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밀톤호텔 서편에 마련된 추모 공간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에 시민들이 두고 간 꽃다발과 조화가 놓여있다. 이날 이태원 참사 2주기를 맞아 서울을 포함한 전국 곳곳에서 추모 행사가 이어졌다. 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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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건 죄가 아니라고 2년 내내 억지로 되뇌였어요. 그런데 이 자리에 서니 다시 죄인이 된 기분이네요”
29일 오후 6시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밀톤호텔 서편. 2년 전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현장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존자 김모 씨(42)는 이렇게 말했다. 이날 참사 현장에 마련된 추모 공간 ‘10·29 기억과 안전의 길’ 앞에선 김 씨를 포함한 수십 명의 시민들이 길가에 조화를 내려놓고 묵념했다. 현장에 놓인 조화를 10분 넘게 멍하니 응시하던 김 씨는 “내가 살아나온 그 날 그 자리에서 159명이 죽었다는 사실이 2년 내내 나를 괴롭혔다”고 했다. 끝내 울음을 터뜨린 김 씨는 “잘 살 거다. 잘 살면 용서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2주기가 된 이날, 전국 곳곳에서 이태원 참사를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물결이 이어졌다. 이날 오후 6시 34분 참사 현장에는 이태원 참사 2주기를 기억하는 ‘행동독서회’가 열렸다. 오후 6시 34분은 참사 당일 112 신고가 처음 접수됐던 시각이다.
독서회 참가자들은 참사 2주기를 맞아 출간된 구술 기록집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를 함께 읽는 시간을 가졌다. 기록집 집필진 중 한 명인 정인식 작가는 이날 “2주기를 맞아 이 참사를 기억하고 더 많은 시민들과 이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시민들도 추모 행렬에 동참했다. 인천에서 1시간 반 걸려 이태원까지 왔다는 이정빈 군(16)은 “중학생 때 TV에서 쓰러진 사람들을 본 기억이 생생하다. 핼러윈이라고 마냥 신났던 어린 마음에 충격이었다”면서 “시간이 지나도 잊지 않기 위해 행사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오후 7시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광장에서는 시민들이 남긴 추모와 애도의 메시지를 함께 읽고 기억하는 ‘추모 메시지 낭독문화제’가 진행됐다. 문화제에 참여한 시민들과 희생자의 가족, 친구 등 지인들은 희생자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낭독했다. 희생자의 가까운 친구라고 본인을 소개한 이모 씨는 “내 알람소리를 듣고 깨서 ‘너 때문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며 투정을 부리던 언니가 그립다. 그렇게 불평하면서도 나를 위해 옥수수수염차를 끓여주던 언니가 너무 그립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업체 근로자로 일하다가 산재로 사망한 김용균 씨의 모친 김미숙 씨도 행사에 참여했다. 김 씨는 “참사를 겪은 유족분들에게 제가 도와줄 수 있는 건 돌아가신 분들을 기억하며 함꼐 행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연대로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행사 중 작은 소동도 있었다. 오후 8시 10분경 행사가 진행되는 와중 20대로 추정되는 남성이 술에 취한 채 집회 장소를 가로질러 가다 경찰에 제지당했다. 해당 남성이 이 과정에서 집회 참여자들 일부를 밀치려 하는 모습을 보이자 경찰이 이를 제압하는 등 실랑이가 벌어졌다. 약 3분간 실랑이 끝에 경찰이 해당 남성을 인솔하면서 상황은 일단락됐다.
추모는 전국 곳곳에서 이어졌다. 이태원참사경남대책회의는 이날 오후 6시 34분 경남 창원 옛 한서병원 문화광장에서 추모문화제를 열었다. 같은 시각 경기 수원시 수원역 문화광장과 대구 한일극장 앞에서도 추모 행사가 열렸고,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은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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