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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타들어가는 엄마들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성평등 교육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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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타들어가는 엄마들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성평등 교육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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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 국회 본회의 통과
정치하는 엄마들이 말하는 ‘딥페이크 사태 대처법’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2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딥페이크 성착취물 사태 관련 대담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남궁수진·김신애·김정덕·백운희·박민아씨. 이준헌 기자 heon@kyunghyang.com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2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딥페이크 성착취물 사태 관련 대담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남궁수진·김신애·김정덕·백운희·박민아씨. 이준헌 기자 heon@kyunghyang.com


e알리미 통해 관련 공문 수령
예방법 없이 신고·상담법만
학부모 불안 달래기엔 역부족

“당국의 발빠른 정보 제공 통해
아이들 신뢰 저버리지 않아야”

“엄마, A학교도 털렸대.”

백운희씨(43)는 지난주 중학교 2학년 딸이 툭 던진 말에 숨이 턱 막혔다고 했다. ‘딥페이크 성착취물 사태’의 피해 학교 명단이 엑스(옛 트위터)를 중심으로 돌 때부터 마음은 이미 뒤숭숭했다. 딸이 A학교에 다니지 않는다는 안도감은 잠시였다. 딸이 다니는 학교가 계속 피해 학교 명단에 오르지 않길 바라는 불안함, 이게 모든 아이의 일이라는 미안함, 남의 사진을 도용한 이들이 어떻게 악용했는지까지는 아이가 몰랐으면 하는 간절함이 복잡하게 뒤엉켰다.

딸이 말을 이어갔다. 주변 친구들이 인스타그램 비계(비공개 계정)에 올린 사진까지 내리고 있다는 얘기, 사진을 내리던 도중 계정에서 ‘로그아웃’된 친구가 해킹당했을까봐 불안해한다는 얘기였다. 백씨는 “불안해하지 마. 엄마도 같이 알아볼게”라고 했지만 자신은 없었다.

박민아씨(38)의 11세 딸, 9세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는 아직 ‘공포’가 퍼지진 않았다. 그렇지만 박씨는 “여아와 남아를 모두 키우는 입장에서 고민이 크다”고 했다. 초등학생 남매를 둔 김신애씨(42)도 공감했다. 김씨는 “아직 아이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면서 “아이들도 이 일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스쿨미투 등 굵직한 학교 현안에 목소리를 내온 비영리단체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들은 2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진행된 대담에서 고민을 나눴다. 지인 사진을 악용해 만든 ‘딥페이크 성착취물’ 범죄가 공론화된 지 약 일주일, 미성년 자녀를 키우는 이들은 “이대론 미래세대의 상호 신뢰가 무너질 수 있는 심각한 위기상황”이라며 “장기적인 성교육·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지금부터라도 구상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주 학부모들은 학교 공지 알림 서비스인 ‘e알리미’로 딥페이크 관련 공문을 받았다. 의심 게시물을 112·117에 신고하거나 학교전담경찰관(SPO)과 상담하라는 내용이었다. 학부모들의 불안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라는 표현도 걸렸다. 백씨는 “‘씻을 수 없는 상처’는 피해자가 회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하지 않냐”며 “오히려 낙인이자 2차 가해로 느껴졌다”고 했다. 초등학생 아들을 둔 김정덕씨(45)는 “친구로부터 피해를 본 아동·청소년이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가해를 한 학생에게는 이것이 왜 잘못이며, 앞으로 이런 일을 벌이지 않도록 어떤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가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그런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없다는 것을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시 한번 절감했다고 말했다. 김정덕씨는 “2015년 성교육 표준안이 나온 뒤로 10년 가까이 성평등 교육이 도외시됐고, 요즘 성교육 도서가 학교 도서관마다 폐기되고 있다”며 “나와 다른 사람의 경계를 구분하는 법, 관계를 건강하게 맺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이 점점 더 쉽고 빠르게 성착취물에 노출되고 있다”고 했다.

활동가들은 이번 사태가 ‘일부의 일탈’로 치부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발언, 여성가족부 폐지 추진, 성평등 관련 예산 삭감 등이 모두 텔레그램에서 퍼진 범죄의 토양이 됐다는 것이다. 이들은 “딥페이크 합성 범죄가 기승을 부릴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한 것은 결국 어른들”이라고 말했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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