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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일)

[취재파일] 이번엔 '부적합 거울' 시공…전국 LH 아파트 대규모 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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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약속한 LH, 지금은 달라졌을까?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지난해 여러 차례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지난해 4월,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건설 현장 붕괴 사고가 출발점이었습니다. 안전과 직결된 철근 누락 사실이 확인됐고, 국민의 질타 속에 LH는 부랴부랴 전수조사에 나섰습니다. 그 결과 전국 20개 단지에서 철근이 누락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부실시공·감리 문제가 도마에 올랐고, 여기에 LH 출신 전관들이 이해관계가 있는 감리업체 등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전관 특혜 의혹까지 불거졌습니다.

비판 여론이 고조되던 지난해 8월, 이한준 LH 사장은 철근 누락 사태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이 사장은 LH 전체 임원의 사직서를 받고, 대대적인 혁신을 약속했습니다. 이어 올해 품질관리 전담 부서까지 신설했습니다. 그렇게 논란이 일 때마다 현장 검증과 조직 쇄신을 강조해 왔습니다.

하지만 올해 여름 SBS 취재진이 직접 눈으로 확인한 현장을 보면, LH가 약속한 변화는 아직 미완인 것 같습니다.

"지은 지 1년밖에 안 됐는데 바꿔요?"




지난 8월 취재진이 찾은 경기도 남양주의 LH 공공임대 아파트는 지난해 9월 준공된 '새 아파트'였습니다. 입주민 환영 현수막까지 그대로였습니다. 그런데 지하주차장 곳곳엔 마감자재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모두 욕실에 들어가는 거울 관련 자재들이었습니다. 이 아파트 전체 세대인 570여 세대에서 거울 교체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입주민들은 정확한 이유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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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냥 거울 바꾸라니까 바꾼 거죠. 개인적으로는 이상했어요. 겉으로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그걸 왜 바꿨지, 하는 생각은 들죠. 이상해서 물어보니까 관리사무소 사람들도 모르고 입주한 사람들도 모르고. 그냥 갑자기 우당탕 와서 다 교체하더라고요."
- 남양주 LH 공공임대 아파트 입주민





비슷한 풍경은 경기도 양주, 평택 등 수도권 곳곳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모두 준공 뒤 1~2년이 지난 LH 공공임대 아파트였습니다. 역시 입주민이 이미 들어와 있어서 시공 업체가 일일이 입주민 동의를 구한 뒤에 교체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입주민들이 정확한 교체 이유를 모르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히려 현장에서 만난 취재진에게 어떤 문제가 있길래 취재까지 나온 것인지 알려달라고 되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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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사무소에서 2년 차 하자 점검이라고 해서 이상하다고 생각은 들었어요. 정확하게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고지를 해주셨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그게 아쉬운 것 같아요."
- 평택 LH 공공임대 아파트 입주민





관리사무소들의 안내는 제각각이었습니다. 남양주 아파트 입주민들은 '거울 코팅이 간혹 벗겨지는 하자'가 있어 시공업체에서 '자진 리콜'하는 것이라는 안내를 받았습니다. 평택 아파트 안내 게시판엔 '준공 2년 차 하자'로 인한 교체 작업이란 안내문이 나붙었습니다. 하지만 모두 정확한 이유는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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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 인증 없는 거울 대규모 시공…전국 7천8백여 세대




진짜 이유는 거울 뒷면에 숨어 있었습니다. 한국산업표준인 KS 인증 마크가 없는, 부적합 자재가 시공됐던 겁니다. KS 인증은 품질 경영 지원 등을 목적으로 하는 산업표준화법에 따라 품질 인증을 받은 자재에 주어지는 표식입니다. 취재진이 찾은 현장에 있는 거울들은 겉모습은 인증 제품과 비슷하지만 중국산이거나 상대적으로 단가가 저렴한 제품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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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이런 부적합 자재 사용이 확인된 LH 공공임대 아파트는 전국에 걸쳐 7천8백여 세대에 달합니다. 이들 세대 가운데는 산화에 더 강한 은으로 마감한 거울을 써야 함에도 상대적으로 싸고 산화에 취약한 알루미늄 거울이 사용된 곳도 있었습니다.

