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달 31일 오전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2022년 5월 9일 당시 윤 대통령과 명태균씨의 통화 녹취록을 공개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더불어민주당이 지난달 31일 공개한 윤석열 대통령과 ‘정치브로커’ 명태균씨의 “김영선이를 (공천) 좀 해줘라” 통화 녹취록 파장이 거세다. 불법 여론조사 및 김건희 여사 공천개입 의혹 등 여러 갈래로 나뉘어있던 ‘명태균 의혹’이 순식간에 ‘대통령 공천 개입 의혹’으로 모아진 형국이다.
윤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여부를 두고 법조계는 여러 해석을 내놓고 있다. 특히 박근혜·노무현 전 대통령 선거개입 사건 판례가 거론된다. 박 전 대통령의 2016년 공천개입 사건의 경우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기소했던 사건이다.
윤석열·명태균 녹취록 공개 다음날인 1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대통령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취임 이래 처음으로 10%대 지지율(19%, 10월 29~31일 조사)이 나왔다. 김주원 기자 |
━
① 당선인은 선거법 적용 대상인가
당장 논란이 된 것이 통화 당시 윤 대통령의 ‘신분’이다. 민주당에 따르면 윤 대통령과 명씨의 이 통화는 대통령 취임 하루 전인 2022년 5월 9일 이뤄졌다.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이 보궐선거 공천을 확정받기 하루 전날이었다.
현행 공직선거법과 대통령직인수법 등은 ‘대통령 등 공무원의 선거개입’은 명시적으로 금지하지만, ‘당선인의 선거개입’에 대해선 별도의 조항이 없다. 현직 대통령으로 선거에 개입한 혐의를 받았던 박근혜·노무현 전 대통령과 하루 차이로 신분이 다른 셈이다. 박 전 대통령은 20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 공천에 개입한 혐의로 징역 2년이 확정됐다. 노 전 대통령은 17대 총선을 앞둔 2004년 2월 여당인 열린우리당 지지 선언으로 탄핵소추됐지만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에서 “선거법 위반은 인정되나 대통령의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기각한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경기도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2024 대한민국 소상공인대회 개막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대통령 당선인 신분의 ‘입법 미비’에 관해 민주당이 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한 사례도 있었다. 이성만 전 의원이 2022년 6월 “당선인도 정치적 중립 의무 적용 대상에 넣어야 한다”며 선거법 개정을 추진했으나 21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당선인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에 관한 법조계 해석도 갈렸다. “당선인 신분이라도 권력이 따르는 만큼 책임이 면제되긴 어렵다(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당선인은 공무원이 아니어서 선거법을 적용할 수 없다(공안부 부장검사)” 등이다.
여야 역시 1일 공방을 벌였다. 전날 녹취를 폭로한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공관위에서 나한테 들고 왔길래 김영선이를 좀 해줘라’라고 했다는 말이 공천개입이 아니면 무엇이냐”며 “당선인은 사실상 대통령의 직무상 권한을 갖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고, 공천이 확정 발표된 것은 통화 다음날, 즉 대통령 임기가 시작된 10일 오후”라고 공세를 벌였다.
반면에 친윤계인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처럼 30년 지기 친구의 당선이라는 사적 소원을 이루기 위해 청와대 직원을 동원하지도, 경찰에 하명수사를 지시하지도, 당내 경쟁자를 매수하려고 한 적도 없다”며 전 정권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을 거론하며 반박했다.
