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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국 대통령도 고개숙여 인사" 잊혀진 영웅 '버팔로 솔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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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저기서 ‘엄마’, ‘살려줘요’를 외치는 소리가 들렸어요. 마지막 남은 수류탄을 던졌죠. 그 고지에서 어린 흑인 병사 500명 이상이 죽었습니다.” "

1950년 8월 18살이던 제24보병연대 소속 제임스 톰슨 예비역 일등 상사(92·당시 이병)가 기억하는 서북산 전투다. 한·미는 임시수도 부산의 관문 경남 함안의 서북산(735m)을 놓고 북한과 19번을 뺏고 뺏기는 쟁탈전을 벌인 끝에 고지를 지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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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들로만 구성된 '버팔로 솔져' 부대 소속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제임스 톰슨 버팔로 솔져 전우회 회장(92)이 7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뉴저지=강태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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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가 낙동강 전선 사수에 성공하면서 인천상륙작전 등 반격의 계기가 마련됐다. 특히 톰슨 상사가 참여한 서북산전투는 최초의 한·미 연합작전으로, 지난 1일로 71주년을 맞은 한·미 동맹의 출발점으로도 평가된다. 그러나 당시 전투에서 미군의 주력으로 참전했던 제24보병연대가 차별받던 흑인으로 구성된 부대를 뜻하는 ‘버팔로 솔져’였다는 걸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다.



“동맹과 함께 피 흘린 흑인이 있었다”



지난 7일(현지시간) 뉴욕에서 2시간 반여 떨어진 뉴저지 외곽 커뮤니티센터 한편에 마련된 ‘버팔로 솔져 전우회’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만난 톰슨 회장은 빛바랜 사진 속 앳된 얼굴의 청년을 가리켰다. 경북 예천 낙동강 전선으로 향하던 74년 전 자신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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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들로만 구성된 '버팔로 솔져' 부대 소속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제임스 톰슨 버팔로 솔져 전우회 회장(92)이 1950년 7월 예천 전장으로 이동하면서 찍은 빛바랜 사진 속 자신의 모습을 가리키고 있다. 당시 톰슨 회장은 18세였다. 뉴저지=강태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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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흑인 병사들이 한국전에 참전하게 된 과정을 설명해달라.

A : “1948년 트루먼 대통령은 군내 인종 차별 철폐를 지시했지만, 백인 지휘관들은 이를 거부하고 흑인 부대를 따로 운용했다. 2차 대전까지만 해도 운송, 취사 등 비전투 업무만 맡겼다. 그런데 한국전 발발 직후 우리에게 참전 명령이 떨어졌다. 한국이 어딘지도 몰랐고, 거기서 총탄 운반을 할 거란 말도 들었다. 1950년 7월 13일 부산에 내려서도 백인들과 다른 보급품을 받았다. 그런데 우린 예천에 배치됐고 15일부터 전투를 치렀다.”

Q :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못했을 것 같다.

A : “사실 사격 훈련도 받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백인들은 대놓고 ‘우리는 너희들에게 아무것도 가르쳐 줄 수 없다’고 했다. 서울은 이미 북한에 넘어갔고, 우리는 그곳(낙동강 전선)을 지켜야 했다. 적들의 박격포로 병사들이 죽어 나갔지만, 우리는 전차나 포 등의 지원도 없이 소총만 가지고 북한 정예군과 맞서야 했다.”

전쟁 초기 급하게 투입된 흑인부대의 피해는 막대했다. 그럼에도 예천과 상주를 탈환하는데 성공했다. 한국전쟁 중 처음으로 거둔 승전이었다. 그러나 흑인들의 전공이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던 백인 장교들은 패했다는 거짓 보고를 했고, 승전 사실은 24연대를 구하기 위해 연대장이 예천에 도착한 뒤에야 확인됐다고 톰슨 회장은 전했다.



‘명예훈장’ 윌리엄은 사촌…아들은 한국 파병



톰슨 회장은 한국전쟁에서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받은 윌리엄 톰슨 일병의 사촌이다. 윌리엄은 1950년 8월 마산 방향으로 전선을 돌파하는 작전에 투입됐다가 고립되자 홀로 남아 기관총을 쏘며 동료들의 퇴각 시각을 벌었다. 윌리엄의 업적 역시 백인 장교들의 보고 누락으로 몇 달간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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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들로만 구성된 '버팔로 솔져' 부대 소속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제임스 톰슨 버팔로 솔져 전우회 회장(92)의 사촌 윌리엄 톰슨(왼쪽)은 한국전쟁에서 명예훈장을 받은 2명의 흑인 중 한명이다. 톰슨 회장은 사촌 위리엄이 전사한 마산 전선에서도 북한군과 맞서 싸웠다. 뉴저지=강태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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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에 있던 톰슨 회장의 부대도 사촌이 전사한 마산 서북산 전선 일대에 투입됐다. 서북산에서 1000여명의 미군이 전사했는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흑인이었던 이유다.

