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강 부상 딛고 2개 대회 연속 3위
“치매로 날 알아보지 못했던 할머니
메달-소고기 들고 묘소 찾을 것”
주정훈(왼쪽에서 두 번째)이 1일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파리 패럴림픽 태권도 K44 남자 80kg급에서 동메달을 딴 뒤 다른 메달리스트들의 부축을 받으며 시상대에 오르고 있다. 파리=패럴림픽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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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오기 전 약속했던 메달과 소고기를 들고 할머니 묘소를 찾아뵐 것이다.”
1일 파리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 태권도 K44 남자 80kg급에서 동메달을 목에 건 주정훈(30)은 이렇게 말했다. 2021년 열린 도쿄 대회에서 동메달을 딴 뒤 귀국해 치매로 요양병원에 있던 할머니를 가장 먼저 찾았었는데, 이번에도 자신의 메달을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가장 먼저 바치겠다고 했다.
주정훈이 할머니에게 이렇게 애틋한 감정을 갖고 있는 이유는 어린 시절 경남 함안군의 할머니 집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맞벌이를 하는 주정훈의 부모 대신 할머니 김분선 씨가 손자를 키웠다. 주정훈은 두 살 때 할머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소여물 절단기에 오른손을 넣는 바람에 지금의 장애를 얻었다. 이후 김 씨는 아들 내외와 주정훈을 볼 때마다 자신이 죄인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주정훈은 워낙 어렸을 때 벌어진 일이라 기억하지 못했지만 할머니는 평생 죄책감을 가지고 살았다.
주정훈은 자신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할머니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었다. 할머니는 2018년이 돼서야 눈물을 멈췄다. 죄책감이 사라진 게 아니라 치매로 기억이 사라져 손자를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도쿄 대회를 마친 뒤 찾았을 때도 여전히 주정훈을 알아보지 못했고, 결국 몇 달 뒤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주정훈은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요양병원을 찾았지만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그 대신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주정훈은 이후 할머니를 가슴에 품고 다시 뛰었다. 파리로 떠나기 전 할머니 묘소를 찾아 “대회가 끝난 뒤 금메달과 함께 (평소 좋아하셨던) 소고기를 싸 올게요”라고 약속했다. 주정훈은 16강과 8강은 가볍게 통과했지만 4강에서 만난 루이스 마리오 나헤라(멕시코)를 넘지 못했다. 8강전에서 상대 무릎에 맞은 왼쪽 골반에 통증이 왔지만 끝까지 참고 경기에 나섰다. 주정훈은 동메달 결정전에서 눌란 돔바예프(카자흐스탄)를 7-1로 꺾고 2회 연속 동메달을 획득했다. 간절히 원한 금메달은 아니었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었다.
파리=김정훈 기자 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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