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서울 종로의 한 PC방./조선비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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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중독(게임 이용장애)은 질환이다. 일상생활이 망가질 정도로 게임에 과몰입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공중보건으로 연구, 개입해야 한다.”
“게임이용장애는 질환이 아니라, 우울증이나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DHD) 등으로 인한 증상이다. 이를 질환으로 본다면 근본 질환에 대한 치료가 늦어져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
국내 전문가들끼리도 게임 중독이 질병인지 아닌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FKI타워에서 열린 ‘세계보건기구(WHO)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국내 도입문제 공청회’에서 국내 정부, 의료계, 산업계 전문가들은 “게임 중독이 이용자의 일상 생활을 해치는 만큼 건전한 게임 문화를 정착시킬 방안을 찾아 적용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행사는 WHO의 게임 이용장애 질병코드를 국내에 도입할지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WHO는 2019년 국제표준질병분류(ICD-11)를 통해 게임 중독(게임이용장애)을 질병으로 분류했다. 게임이 약물, 알코올과 마찬가지로 병적인 중독에 빠지게 하는 요인이라고 인정한 셈이다. 한국은 이르면 내년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인정할지 여부를 결정한다.
약물 복용이나 음주가 중독으로 이어지는 원리. 마약이 과도한 도파민 분비로 이어지고, 뇌가 여기에 대응해 내성이 생기면 같은 자극을 쫓아 마약 복용량을 늘리게 되고 결국 중독으로 이어진다./한순규 교수 |
◇복지부 “질병 분류해야” vs 문체부 “사회적 손실 커”
중독은 유해한 물질에 신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의존해 중단하지 못하고 결국 심신을 해치는 상태를 말한다. 마약이나 알코올, 도박 등이 대표적인 중독 요인이다. 특정 물질에 중독되면 뇌가 쾌락을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과잉 분비하면서 해당 신경회로가 활성화된다.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한다는 것은 게임 역시 마약이나 알코올, 도박처럼 중독 요인으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게임은 마약이나 알코올처럼 직접적인 화학물질이 아닌 탓에 이에 대한 의견이 나뉜다.
정부도 부처마다 의견이 엇갈린다. 김연숙 보건복지부 정신건강관리과장은 “국내 여건과 상황을 합리적으로 고려해 국내 실정에 맞는 질병 분류 체계를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이영민 문화체육관광부 게임콘텐츠산업과장은 “게임이 중독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다수 존재한다”며 “병의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는데 게임 중독에만 집중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과장은 “게임 중독을 질병코드화하면 청소년 이용자에 대한 낙인효과로 사회적 차별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2년간 게임산업에 총 8.8조원 피해가 발생하고 8만 39명 취업 기회가 줄어드는 등 큰 손해가 따를 수 있다”고 말했다.
약물에 중독 되기 전의 뇌(왼쪽)와 약물 중독 후 뇌 모습. 약물 중독 후의 뇌는 활동능력이 현격히 저하된다. 반면 게임 중독은 약물 중독 만큼 생리적 변화가 규명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조선비즈 |
◇전문가들 ”게임도 중독 유발” VS “과학적 근거 부족”
학계 전문가들도 의견이 나뉜다. 이상규 한림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게임 중독이 뇌 쾌락회로의 도파민 분비를 자극하는 만큼 질병으로 볼 수 있는 뇌신경학적 근거 연구 결과들이 많이 나왔다”며 “17국에서 수행한 연구 결과 53건을 메타분석한 결과 일반 인구내 게임 중독 유병률이 3.0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는 “게임에 과몰입해 학교를 안 가거나 직업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환자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오늘도 봤다”고 했다.
반면 박건우 고려대 안암병원 뇌신경센터 교수는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할 만한 과학적인 근거가 아직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약이나 알코올 등 물질 중독은 특정 화학물질에 의한 신경학적 변화가 나타나지만 게임 중독은 물질 중독과 달리 신경학적 변화가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과도한 게임 이용이 중독인지, 또는 문화적·사회적 요인에 의해 강화된 행위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이런 상태에서 질병으로 규정하면 건강한 게임 이용자도 낙인이 찍힐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게임 중독이 하나의 질병이 아니라 ADHD, 우울증 같은 질환으로 인한 증상 중 하나라고 본다”며 “미국 정신건강의학과의 진단분류(DSM)에서도 게임 중독을 좀 더 연구가 필요한 상태로 분류했다”고 말했다.
◇건전한 게임 문화 정착시킬 방안 찾아야
이날 참석자들은 질병 여부에 대한 의견과 상관없이 게임 과몰입이 일상생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이용자들이 건전하게 게임을 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찾아 적용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김연숙 복지부 정신건강관리과장은 “게임 중독이 질병코드 도입이 되는 것과 별개로 게임 이용 과다로 일상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며 “이미 미국, 영국 등 각 국가들이 게임 이용 과다 관련 현황을 연구하고 진단방법을 개발하는 등 국민 건강을 위해 나섰다”고 말했다.
이해국 가톨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현대인의 식생활 문제와 마찬가지로 게임 중독에 대한 문제 해결도 사회적으로 예방, 교육, 건강 증진 캠페인을 통해야만 효과적”이라고 했다.
한편, 지난 7월 통계청은 5년 주기로 개정하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 제9차 개정을 내년 7월쯤 고시하겠다고 밝혔다. 한국 통계법은 국제표준분류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이번에도 WHO의 결정을 따른다면 국내는 제10차 개정으로 반영하는 2030년부터 게임 중독이 질병으로 분류된다.
이정아 기자(zzunga@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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