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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 꿈꾸던 아이, 이제 미래 교통수단 만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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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신권수 씨는 대우자동차와 한국지엠을 거쳐 현재 현대자동차 책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차량 개발·운전자 감정 인식 프로젝트 등을 맡았고 지금은 미래 항공 모빌리티(Advanced Air Mobility, AAM) 기체 전기 추진 시스템 개발랩에서 도심항공교통(Urban Air Mobility, UAM) 전기동력 추진체 개발에 몰두한다. 그의 이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따로 있다. 13년 차 레고 테크닉 창작가라는 점이다.

신 연구원은 국내 최대 레고 커뮤니티 '브릭인사이드' 창작대회에서 여러 차례 입상했다. '배거 288' '노천광산 디오라마' '트레일러 덤프트럭' 등 중장비와 자동차를 주제로 한 작품이 대표작이다. 2015년에는 레고 테크닉 창작 동호회 '다산'을 창단했다. 레고 브릭과 첨단 기술 사이, 얼핏 보기엔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두 세계를 잇는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우연한 만남, 운명적인 재회

"부유한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운명처럼 레고를 만났다." 신 연구원과 레고의 첫 만남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그 시절 레고는 지금처럼 정교한 세트가 아닌 벌크 브릭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레고와 사랑에 빠져 지냈다. "친구가 이사 가면서 레고와도 이별을 고했다"란 그의 말에서 아쉬움이 묻어났다. 인생의 전환점에서 그는 레고와 재회했다. "결혼하고 첫아이가 태어난 2012년이었다. 아이에게 줄 첫 선물을 고르다가 우연히 레고 프렌즈 시리즈를 발견했다. 과거 레고와는 전혀 달랐다."

수많은 레고 시리즈 중에서도 신 연구원은 테크닉 시리즈에 빠졌다. 이유를 묻자 그는 "'움직임'이다. 다른 레고 시리즈가 정적인 아름다움을 지향한다면, 테크닉은 동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장르다.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움직임을 구현하는 게 미션이다. 상상 속 움직임을 현실로 구현하는 과정이 희열을 준다"라고 대답했다.

장난감에서 엔지니어링 도구로


"레고는 얼핏 보면 장난감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내게 레고는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였다." 신 연구원은 레고로 자연스레 공학 지식을 배웠다. 브릭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형태가 무궁무진하게 변하는 것을 보며, 그는 엔지니어링 기초를 터득했다. "옛날엔 레고를 한다고 하면 인식이 그리 좋지 않았다. '어른이 무슨 장난감이냐'는 시선이 있어서 회사에서는 취미를 숨겼다." 하지만 상황은 극적으로 바뀌었다. 레고 마스터즈 한국판인 MBC '블록버스터'에 출연하면서부터 취미가 회사에 공식적으로 알려졌다. 이제는 타 부서에서도 레고 상담을 요청할 정도.

신 연구원은 "현재 미래 항공 모빌리티 개발을 담당하는데, 관련 모형을 만들어 달라는 '무언의 압박'을 받을 때도 있다"며 농담처럼 말했다. "레고 테크닉 작품 제작과 실제 엔지니어링 과정은 놀랍도록 유사하다." 신 연구원은 양쪽 모두 콘셉트 설정부터 시작해 샘플 제작, 수많은 시행착오, 테스트, 검증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한다. 놀라운 건 그가 회사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레고로 모델링해 답을 찾은 경험이다. "차동기어 문제를 레고로 구현해 답을 도출한 적이 있다. 자동차 코너링을 매끄럽게 만드는 차동기어 원리를 레고로 구현하며 실제 문제 해결에 적용했다."


창의력의 원천 '놀이의 힘'


신 연구원은 '놀이의 힘'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과거에는 일과 놀이가 완전히 분리됐지만, 요즘은 경계가 모호해졌다. 일이 놀이가 되고 놀이가 일이 되는 세상이다." 그는 놀이를 통해 길러지는 창의력, 문제 해결 능력,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집요함이 엔지니어링·공학적 사고를 기르는 데 도움이 됐다고 강조한다.

신 연구원에게 레고는 취미를 넘어 자녀와 소통하는 도구다. "다락방을 작업실로 사용한다. 아이들과 다락방에서 소통한다. 레고를 함께 즐기며 아이들 숨겨진 면모도 발견한다. 아이들 역시 창작가로 활동하는 내 모습을 신기해한다. 놀이로 끝내지 않고, 아이 작품을 실제 대회에 출품했다."

레고 입문자 부모에게도 조언을 전한다. "아이들과 레고를 할 때는 '놀이' 개념으로 접근했다. 완성을 강요하기보단, 브릭 3~4개로 만든 것에도 의미 부여하고 칭찬했다. 아이 눈높이에 맞춰 작게 시작해라. 바닥에 놓고 아이에게 자유롭게 조립하라고 하고 계속 피드백을 준다. 아이는 그 과정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


집의 다락방을 작업실로 사용하는 신권수 연구원. 권효정 여행+기자

집의 다락방을 작업실로 사용하는 신권수 연구원. 권효정 여행+기자


디지털 시대 레고의 매력

"디지털로 전환되면서 상대적으로 아날로그적 측면이 떨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지내다 보니 그건 아닌 것 같더라. 사람들이 디지털 시대에 너무 젖다 보니 뭔가 잃고 허전함을 느끼는 것 같다. 레고가 시대적 요구를 잘 포착했다고 본다. 아들이 하는 '레고 마인크래프트'를 보면 알 수 있다. 보통은 게임을 먼저 하고 제품을 구입한다. 아들은 레고를 먼저 하고 게임은 후에 알았다."

신 연구원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잠시 중단했던 해외 활동을 최근 다시 시작했다. "2019년부터 해외 전시를 다니기 시작했다. 첫 방문지는 일본 '재팬 브릭 페스트(Japan Brickfest)'였다. 중국 상하이 '에이폴(AFOL·Adult Fans of LEGO)' 행사에도 참가했다. 최근 6월, 다시 일본을 다녀왔다. 재팬 브릭 페스트에서 새 작품도 보고, 전 세계 작가들과 교류했다. 일본인뿐 아니라 미국, 호주, 유럽 작가들도 많이 왔다. 국내에만 있을 땐 안목이 좁았는데, 해외에 나가보니 규모도 다르고 작품에 담긴 생각도 달랐다. 해외로 더 많이 다녀볼 계획이다."

[권효정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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