외부 제보 전엔 까맣게 몰랐던 LH




준공이 끝나고 입주민이 들어온 뒤에도 LH는 전국 7천8백여 세대에서 부적합 거울이 시공됐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대규모 부적합 시공이 수면 위로 드러난 건 올해 4월쯤 LH에 접수된 외부 제보 덕분이었습니다. 가구·인테리어 업계 선두인 중견기업 A사가 시공 하도급을 맡은 LH 아파트 현장에서 부적합 거울이 시공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LH가 직접 현장을 찾아 거울 뒷면을 확인해 보니 제보는 사실이었습니다.

그제야 심각성을 파악한 LH는 최근 5년간 준공된 공공임대 아파트 전수조사를 벌였습니다. 그 결과 제보 대상이 된 A사뿐 아니라 다른 시공 하도급사 3곳도 부적합 거울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LH 관계자는 이번에 문제가 드러난 4개 하도급사가 공공임대 아파트에 들어가는 '시스템 욕실' 공법 시공의 9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업계 전반에서 문제가 불거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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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LH와 아파트 건설을 계약한 건설사는 욕실 등 일부 시공을 A사와 같은 하도급사에 맡깁니다. 하도급사들은 필요한 자재를 납품 업체로부터 받아 시공합니다. 문제가 확인된 4개 하도급사는 납품받은 자재를 검수하고 시공할 책임이 있는 건데 제대로 안 지킨 겁니다.

거울은 KS 인증 마크가 뒷면에 있어 일단 시공되면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때문에 시공 전 자재 검수가 철저히 이뤄져야 하는데 공사 기간을 맞추기 빠듯한 현장에선 일부 샘플만 검사하거나 이마저도 건너뛰는 경우가 많다는 게 건설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입니다.

'피해자'라 주장하는 LH…직접 감리한 곳에서도 문제




LH는 발주 기관으로서 관리감독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주장했습니다. KS 인증 자재를 사용하기로 약속한 하도급사들에게 속았다는 겁니다. 시스템 욕실에 들어가는 마감재 중 거울을 포함한 12가지 품목은 하도급사들이 자재를 직접 선정해 시공하는 이른바 '신고 품목'입니다. LH는 문제가 된 하도급사들 모두 시공 전 품질 검증 단계에서 정상 시험성적서와 KS 인증 마크가 있는 견본품을 LH에 제출해 검증을 통과했다고 밝혔습니다. 당연히 서류대로 적합 자재가 시공되는 것으로 믿었는데, 하도급사들이 약속을 어긴 것이란 해명입니다.
"조립식 시스템 욕실에 들어가는 12가지 마감재는 신고 품목입니다. LH 감독자가 자재 선정에 개입하는 걸 최소화하기 위해서 신고 품목을 많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신고 품목이다 보니까 신고한 곳에서 서류로 제출한 내용이 맞을 거라고 저희는 믿고 하는 거죠."
- LH 관계자





현장 검증보다 서류 중심으로 품질 검증이 이뤄지다 보니, 실제 시공 단계에서 인증을 받지 않은 자재를 써도 드러나지 않는 구조입니다. 재발 방지 대책은 마땅히 없었습니다. 거울처럼 KS 인증이 밖에서 보이지 않는 신고 품목의 경우 이번과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취재진 질문에 LH 관계자는 "하도급사가 속이려고 마음먹으면 속을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습니다. 거울 말고도 신고 품목 대상이라면 비슷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더구나 이번에 문제가 된 단지 중엔 별도의 감리사를 두지 않고 LH가 직접 감리를 맡은 곳도 있었습니다. LH는 하도급사의 책임을 강조했지만, LH의 감리 시스템에도 허점이 확인된 겁니다.

"고의 아니었다"는 하도급사…LH "법적 조치 검토"




이번에 가장 많은 세대에서 부적합 자재를 사용한 것으로 드러난 하도급사 A사는 "현장 조사 결과 납품 업체의 자재 일부에서 KS 미인증 제품과 납품 요청 제품인 은거울 대신 알루미늄 거울이 납품됐음을 인지했다"며 "입주민에게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자재 검수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일 뿐, 이윤을 노리고 고의로 한 일은 아니라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LH는 계약 위반으로 판단하고 A사 등 4개 하도급사에 대한 법적 조치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원인은) 이윤적인 걸로 저희는 보고 있습니다. 굳이 KS 제품을 구하기가 어려운 것도 아닌데, 중국산이라든지 이런 게 많다 보니까, 결국 가격입니다."
- LH 관계자





또 아파트 시공 전반에 책임이 있는 건설사와 감리사에 대해서도 앞으로 입찰에서 제재하는 등 현장 품질 관리가 더 철저히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백운 기자 cloud@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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