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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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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한담] “지원 좀 해주세요”… ‘신의 직장’ 금감원이 채용 가점까지 주며 회계사 모시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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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그래픽=손민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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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공기업 중 한국은행과 함께 대표적인 ‘신의 직장’으로 꼽히는 금융감독원이 내년 신입직원 채용공고를 공개했습니다. 눈에 띄는 건 단연 ‘자격증 우대사항’입니다. 종전까진 없었던 항목입니다.

내년 채용에선 공인회계사(CPA), 국내 변호사, 보험계리사 자격증을 가진 지원자에게 1차와 2차 필기시험에서 전형 만점의 10% 가점을 주기로 했습니다. 이를 두고 금감원 내부에서는 파격적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본인이 획득한 점수의 10%가 아니라, 만점의 10%라 100점이 만점인 시험이라면 공인회계사 지원자는 10점은 기본으로 깔고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1차 필기시험은 국가직무능력표준(NCS) 기반 직업기초능력 시험인데, 지원자들의 점수 분포가 매우 촘촘합니다. 10% 가점은 합격의 큰 디딤판이 되는 셈이죠. 2차 필기는 경영학, 경제학, 법학 등 지원 분야의 전공과 논술 시험입니다.

3종의 자격증 중 관심은 유독 공인회계사에 쏠리고 있습니다. 올해 금감원이 채용한 신입직원 120명 중 회계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은 딱 1명이었습니다. 이는 역대 최저 수준입니다. 그나마 있던 회계사들도 퇴사하는 추세라 신입 회계사가 간절한 상황입니다. 2017년만 해도 금감원엔 30명이 넘는 회계사들이 입사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회계사 자격증을 가진 이들이 지원조차 안 하면서 합격자 수가 뚝 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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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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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사들 사이에서 금감원의 인기가 전만 못한 건 낮은 초봉 때문입니다. 금감원의 신입 직원 연봉은 5000만원 수준인데, 4대 회계법인(삼일·삼정·안진·한영) 초봉은 약 6000만원입니다. 2018년 신(新)외부감사법이 시행되면서 회계사들의 몸값은 급격하게 뛰기 시작했습니다. 회사마다 최저 감사 시간(표준감사시간제)이 설정되면서 투입한 시간에 비례해 감사 보수를 챙기는 회계법인의 매출이 늘어서죠.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에 따르면 국내 500대 기업 중 307곳의 2022년 감사용역 보수액은 2949억4500만원으로, 신외감법 시행 초기인 2018년(1418억원)보다 2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회계법인이 돈을 많이 벌게 되니 회계사의 연봉이 뛰는 결과를 낳은 겁니다.

사실 공채에서 가점을 주는 게 금감원이 회계사의 지원을 늘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보입니다. 회계법인처럼 연봉을 ‘확’ 올려주는 게 가장 확실하지만 불가능해서죠. 금감원은 정부 부처는 아니지만 업무 특성 때문에 준정부기관 취급을 받습니다. 이 때문에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공공기관 예산지침을 준수해야 합니다. 금감원이 마음대로 직원의 연봉을 올려줄 수 없는 구조입니다.

그간 금감원은 공공기관 평균 연봉의 120%를 상회해 고임금 기관으로 묶였습니다. 고임금 기관의 연봉 증가율은 공공기관 증가율보다 0.5%포인트(p) 낮아 작년 금감원의 인건비 예산 증가율은 1.2%였습니다. 하지만 매년 임금이 찔끔찔끔 오르면서 올해는 고임금 기관에서 아예 제외됐습니다.

이제 공공기관 평균 증가율보다 연봉이 더 많이 오를 수 있게 됐지만, 이렇게 된 계기가 물가상승률도 못 따라가는 임금 상승률이어서 금감원 직원들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자조 중입니다. 올해 금감원 인건비 예산은 2.5% 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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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마냥 금감원 직원들에게만 씁쓸한 얘기는 아닙니다. 우리나라 금융 감독을 담당하는 유일한 기관에 인재들이 가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전체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 금감원과 금융위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회계 조작을 두고 법원에서 다투고 있습니다. 2018년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전환하면서 회계 처리 기준이 변경돼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 가치가 16.5배(2900억원→ 4조8000억원) 늘어났습니다. 이는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에 유리하게 작용했죠.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이와 관련해 국민연금은 누적 2451억원의 손실을 봤습니다. 지난달 나온 1심 판결에서 법원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손을 들어주자 금감원과 금융위는 곧바로 항소했습니다.

투자자를 위해 회사의 회계 처리 적정성을 따지는 것도 금감원의 역할입니다. 최근엔 매출을 과대계상하고 특수관계자와의 거래를 누락한 코넥스 기업 ‘씨앗’, 투자 손실을 감춘 비상장법인 ‘루트로닉’ 등이 금감원의 감시망에 걸렸습니다.

이처럼 우리 시장에서 굵직굵직한 일을 해야 하니 금감원이 회계사 모시기에 고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번 공채 가점 제도에 금감원의 조급함이 숨어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한 금감원 직원은 “(연봉을 올려주지 못하니) 사명감에 (지원을) 기대야 하는 현실이 씁쓸하다”고 하네요. 이번 가점 제도가 회계사들의 발길을 끌어들일 수 있을지 두고 봐야겠습니다.

문수빈 기자(bea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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