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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박홍준 감독의 구조조정 경험이 '해야 할 일'이 되기까지[EN: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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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영화 '해야 할 일' 박홍준 감독 <상>
인사팀에서 한 구조조정 경험이 영화로 탄생하기까지
노컷뉴스

영화 '해야 할 일' 박홍준 감독. 명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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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주의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실제 조선소 인사팀에서 4년 6개월간 일하며 구조조정을 경험한 것은 박홍준 감독에게 많은 질문을 남겼다. 뉴스 속 구조조정은 사측과 노동자의 갈등으로 이야기됐다. 그러나 감독이 직접 안에서 보고 겪은 구조조정은 노동자와 노동자의 갈등을 만들었다. 각자의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을 했던 것이 노동자 간 반목과 갈등의 불씨가 됐다.

밥을 먹는 것도,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하나하나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인사팀이란 그런 존재였고, 구조조정이란 노동자들의 삶을 산산조각 내는 일이었다. 그때의 경험을 언젠가는 영화로 만들어보겠다는 결심이 '해야 할 일'로 결실을 맺었다.

흔히 노동을 다루는 드라마나 영화가 '해고 노동자'를 중심에 뒀다면, '해야 할 일'은 해고 노동자가 아닌 해고를 해야 하는 노동자인 인사팀 소속 주인공을 따라 나아간다. 시야를 달리하니 보지 못했던 많은 게 보였다. 감독의 경험이 그대로 투영된 주인공 강준희(장성범)을 통해 보다 내밀한 이야기를 드러낼 수 있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 박홍준 감독은 영화의 마무리마저 흔한 방식으로 짓지 않는다. 현실을 영화 안으로 끌고 왔던 만큼, 엔딩을 통해 감독은 영화를 현실로 이어가며 관객들이 질문하길 바랐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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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야 할 일' 스틸컷. 명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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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경험이 만들어 낸 '해야 할 일'만의 시각


▷ 구조조정, 정리해고는 오래된 노동문제이고 그동안 이를 다루는 콘텐츠는 대부분 '해고 노동자'에 초점을 맞췄다. 그런데 '해야 할 일'은 해고 노동자가 아닌 해고해야 하는 노동자에 초점을 맞춘 영화라서 새로웠다. 먼저, 왜 영화라는 매체로서 노동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었나?

내가 실제로 조선소에서 일하면서 보고 느끼고 겪었던 것들을 토대로 한 이야기다. 실제로 인사팀에 있었다. 2015년에 회사에 들어갔는데 2016년부터 세계적으로 조선업 경기가 안 좋아져서 국내 조선업들이 구조조정하고 문을 닫았다. 2016년에 처음으로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내 삶의 방향성이 지금으로 가고 있는 게 옳은가? 나는 제대로 살고 있나?

영화에도 나오지만, 사회에서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옳은 방향으로 만들어보려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지던 상황이다. 내 마음속에 나는 저기에 끼지 못할 것 같고, 그들과 분리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가 단편 작업을 해보던 시기라서 언젠가 지금의 이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써봐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었다.

▷ 직접 경험한 일이 녹아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해고해야 하는 입장인 인사팀 대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동안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보통 노동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는 주로 해고당한 쪽에서 사측을 대상으로 싸우는 이야기다. 그렇게 하면 임원, 사장, 이들이 나빠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한쪽이 너무 단순화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일을 하면서 느낀 것도 있었다. 인사팀 사람들 자체가 대단히 나빠서 그런 건 아니다. 자리가 그렇게 만든 거고, 먹고 살려다 보니 그렇게 되는 거다. 인사팀을 나가서 다른 부서에 가면 똑같은 처지가 된다.

이 문제의 원인이 뭘까 생각해 보면, 기존 드라마나 영화처럼 '해고하는 사람들이 나빠서 그래'라는 혐오하는 건 쉽다. 그러나 사람들의 내면을 보지 않고 혐오로 가면 이야기가 쉽게 갈 수 있는 반면에 되게 단순해진다. 그래서 시야를 조금 틀어보면 문제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영화를 본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이 문제에 관해 이야기해 볼 수 있는 장을 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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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야 할 일' 스틸컷. 명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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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같은 노동자임에도 갈등과 대립이 벌어진다는 것 자체가 비극인 건데, 어쩔 수 없이 처음에는 강 대리와 인사팀은 사측 편 내지 악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영화의 의도를 조금이라도 더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이 나쁘게 비치지 않도록 균형을 잘 잡는 게 중요했을 것 같다.

그런 균형감을 위해서라도 준희가 인사팀 일을 모르는 사람이어야 했다. 준희는 다른 부서에 있다가 인사팀에 와서 업무에 적응 중인 사람이라는 설정이 필요했다. 그래서 양쪽을 다 볼 수 있는 거다. 양쪽 입장을 잘 알기 때문이다.

준희는 이전 자재팀 사람들과 아직도 친하고, 그들의 입장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또 인사팀 업무도 점점 알아가며 인사팀 업무에 대한 이해도 생긴다. 이처럼 중간에 껴 있는 캐릭터 설정이 필요했다.

