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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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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신화: 오공>으로 게임시장에서도 성공한 중국, 기술과 '이것'이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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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하 전 원광대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연구교수]
<검은 신화: 오공>의 성공

<검은 신화: 오공>은 2024년 8월 20일에 출시된 액션 RPG로, 고전 소설 <서유기>를 모티프로 펼쳐진다. <서유기>를 바탕으로 만든 문화 콘텐츠는 전통 희곡부터 2016년의 애니메이션 <신서유기: 몽키킹의 부활> 등 수도 없이 많았지만, 대체로 소설을 그대로 시각화하는 데 그쳤다.

반면 게임 <검은 신화: 오공>은 <서유기>의 시퀄에 해당한다. <서유기>에서 말썽꾸러기 손오공은 삼장법사의 첫 제자가 되어 천축국으로 불경을 찾으러 떠나는 여정에 합류하게 되고, 온갖 죽을 고비를 넘기고 무사히 불경을 가지고 중국에 돌아온 후 손오공은 부처에 봉해진다. 게임의 시작은 여기서부터다.

천계는 여전히 그가 또 다른 만행을 저지를까 경계하다 그를 죽여 후환을 없애기로 하고, 손오공은 결국 이랑진군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다. 손오공의 후손 중 한 명이 천명을 받아 전쟁 공신에게 나눠준 손오공의 근기를 되찾아 모으기 위해 여정을 떠난다. 이를 위해 천명자가 여러 요괴 부족을 찾아다니며 전투를 벌이는 것이 <검은 신화: 오공>의 메인 스토리이다.

<검은 신화: 오공>은 여러모로 드라마틱한 게임이다. 우선 그간 중국은 캐주얼 게임이나 모바일 플랫폼 중심의 게임들로 주목받았을 뿐, AAA급 콘솔 게임이나 PC 게임 개발에서는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런데 중국이 <오공>과 같은 높은 수준의 품질, 대규모 개발 비용과 마케팅 예산을 자랑하는 트리플 A급 콘솔 게임을 선보이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2020년 8월 13분짜리 출시 예고 영상이 공개되자 중국판 유튜브 빌리빌리에서 5000만 뷰를, 유튜브에서는 1000만 뷰를 기록하며 전 세계 게임 유저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 후 개발자 10명 채용 공고를 냈는데, 지원자가 약 1만 명이 몰렸다고 한다.

눈부신 기록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출시 후 한 시간 동안 세계 최대 규모의 게임 플랫폼인 스팀에서 전 세계 동시 접속자가 100만 명을 돌파하며 1위에 올랐으며, 판매량에서도 출시 첫 3일 만에 1000만 장, 한 달 동안 2000만 장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트리플 A 콘솔 게임의 성공을 판가름하는 판매량 기준은 약 500만 장인데, <오공>은 그 기준을 단숨에 넘어섰다.

중국의 첫 트리플 A급 콘솔 게임이라 평가받는 <오공>을 만든 개발사는 게임 사이언스(遊戲科學)라는 작은 회사다. 텐센트(騰訊) 출신 펑지(馮驥)와 양치(楊奇)가 2014년 설립한 게임 개발사로 과거 RPG <100명의 영웅들>, <전쟁의 예술: 적조> 등 온라인 게임을 출시하기도 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유독 <검은 신화: 오공>이 이토록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프레시안

▲ <검은 신화: 오공> 소개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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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인 판호(版號) 정책

게임 서비스 허가권을 뜻하는 판호는 중국 게임 산업 규제 총괄기관인 국가신문출판서에서 신작 게임을 심사한 후 발급 여부를 결정한다. 콘텐츠가 정치적, 문화적으로 적절한지, 중국의 전통문화나 사회주의적 가치관에 저촉되지 않는지, 지나치게 사행성을 조장하지 않는지, 그리고 도덕적 영향까지 고려하려 발급을 결정한다.

2016년부터 중국은 판호 발급을 엄격하게 관리하기 시작했고, 2018년에는 약 9개월간 잠정 중단하기까지 했다. 2020년에는 청소년 게임 중독이 사회적인 큰 이슈로 부상하면서 판호 발급은 더욱 줄어들었다.

물론 외국 게임이 중국에서 출시되기 위해 받아야 하는 외자 판호 심사는 더 복잡하고 오래 걸린다. 이 같은 제한 때문에 중국 게임 산업의 성장은 둔화하였고, 수익 손실은 물론 개발 중인 프로젝트를 중단하거나 조정해야 하는 일이 빈번했다.

또 텐센트와 같은 대형 게임사의 주가는 2018년 판호 발급 잠정 중단 시기에 큰 타격을 받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중국 게임 개발사들이 살길을 찾아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자 이는 곧 중국 게임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저하로 이어졌다.

이같은 문제점에 부딪히자, 중국 당국은 점차 규제를 완화하기 시작했다. 국가신문출판사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발급된 판호는 총 748건이었고, 2022년은 512건으로 줄었지만, 2023년에는 1,075건으로 껑충 뛰었다. 그리고 2023년 12월부터 매달 100건이 넘는 판호가 발급되기 시작했고, 올해 2월 27일 <검은 신화: 오공>을 포함한 총 111개의 게임 판호가 발급되었다.

