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바르니에(73) 프랑스 신임 총리. 우파 공화당 소속인 그는 5일(현지시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에 의해 새 총리로 발탁됐다. 바르니에는 앞서 외교부 장관, 농수산부 장관, 유럽연합(EU) 내수시장 담당 집행위원 등을 지낸 정계 거물이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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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프랑스는 나라가 두 쪽 날 위기에 놓였다. 19세기 이후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에서 일어난 독립운동 때문이다. 1954년부터 알제리에선 독립을 원하는 저항군과 이를 막으려는 프랑스군 간의 전투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프랑스 국내 여론은 분열됐다. 좌파와 자유주의자들은 “제국주의는 끝났다”며 알제리 독립을 지지한 반면 군부와 강경 우파 세력은 “프랑스의 위신을 지켜야 한다”며 알제리가 프랑스 일부로 남아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 위기를 해결한 사람은 드골밖에 없다’는 여론이 확산하며 이미 오래 전에 정계를 떠난 드골이 프랑스 중앙 정치 무대로 소환됐다. 그는 승부수를 던졌다. 국가원수인 대통령에게 전권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개헌이 이뤄지지 않으면 정권을 맡지 않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이러다가 프랑스가 망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워낙 컸던 만큼 드골의 요청은 받아들여졌다.
이듬해인 1959년 마침내 프랑스 제5공화국이 출범했다. 헌법 문구만 놓고 따지면 미국, 한국과 같은 대통령제에 가까웠다. 하지만 일각에선 대통령 밑에 상당한 권한을 갖는 총리가 존재하는 점, 총리는 의회의 불신임 대상이라는 점, 원내 과반 의원이 반대하는 인물은 결코 총리가 될 수 없다는 점 등을 들어 전통적인 대통령제와는 다르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이원집정제 또는 반(半)대통령제라는 용어로 프랑스 정부 형태를 설명했다. 실제로 5공화국 출범 후 프랑스에선 여소야대 국면일 때 여당 지도자인 대통령과 야당 출신 총리가 공존하는 동거정부(cohabitation)가 출현하곤 했다. 1980∼1990년대 프랑스가 참여하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나 양자 정상회담 등에 대통령과 총리 두 명이 대표로 나서는 이색적 풍경이 연출된 것도 그와 무관치 않다. 한때 “제법 괜찮다”는 평가를 들은 프랑스 정치제도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순간이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과 미셸 바르니에 신임 총리. 사진은 바르니에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곧 브렉시트 문제를 다루기 위한 EU 협상단의 수석 대표로 일하던 2020년 엘리제궁을 방문해 마크롱과 만났을 때의 모습.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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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5일 우파 공화당 소속 미셸 바르니에(73)를 새 총리로 지명했다. 바르니에는 과거 자크 시라크 대통령 밑에서 외교부 장관,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밑에서 농수산부 장관을 지낸 정계 거물이다. 문제는 그가 속한 공화당이 지난 7월 총선에서 의석수 기준으로 1당인 좌파 연합 신인민전선(NFP), 2당인 중도 집권당, 3당인 극우 성향 국민연합(RN)에 이은 4당이란 점이다. 그간 “1당인 우리가 총리를 배출하고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 온 NFP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반응이다. NFP에 속한 사회당의 올리비에 포르 대표는 “선거에서 4위를 차지한 당의 인물이 총리가 됐다”며 “마크롱의 민주주의 부정이 극에 달했다”고 맹비난했다. 좌파가 원내 다수당이 된 선거 결과만 놓고 보면 우파 총리를 택한 마크롱의 결단이 ‘총선 민심을 무시했다’는 비판을 듣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바둑에 비유하면 마크롱의 다음 포석이 무엇일지 궁금하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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