그러면서 다른 인물들의 사정도 조금씩 보여주려 했다. 마지막에 가서 나오지만, 해고 대상자가 되는 쪽도 회사로부터 상처를 받은 게 있는 사람들이다. 뺑뺑이 돌리면서 기회도 주지 않았다고 하지 않나. 그렇게 인사팀장은 물론 한 인물 인물이 가진 생각을 잘 녹여보려는 시도를 계속했다.

▷ 장소도 장소고, 정말 인사팀뿐 아니라 다른 부서 노동자 등 등장인물도 많은 작품이다. 거기다 민감한 노동문제를 다루는 영화다. 영화 촬영을 준비하면서 이래저래 힘들었을 것 같다.

일단 로케이션 찾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CG를 많이 쓸 수 있는 규모의 영화가 아니니까 제일 좋은 건 조선소 배경을 가진 사무실을 찾아서 촬영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런데 조선소는 언제든 사고가 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고, 내용이 내용이다 보니 여러 조선소와 조선소 비슷한 회사와 접촉해 봤는데, 다 거절당했다.

그래서 중간에 어느 사무실 하나를 빌려 찍고, 창밖 풍경은 다 CG로 할까도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계속 찾다가 우연히 예전에 배를 만드는 작업도 했던 한 수리 조선소(선박 수리를 하는 조선소)를 발견했다. 그곳을 운 좋게 찾아서 한 층을 통째로 빌릴 수 있었다. 회사에서도 다행히 협조적이었다. 덕분에 빈 사무실에 미술을 세팅해서 촬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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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야 할 일' 스틸컷. 명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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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엔딩이 나아가고자 하는 길


▷ 보통 '신년'이라는 단어를 보면 '내일' '밝은 미래' 등 희망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런데 신년으로 끝나는 영화의 엔딩은 희망적인 마무리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고, 신년이라는 이미지와 주인공의 상황이 대조되면서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 영화의 엔딩은 처음부터 지금의 형태였나?

사실 새해는 되게 희망차고 더 힘을 내서 뭔가 해야 할 거 같은 이미지다. 그런데 사실 준희가 처한 회사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준희는 인사팀장의 의견을 따라갔던 사람으로서 회사가 말을 바꾼 행태에 절망한 상태다.

엔딩은, 일단 준희와 동우가 프레임 안에 박제되길 바랐던 거 같다. 회사에 갇힌 사람이고, 계속 앞으로 걸어 나오지만 '한참 멀었어' 정도의 느낌이랄까. 이렇게 영화가 끝나면 관객분들이 물어본다. 그래서 준희는 어떻게 됐냐고 말이다. 그걸 같이 고민해 보자고 만든 영화가 이 영화다. '당신이 준희라면 어떤 결정을 하겠나?'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등의 질문을 던지는 거다.

▷ 결국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감독이 영화를 통해 던진 질문을 영화관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밖에 없다. '해야 할 일'은 노동자와 노동자가 반목하고 갈등하게 되는 상황을 내밀하게 들여다보고, 이러한 상황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그렇다면 감독은 이러한 상황을 반복하게 만드는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다.

구조조정, 희망퇴직, 정리해고가 안 일어나면 좋겠지만 불가피하게 생기는 경우도 생긴다고 본다. 국가적으로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생기는 영향도 있을 테고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갈등이 생기는 건, 일단 책임져야 할 사람이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 점도 큰 것 같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사실 영화 속 인물들은 노노 갈등이 벌어지면 책임질 수 있는 권한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책임져야 마땅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게 불을 지피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또 구조조정을 통해 회사를 나가는 사람들의 경우, 사실 우리 사회가 아직 이들을 받아줄 만한 안전망이 약하다고 본다. 준비가 안 된 채로 떠밀려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반복적으로 만들어진다. 40대만 넘어가도 이직 자리를 찾기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거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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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야 할 일' 스틸컷. 명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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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영화들이 극장에 선다는 게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해야 할 일'은 어떤 점에서 극장에서 보면 좋을 영화인지 예비 관객들에게 팁을 준다면 무엇이 있을까?

내가 영화라는 매체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집단적인 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새 다 파편화되고, 개인화되어 있어서 상대방의 감정을 공유할 기회가 거의 없다. 그런데 영화관에 가면 생판 모르는 관객이 저 앞에서 웃거나 소리 지르거나 울 때 감정 전이가 생기기도 하고, 공감하며 나도 그 감정에 따라 울거나 웃게 된다.

난 집에서 코미디 영화를 보면 거의 안 웃는다.(웃음) 그런데 극장에 가서 다른 사람이 웃으면 나도 무장해제 되면서 웃는 경험을 많이 한다. '해야 할 일'도 그런 감정적인 전이가 생기면 조금 더 와닿게 볼 수 있는 영화라 생각한다. 많은 관객께서 꼭 극장에서 봐주시고, 그날 하루 정도는 같이 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 좋지 않을까 싶다.

<하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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