김 전 의원 공천 확정일이자 대통령 취임일인 ‘5월 10일’의 행적이 중요해졌다는 분석도 있다. 한 수도권 검사장은 “공천 개입이라는 행위가 종료된 시점에 공무원 신분이었는지가 관건”이라며 “5월 10일에도 행위가 이어졌다면 당선인일 때의 행위들도 일괄(포괄일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그놈의 헌법” 노무현 헌법소원 사건 보니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대운하 공약으로) 캬, 토론 한 번 하고 싶은데 그놈의 헌법이 못하게 한다”는 발언으로 화제였던 2007년 6월 2일 참여정부 평가포럼 특별 강연. 중앙포토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놈의 헌법” 발언 일화로 유명한 헌법소원 결정문에는 공무원의 중립 의무(선거법9조1항)에 대한 해석 단서가 나온다.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6월 참여정부 평가포럼에서 한나라당과 이명박 당시 대선 후보를 비판했다가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대통령의 선거 중립 의무’ 준수 요청을 받자, “자연인 노무현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법재판소는 2008년 1월 이 청구를 기각하며 “선거법상 공무원의 중립 의무 조항은 일반 공무원에겐 징계 사유, 대통령에겐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다”고 해석했다. 불이익 처분으로 이어지는 근거 조항이라는 의미다. 한 10년차 변호사는 “침익적 처분의 근거조항은 엄격하게 해석·적용해야 한다는 법원칙이 있다”며 “이런 견지에서는 당선인(윤석열)을 선거법 적용 대상으로 확대해석하긴 어려워 보인다. 다만 당선인 신분의 막강한 권한을 고려해야 한다는 현실적 측면에서는 충분히 반론이 제기될 만하다”고 말했다.
━
② 공천 ‘개입’으로 볼 수 있나
당선인을 ‘기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 등으로 해석해 윤 대통령에게 공직선거법 위반을 적용한다면, 이 다음 쟁점은 “공관위(공천관리위원회)에서 나한테 들고 왔길래 내가 김영선이를 좀 해줘라 그랬다”는 발언이 ‘공천개입’에 해당하는지가 된다. 선거법 공소시효는 통상 6개월이지만, 공무원의 직무·지위를 이용한 위법 행위에 한해 10년이다. 또 대통령은 불소추특권을 받는 만큼 임기 중 공소시효가 정지된다. 시효는 많이 남았다는 의미다.
2017년 9월 서울중앙지법 속행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징역 2년’ 박근혜 공천개입 사건 보니
박 전 대통령의 판례를 보면 박 전 대통령은 20대 총선에 앞서 비박계 인사의 새누리당 공천 배제를 목적으로 2015년 11월~2016년 3월 현기환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 등을 통해 속칭 ‘친박 감별용 조사’ 등 120여 회의 불법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당에 ‘친박 리스트’를 전달한 혐의 등이 “능동적·계획적 개입”으로 인정돼 2018년 징역 2년이 확정됐다. 국정원 특활비 5억원이 불법 여론조사에 사용된 점도 드러났다.
당시 법원은 대통령의 선거개입을 ‘단순 의견 개진’(합법)과 ‘능동적 의견 개진’(불법)으로 구분했다. 박 전 대통령은 “통상적·합법적 정당 활동으로 단순히 의견을 개진한 것에 불과하다”고 항변했지만, 법원은 “비박 배제, 친박 당선이라는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계획적·능동적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며 위법으로 판단했다. 요컨대 ‘뚜렷한 목적’ ‘계획적·능동적 행위’ ‘선거 영향 여부’ 등이 개입 판단의 기준인 셈이다.
━
③ 다른 개입 정황 더 있나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31일 오전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공개한 2022년 5월 9일 당시 윤 대통령과 명태균 통화 녹취록. 강정현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 점에서 녹취록 말미의 “말이 많네 당에서…” 부분이 눈길을 받는다. 한 재경지검 검찰 간부는 “여당 내부 반발에도 불구하고 김영선 전 의원이 다음날 무사히 공천을 받았다는 것”이라며 “법적으로는 다른 개입 정황이 있었는지 등 추가 사실관계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용산의 거짓 해명이 드러난 점도 의혹에 기름을 붓고 있다. 대통령실은 지난 8일 “(2021년 11월경) 대선 경선 막바지 이후 대통령은 명씨와 문자를 주고받거나 통화한 사실이 없다고 기억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취임 전날에도 통화한 사실이 공개된 31일엔 “특별히 기억에 남을 정도로 중요한 내용이 아니었다”고 말을 바꿨다. 녹취록 첫머리인 “공관위에서 나한테 들고 왔길래” 부분 역시 대통령실과 윤상현 당시 보궐선거 공관위원장이 일제히 “공천 관련 보고는 없었다”고 부인하는 상황이다.
김정민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 양수민 기자 yang.sumin@joongang.co.kr
▶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