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코드 국내 도입문제 두고 첫 공청회…찬·반 팽팽히 대립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국내 도입문제 공청회 |
(서울=연합뉴스) 김주환 기자 = 세계보건기구(WHO)가 질병으로 규정한 게임이용장애(게임중독)를 국내 질병코드 분류 체계에 받아들일지 여부를 놓고 처음으로 열린 공청회에서 찬반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더불어민주당 강유정·서영석·임광현·전진숙 의원실은 12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WHO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국내 도입문제 공청회'를 개최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문화체육관광부·보건복지부·통계청 등 관련 정부 부처 관계자와 질병코드 도입에 찬성·반대하는 학계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WHO는 2019년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규정하고 국제질병분류(ICD)의 최신판 ICD-11에 이를 반영했다. 이에 정부는 국무조정실 주도로 민관협의체를 꾸리고,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체계(KCD)에 게임이용장애를 실을지 여부를 논의해왔다.
◇ 정부도 시각차…문화부 "우려" vs 복지부 "건강한 게임문화 노력"
부처 관계자들은 토론회 시작 전 부처별 입장과 질병코드 도입 논의 상황을 공유했다.
박현정 통계청 통계기준과장은 "정부가 내년 7월을 목표로 추진 중인 KCD 9차 개정은 ICD-10이 기준으로, ICD-11은 차차기 개정인 10차 개정에 반영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종이 책자 형태이던 ICD-10과 달리 전산화된 ICD-11 도입에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만큼 시스템 개발 사업을 중심으로 국내 연구용역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영민 문체부 게임콘텐츠사업과장은 "게임이용장애의 실재 여부에 대한 찬반 의견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질병이라는 객관적 증거가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며 "산업적으로 질병코드 도입시 2년간 게임산업이 8조8천억원의 피해가 발생하고, 총생산 감소 효과는 12조원에 이를 것이라 보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김연숙 보건복지부 정신건강관리과장은 "민관협의체를 중심으로 연구와 공청회, 토론회를 거쳐 다양한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야 한다고 본다"며 "찬반 대립보다는 게임계의 우려를 최소화하며 건강한 게임이용 문화를 정착시킬 방법을 노력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국내 도입문제 공청회 |
◇ 찬성 측 "질병분류 타당…단순히 게임 많이 한다고 질병 아냐"
이상규 한림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분류가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적어도 1년 이상 게임에 대한 조절력을 상실하고, 게임이 다른 일상생활에 비해 현저하게 우선적인 활동이 돼야 하며, 부정적 문제가 발생함에도 지속적으로 게임을 과도하게 이용하는 증상이 12개월간 반복돼야 한다"며 "단순히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게임사용 패턴만으로 게임이용장애를 진단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게임 외에도 여러 자극적 행동이 중독 대상으로 기능할 수 있으나, 공중보건 측면에서 시급성이 높다 보니 병리적 도박·성행동과 함께 ICD-11에 등재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해국 가톨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신건강의학계가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 속 취약한 위치에 놓여 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게임과 디지털미디어 과사용에 따른 국가의 역할이 규정돼 있음에도 산업 진흥 정책에 비해 문제 예방 접근은 초라하다"며 공중보건적 관점에서 질병코드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게임 자체가 중독의 원인이라고 한 번도 이야기한 적이 없다. 게임을 중독적으로 이용하는 패턴이 원인이라는 것"이라며 "최근에는 소셜미디어 중독과 관련한 연구 결과도 많이 나오는데, 2∼3년내 소셜미디어 중독도 진단기준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 본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게임은 일반적 상품이 아니며, 약간은 위험할 수 있는 상품인 만큼 공공과 시민사회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공청회를 주최한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누구와 함께하는 것이 민주당의 가치인지 여쭙고 싶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해국 교수의 발표 |
◇ 반대 측 "질병코드 등재 시 낙인효과 커…등재 근거 불명확"
박건우 고대안암병원 뇌신경센터장은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할 경우 게임 이용자에 대한 '낙인 효과' 우려가 크다고 강조했다.
박 센터장은 "청소년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게임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게임이 비용과 시간 대비 (즐거움을 얻는) 효과가 가장 좋기 때문"이라며 "스트레스를 현실적으로 극복하는 방법을 병리 현상으로 보고 몰아가는 건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신의학은 특성상 진단 과정에서 의사의 주관적 판단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만큼 병명 등재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문석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게임이용장애의 질병코드 등재 근거가 불명확하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WHO가 게임이용장애를 ICD-11에 등재 결정하는 과정에서 근거가 되는 연구를 투명하게 공개했는지 불확실하다"며 "WHO가 보건의료 분야에서 전문성 있는 기관이지만 강제성은 없고, ICD 역시 각국 상황에 맞게 도입하게 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게임이나 놀이문화를 죄악시하는 문화권에서는 유병률이 높게 나타난다는 보고도 있다.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논쟁의 여지가 있는 질병코드를 도입할 경우 뒤따를 과도한 사회적 비용 지출과 규제 도입도 부작용으로 언급했다.
조 교수는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할 경우 예방과 치료에 매우 많은 사회적 비용과 정부 예산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며 "게임 제작·배급사에 과도한 비용을 부담시키거나, 중독치유센터 설치·전담교사 배치 등으로 재정 지출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juju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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