Q : 낙동강 전선을 지킨 이후엔 어떻게 되었나.

A : “백인들이 쓴 기록에는 나오지 않겠지만, 사실 서울을 처음으로 수복한 부대 역시 24연대였다. 우리가 선봉에서 북한군과 전투를 시작한 이후 해병대가 투입돼 서울을 되찾았다. 우리는 압록강까지 올라갔다. 우리에겐 겨울용 보급품도 지급되지 않았다. 너무나도 추웠던 기억이 난다. 당시 지휘부는 사상자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전투마다 선봉에 흑인부대를 세웠다. 그게 그들의 방식이었다.”

Q : 버팔로 솔져의 방식은 무엇이었나.

A : “북한군의 포로수용소 2개를 우리가 점령한 적이 있다. 포로들은 모두 백인이었고, 흑인을 포함해 유색인종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우리에게 흑인이라며 침을 뱉었던 사람들을 우리가 구했다. 우리는 목숨을 걸었고 결코 항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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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흑인들로만 구성된 '버팔로 솔져' 부대를 기념하는 전우회 사무실에 한국전쟁의 개요가 소개된 자료가 놓여있다. 버팔로 솔져가 참전한 예천 전투는 한국전쟁에서 처음으로 거둔 승전이었고, 그들이 주력으로 참여한 서북산 전투는 최초의 한미연합작전으로, 71주년을 맞은 한미동맹의 출발점으로 평가받는다. 뉴저지=강태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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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자녀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 같다.

A : “아들 넷과 딸 하나가 있는데, 3명이 군에 복무했다. 막내가 2005년 주한미군으로 가게 됐을 때 나는 ‘그곳은 명예훈장을 받은 너의 삼촌이 전사한 곳이고, 내가 동맹국 친구들을 위해 싸웠던 곳’이라고 말해줬다. 그리고 ‘너 역시 그들을 지켜주고, 그들을 위해 싸우라’고 했다.”



“고개 숙여 인사했던 박근혜 대통령”



아들 얘기를 꺼낸 톰슨 회장은 사무실에 놓인 태극기를 가리키며 “한국에서 받은 뒤 행사가 있을 때마다 반드시 가지고 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태극기가 더러워져서 길 건너 세탁소에 가져갔는데, 한국인 사장은 감사를 표하며 한 번도 돈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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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들로만 구성된 '버팔로 솔져' 부대 소속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제임스 톰슨 버팔로 솔져 전우회 회장(92)과 로버트 그로스(94) 예비역 일등 상사가 7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 사무실에 놓인 태극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저지=강태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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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정작 한국인들은 버팔로 솔져 자체를 잘 모른다.

A : “2013년 한·미동맹 기념식 만찬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났다. 박 대통령이 내 앞에 멈춰서 먼저 ‘버팔로 솔져 출신이냐’고 묻더니, 악수를 청하고 고개 숙여 ‘당신이 아니었다면 내가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며 몇 번이나 감사하다고 했다. 한국에 갔던 6000명 이상의 버팔로 솔져 중 이제 6명도 남지 않았다. 아쉽지만, 이후 한국 대통령 행사에 초대된 적이 없다.”

톰슨 회장과 함께 한국전에 참전했던 로버트 그로스 예비역 일등 상사(94)는 박 전 대통령 말이 나오자 그에게서 받은 ‘평화의 사도 메달’을 자랑스럽게 꺼내 보였다. 그러면서 “박 전 대통령이 사실 정답을 말한 것이었다”며 “역사를 잊어서는 동맹의 미래도 존재할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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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들로만 구성된 '버팔로 솔져' 부대 소속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제임스 톰슨 버팔로 솔져 전우회 회장(92)이 7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 도중,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메달을 보여주고 있다. 뉴저지=강태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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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앤디김 상원의원, ‘명예회복 법안’ 제출



