내외에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올리브영 관계자는 “인디 브랜드 해외 진출 때 ‘올리브영 어워즈 1위 브랜드’라는 점을 앞세워 새 유통 채널을 뚫는 데 성공하는 등 좋은 사례가 계속 나오고 있다”며 “올리브영은 첫 10년간 계속 적자를 기록했을 정도로 중소 브랜드 알리기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이제는 신진 브랜드 등용문으로 자리를 확고히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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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영은 신진 K뷰티 브랜드 등용문으로 유명하다. 전국 판매 채널 구축과 마케팅 비용이 부담스러운 중소기업과 상생을 꾀한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진행한 ‘2023 올리브영 어워즈&페스타’ 모습. (CJ올리브영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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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3 팬데믹 때 방문객 급감
오히려 매장 늘려 온·오프 시너지
가장 최근 위기는 2020년 찾아왔다.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팬데믹으로 매장 방문객이 전년 대비 현저히 줄었다. 경쟁사를 비롯한 여타 유통 기업은 오프라인 채널을 축소하고 ‘온라인’에서 활로를 찾기 시작했다.
올리브영은 달랐다. 팬데믹 기간 동안 매장 수를 오히려 늘려나가며 온라인과 오프라인 채널을 함께 키우는 ‘옴니채널’ 전략을 택했다. 다른 매장이 철수한 상권에 올리브영 간판을 걸어 달며 외형 확장을 꾀했다. 2021년 1260개였던 전국 올리브영 매장은 올해 9월 기준 1369개까지 늘었다.
팬데믹 당시 유통업계 관계자는 입을 모아 ‘올리브영이 미쳤다’고 했다. 오프라인 매출이 급감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매장 수를 늘리는 모습에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매출 감소와 유지비 부담으로 적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주를 이뤘다. 경쟁사인 랄라블라와 롭스는 팬데믹 기간 동안 모든 오프라인 매장을 접고 사업 철수에 나섰다.
하지만 올리브영은 팬데믹 기간 동안 도리어 급격한 실적 개선을 이뤄냈다. 비결은 ‘온·오프라인 시너지’다. 전국 곳곳에 늘린 오프라인 매장을 도심형 물류 거점으로 활용, 늘어나는 온라인 배송 수요에 누구보다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다. 온라인 주문 시 인근 매장에서 전국 어디든 3시간 만에 배송하는 ‘오늘드림’ 서비스가 대박을 냈다. 기존 물류센터를 경유하는 방식보다 훨씬 빠른 배송이 가능한 덕에 주문량이 급증했고 온라인 회원 수도 늘어났다. 올리브영 전체 온라인몰 주문 건수 중 오늘드림 비중은 2021년 24.5%에서 지난해 41.3%까지 커졌다. 2017년 600억원 수준에 머물렀던 올리브영 온라인 매출은 지난해 1조원을 돌파했다. 올리브영 올해 9월 기준 자체 멤버십 회원은 2021년 1000만명을 훌쩍 넘어선 약 1500만명이다.
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온·오프라인을 모두 포함한 ‘옴니채널’ 전략은 올리브영 핵심 성공 요인이다. 오프라인 매장 확대가 빠른 배송을 가능케 했고 이를 토대로 온라인 매출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혁신”이라며 “팬데믹 기간 동안 단순 화장품 매장을 넘어 풀필먼트 서비스로까지 한 단계 더 진화한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올리브영 관계자는 “올리브영은 비수도권 매장 비중이 전체 43.4%로, 지방 매장을 계속 늘려나가고 있다. 전국 모든 고객이 온오프라인에서 동일한 쇼핑 편익을 누려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2025년까지 전국 20개 이상 도심형 물류센터를 단계적으로 구축해 지방 중소도시까지 퀵커머스 경쟁력을 강화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올리브영은 전에 없던 신시장을 개척해내는 역량으로도 정평이 났다. 왼쪽은 친환경, 비건, 안전 등 요소를 담아 올리브영이 카테고리화한 ‘클린뷰티’, 오른쪽은 팬데믹 기간 올리브영 제안으로 제품화에 성공한 ‘마스크팩 패드’ 제품군. (CJ올리브영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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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 트렌드, 한발 앞서 주도
클린뷰티·이너뷰티…新영역 개척
올리브영은 지난 25년, 3번의 굵직한 위기를 모두 기회로 바꾸며 현재에 이르렀다. 공통점은 외부 환경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했다는 점, 또 남들과는 다른 발상을 시도했다는 사실이다.
올리브영이 최근 뷰티 트렌드를 주도하는 비결도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올리브영은 전에 없던 새로운 뷰티 카테고리를 발굴해내는 데 정평이 나 있다. 대표 사례가 ‘클린뷰티’다. 2020년 초 올리브영은 ‘가치 소비’ 트렌드를 발 빠르게 읽어내 클린뷰티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었다. 비건 화장품, 리필 용기를 활용한 친환경 뷰티, 동물 실험 없이 만든 화장품 등 자체 기준을 만들어 여기 해당하는 브랜드에 클린뷰티 인증을 부여하는 정책을 시작했다. 매장마다 아예 클린뷰티 제품만 소개하는 공간을 따로 마련하고 신규 브랜드 발굴에 나섰다.
특징이 다소 모호했던 제품과 브랜드가 ‘클린뷰티’라는 구체적인 이름 아래 집결하면서 판매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올리브영 기초 화장품 내 클린뷰티 매출액 비중은 2020년 10.3%에서 지난해 22.7%까지 늘어났다.
지난해부터 육성 중인 ‘이너뷰티’ 카테고리도 비슷하다. 헬시 플레저 열풍을 반영한 새 카테고리로 콜라겐, 프로바이오틱스, 효소 등 미용 효과가 있는 먹는 화장품 시장을 한발 앞서 발굴, 최근 제품군이 빠르게 늘어나는 중이다. 올리브영 관계자는 “마케팅 포인트를 잡기 막막해하던 중소 브랜드가 올리브영이 만든 ‘클린뷰티’ ‘이너뷰티’ 키워드를 활용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며 “경쟁력 있는 다양한 중소 브랜드를 입점시키고 육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올리브영 역시 얻는 게 많다”고 말했다.
팬데믹을 거치며 급성장한 ‘마스크팩 패드’ 시장도 올리브영이 새로 만들어낸 영역이다. 얼굴에 붙이는 ‘시트팩’ 시장이 정체되는 가운데, 얼굴을 닦아내는 방식의 ‘패드’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봤다. 각질 제거 용도로 주로 쓰였던 기존 패드를 진정·보습용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았고, 여러 중소 브랜드에 먼저 제품 개발과 상품화를 제안했다. 아비브·스킨푸드·더마토리 등 브랜드와 협업으로 다양한 패드 제품을 선보였는데 이게 먹혀들었다. 마스크팩 패드 매출은 2021년(98%)에 이어 2022년(59%)과 지난해(67%)에 이르기까지, 매년 전년 대비 두 자릿수가 넘는 고성장률을 기록 중이다.
올리브영 관계자는 “신규 패드 육성을 통해 마스크팩 내 새로운 시장 수요를 만들었다. 최근에는 슬로우에이징 트렌드를 반영한 잡티 제거, 모공 탄력 개선, 겔 패드 등을 지속 선보이며 최신 뷰티 트렌드에 대응해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건웅 기자 na.kunwoo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5호 (2024.11.20~2024.11.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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