이처럼 판호 정책은 점차 안정을 되찾고 있으며, 게임 시장 역시 상승 궤도에 올랐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같은 상황에서 <검은 신화: 오공>과도 같은 대작의 출현은 중국이 그간의 부진을 딛고 글로벌 게임 시장에서 새로운 강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기술력의 성장

또 다른 성공 요인은 기술력에 있다. 과거 '중국 SF 콘텐츠를 보기 위해서는 CG의 벽을 넘어야 한다'는 평마저 있었으나. <검은 신화: 오공>이 오직 트레일러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끌었던 것은 바로 비약적으로 발전한 기술력에 있었다. 오공이 귀에서 자그마한 여의봉을 꺼내 크게 키워 휘두르며 근두운을 타고 하늘을 나는 모습에서 그간 중국이 보여줬던 기술과 다르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오공>은 에픽게임즈의 Unreal Engine 5에서 제공하는 나나이트와 루멘과 같은 신기술을 동원했다. 폴리곤은 컴퓨터 그래픽에서 3D 모델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 중 하나로, 다각형 형태가 수없이 모여 3D 객체의 표면을 만든다.

<오공>은 수백만 개의 폴리곤을 사용하여 캐릭터와 배경의 디테일을 극대화한다. 또 루멘은 게임 내에서 광원의 변화가 즉각적으로 반영되게 하는 기술인데, 이를 통해 캐릭터와 그 그림자의 움직임에 따라 환경이 자연스럽게 변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게임 내 실시간 광원 처리, 디테일한 캐릭터 애니메이션, 그리고 사실적인 환경 묘사는 서유기의 환상적인 세계를 몰입감 있게 구현해 낸다. 또 고급 모션 캡쳐 기술과 AI 시스템이 사용되어 캐릭터들의 액션이 어색하지 않고, 캐릭터 간의 물리적 상호작용이 자연스럽게 구현됐다.

덕분에 과거 중국 콘솔 게임이 부족한 그래픽 처리 능력으로 미흡한 모습을 보였던 것과 달리 <오공>은 플레이어에게 극대화된 몰입감을 선사한다. 이는 중국 게임 산업이 단순히 양산형 모바일 게임을 넘어, 대형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는 중요한 신호로 읽힌다.

고전을 바탕으로 한 익숙하고도 새로운 서사

우선 <서유기>는 불교와 도교 사상을 바탕으로 한 동아시아적 상상력이 가득한 소설이기 때문에 현실 밖에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야 하는 게임의 특성에 적합하다. 게다가 <서유기>가 고전으로 평가받으며 400년 넘게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은 이 소설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특정한 문화나 시대를 넘어 보편적인 인간 경험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손오공은 원숭이, 즉 불완전한 인간을 상징하며, 미성숙하고 자아 중심적인 그는 불경을 가지러 떠난 길에서 여러 시련을 통해 점차 깨달음을 얻는다. 손오공이 성불하여 열반에 이르는 소설의 엔딩은 인간 모두가 자아를 초월하여 내적 성장을 이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를 모티프로 한 <검은 신화: 오공>은 익숙함에 기대지 않고 <서유기>에 등장했던 다양한 캐릭터와 사건을 바탕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예컨대 손오공이 부처로 봉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천계와의 또 다른 전쟁에서 죽임을 당하고, 그의 후손 중 하나가 천명을 받은 자가 되어 그의 근기를 되찾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는 시퀄의 구조부터가 색다르다.

또 천명자가 처음 맞닥뜨린 적수는 원전에서도 등장하는 금지 장로와 흑풍 대왕이다. 금지 장로는 손오공이 자랑하느라 보여준 삼장법사의 금란가사를 탐내다 절에 불을 지르게 되는데, 관음보살은 그 같은 욕망을 불어넣은 것이 손오공임을 지적한다. 흑풍 대왕은 원전에서는 우연히 금란가사를 훔친 요괴이지만, 게임에서는 동자승이었던 어린 금지 장로에게 재물에 대한 탐욕을 불어 넣은 존재로 등장한다.

이처럼 <검은 신화:오공>은 <서유기>를 각색하면서도 원전에서 강조하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경계와 비판을 잊지 않는다. 또 게임 결말에서 천명자는 윤회하여 손오공으로 태어나 불사의 능력과 권력을 갖는 대신 자유를 선택하는 결정을 통해 원작의 손오공과는 다른 길을 걷는다.

한편 개발사 게임 사이언스는 <검은 신화: 강자아>, <검은 신화: 종규> 등 또 다른 전통적인 영웅을 모티프로 한 게임을 개발할 예정으로 알려져 기대를 모으고 있다. 게임 사이언스의 이 같은 행보는 고전의 힘을 보여주는 동시에 콘텐츠의 성공에는 기술력 외에도 결국에는 인간에 관한 관심과 고민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텔링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검은 신화: 오공>의 성공은 중국 게임 산업의 성장과 발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앞으로 중국 게임 산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기대되며, 고전과 현대를 연결하는 창의적인 콘텐츠가 계속해서 글로벌 무대에서 주목받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몇 년간 실적 부진론에 시달려 온 한국 게임 산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정하 전 원광대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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