24연대는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공식 해체됐다. 흑인과 백인을 나눠 구성했던 편제 등 미군 내 인종차별이 한국전쟁을 계기로 사라졌다는 의미다. 한국 정부는 전후 24연대에 대통령 부대 표창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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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인 앤디김 상원의원은 지난해 2월 흑인들로 구성됐던 '버팔로 솔져'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그들에게 '금메달 훈장'을 수여하기 위한 법안을 발의했다. 앤디김 의원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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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 이길현 주미대사관 보훈관은 “동맹에 기여한 분들의 명예를 찾는 것이 양국의 71년 혈맹을 미래로 발전시키는 첫걸음”이라며 “보훈부는 그동안 예우하지 못했던 버팔로 솔져 등을 더 늦기 전에 꾸준히 찾아뵙고 그분들을 예우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에선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2월 한국계 앤디김 상원의원이 ‘버팔로 솔져 부대에 대한 금메달 훈장 수여 법안(HR1222)’을 제출했지만, 법안은 진전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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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들로만 구성된 '버팔로 솔져' 부대 소속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제임스 톰슨 버팔로 솔져 전우회 회장(92ㆍ좌측)과 로버트 그로스(94) 예비역 일등 상사가 7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뉴저지=강태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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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법안이 왜 처리가 되지 않고 있나.

A : “한국에선 우리 부대가 가장 높은 명예인 대통령 훈장을 받았다. 하지만, 미국에선 부대원 중 사촌 윌리엄 등 두명이 명예훈장을 받았지만, 부대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만약 백인 부대였다면 벌써 부대 훈장을 받았을 거다. 앤디김 의원이 버팔로 솔져의 명예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김 의원도 노력하고 있지만, 그 역시 한국계 소수인종이다. 이제 나와 몇명이 사라지면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이 남지 않는다. 어쩌면 그들(백인)은 그 때를 기억하는 사람이 모두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Q : 양국의 후세에 남기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 것 같다.

A : “중공군 때문에 압록강에서 밀려내려오는 길에 내 또래의 어린 병사가 추위에 떨며 아군들이 무사히 후퇴하도록 홀로 경계를 서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는 ‘내가 뒤에 있을테니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라’고 했다. 캐나다 병사들은 우리들을 먼저 자신들의 트럭에 태웠다. 이런 것이 동맹이고, 모두가 평화롭게 함께 살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수많은 형제들과 군인들이 평화의 이름으로 목숨을 바쳤다. 양국의 젊은 세대가 진짜 역사를 잊지 않고, 왜 양국 관계를 왜 ‘혈맹’이라고 하는지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그래야 양국의 동맹도 지속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 '버팔로 솔져' 부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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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7월 14일. 부산에 도착한 흑인부대 '버팔로 솔져'들이 트럭을 타고 경북 예천 낙동강 전선으로 이동하고 있다. 버팔로 솔져 전우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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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팔로 솔져(Buffalo Sodiers)'는 흑인으로 구성된 미군 부대를 통칭하는 말이다.

흑인부대는 1812년 미·영 전쟁부터 참전했다. 남북전쟁(1861~65년) 때 18만 6000여명이 참전해 6만 8000명이 전사한 뒤, 미국 정부는 1866년 흑인부대를 제9기병연대, 제10기병연대, 제24보병연대, 제25보병연대 등으로 정식 편제했다.

이들의 이름 버팔로 솔져는 초기 미국 인디언들과의 전쟁 때 인디언들이 붙인 이름에서 유래됐다. 이들은 스페인 전쟁, 필리핀 전쟁 등 주요 전쟁 때마다 최전선에 투입됐다. 2차 세계대전 때는 24연대가 이탈리아에 파병됐고, 전후 일본에 주둔하다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됐다.

한국전에 참전한 24연대는 대부분 제대로 된 훈련을 받지 않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함창 전투, 마산전투, 서북산전투, 전투산공방전 등 전쟁 초기 대부분의 격전지 최전선에 배치됐다.

막대한 인명 피해 속에서도 이들은 한국전 당시 최초의 승리였던 예천 탈환 작전에 성공했고, 마산 전투에서는 서북산 고지를 점령하며 낙동강 전선을 방어했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24연대가 공식 해체되면서 흑인들로만 구성된 부대는 사라졌지만, 한국 정부는 전후 서북산 전투의 주력으로 참전한 24연대에 대통령의 부대 표창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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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들로만 구성된 '버팔로 솔져' 부대 소속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로버트 그로스(94) 예비역 일등 상사가 7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도중 한국전 참전 배지가 부착된 모자를 보여주고 있다. 뉴저지=강태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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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여러 활약에도 불구하고 인종적 편견을 가지고 있던 당시 보수적 백인 지휘관들이 보고한 이들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이었고, 흑인부대의 업적도 상당수가 왜곡돼 알려졌다. 1987년 미군은 흑인부대의 활동상에 대한 재평가를 실시해 “인종 차별, 불합리한 인사, 낮은 순위의 전투지원에도 불구하고 흑인연대는 맡은 바 임무를 수행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난해 2월 한국계 앤디김 상원의원은 버팔로 솔져의 업적과 이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법안을 제출했지만, 해당 법안은 2년 가까이 의회에 계류중이다.

뉴저지=강태화 특파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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