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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이순신 마지막 말을 바로잡습니다 "내 죽음을 숨겨야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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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출판사 '사투리의 말들' 시리즈
토박이 작가가 모은 사투리 문장들
충청도 은유법 구사하면 '코미디언'
우회하면서도 질문은 돌직구 그 자체
한국일보

유유출판사가 각 지역 토박이말을 통해 우리 언어 문화의 다양성을 살펴보는 '사투리의 말들' 시리즈로 최근 출간한 '충청의 말들'과 '서울의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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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을 숨겨야 써."

"내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는 충남 아산 출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말은 여기에 더 가깝지 않았을까. 단정한 서울말로 익숙한 만해 한용운의 대표작 '님의 침묵'만 봐도 그렇다. "날카로운 첫 '키쓰'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너노코 뒷거름처서 사러젓슴니다." 원본 속 이 구절은 당초 만해의 고향인 충남 홍성 방언 '사러졌다(사라지다)'로 쓰였다.

충북 청주에서 나고 자란 나연만(47) 작가는 최근 펴낸 책 '충청의 말들'에서 "방언으로 쓰인 시를 표준어로 바꾼 건 왜곡 아닐까"라며 "위인들의 말은 서울말로 전해진다. 어딘가엔 표준어를 써야 한다는 룰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서울말은 또 서울말대로 억울하다. 방언 전문가인 한성우(56)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는 책 '서울의 말들'에서 "이 땅의 모든 말은 사투리이고 서울에도 사투리가 있는데 사람들은 서울말이 곧 표준어라고 생각한다"고 항변했다.

느긋하고 감칠맛 나는 '충청의 말들'


'충청의 말들'과 '서울의 말들'은 유유출판사가 각 지역 토박이말을 통해 우리 언어 문화의 다양성을 살피고자 선보이는 '사투리의 말들' 시리즈로 지난 4일 출간됐다. 사공영 유유출판사 편집자는 "수도를 중앙으로, 지역을 지방으로 구분해 온 경향 탓에 사투리는 촌스럽고 교양 없고 공식적인 언어가 아니라는 편견이 공고했다"며 "글말이 되기 어려워 가치를 인정받을 기회도 없던 서울을 포함한 모든 지역어 문장들을 모아보면 재미있고 귀한 책이 되지 않을까란 생각으로 3년 전부터 시작된 기획"이라고 했다. 책은 소설, 영화, 드라마, 신문 기사 등에서 그러모은 사투리 문장 100개와 여기 얽힌 짧은 단상으로 구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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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의 말들'을 쓴 나연만 작가. 나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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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작가는 집필 제안을 받고 "충청인을 대표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억눌려 한참 고민"하다 "되것지, 뭐"라는 심정으로 수락했다. 책은 "여유 있고 느긋한 충청도 사투리에 은유적 표현이 결합"한 충청도식 유머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이를테면 충청 지역 경찰서에서 만든 과속 운전 예방 문구 "그렇게 급하면 어제 오지 그랬슈"나 코미디언 최양락의 "괜찮아유. 깨지니께 그릇이지, 튀어 오르면 공이지유" 같은 말들.

충청도 말은 표현은 우회하면서도 질문은 돌직구 그 자체라는 게 나 작가의 얘기다. 그는 "셔터 내린 가게 앞에 망연자실 서 있는 주인에게 '망했슈?'라든지 건강검진 받고 온 친구에게 '뭐랴, 암이랴?'하고 대놓고 묻는 게 충청도 말"이라며 "충청도 말로 은유법을 구사하는 사람은 그냥 코미디언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서울에두 사투리 있그든여"


한 교수는 "표준어가 아닌 서울말, 그리고 표준어에 대해 두루 아는 사람으로서" '서울의 말들' 저자로 낙점됐다. 서울말은 특히 표준어의 간섭으로 다루기가 어려운 탓이다. 그는 200여 년 전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 속에 쓴 표현 '뒤쥭박쥭'에서 서울말의 매력을 찾았다. "전국의 사람과 물산이 몰려드는 서울이니 이곳의 말은 뒤죽박죽이면서 융합된 말"이라는 것.

서울말에는 "색다른 재미와 유용한 정보, 코끝 시큰한 감동"도 있다. KBS 드라마 '추노'에서 남자끼리 부르던 '언니'는 본래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의 호칭이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쓰지 않는다. 임화의 시에 나오는 '옵바'는 피붙이 오빠였던 좁은 의미가 남편을 부르는 말로까지 확장됐다. 한 교수는 "재미있는 게 서울말이었던 언니, 오빠가 이제는 전 세계로도 퍼져나가기 시작했다"며 "영어의 시스터, 브라더가 살리지 못하는 말맛에 외국의 한류 팬들도 '알엠 오빠' '제니 언니'라고 하지 않느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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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말들' 저자 한성우 인하대 교수. 한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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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의 눈동자에 맺힌 사람 형상을 뜻하는 '눈부처'는 한 교수가 제일 아끼는 서울말이다. 그는 "15세기 문헌에도 나오는 말인데 말 자체가 너무 예쁘고, 지금 눈앞의 사람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어 특히 좋아한다"고 했다.

한 교수는 "서울 토박이가 쓰는 말, 서울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의 말, 스스로가 서울 사람이라고 믿고 쓰는 말 모두가 서울의 말"이라며 "그것이 표준어와 같고 다르고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사투리 하면 '그곳의 옛날말'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투리는 '지금 이곳의 말'이기도 해요. 나이 든 세대와 젊은 세대가 함께 살듯 지금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말까지 사투리로 포괄하는 게 맞죠. 이 땅의 모든 말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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