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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5 (일)

태권도 주정훈, 부상 투혼 동메달… "할머니 선산에 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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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1일(한국시간) 동메달을 따낸 뒤 키스하는 주정훈. 사진 대한장애인체육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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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태권도 간판 주정훈(30·SK에코플랜트)이 패럴림픽 2회 연속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원했던 금빛은 아니었지만, 부상에도 투혼을 발휘했다.

주정훈은 1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 패럴림픽 태권도 남자 80㎏급 스포츠등급 K44 동메달 결정전에서 카자흐스탄의 눌란 돔바예프를 7-1로 꺾었다. 2021년 열린 도쿄 패럴림픽에서 한국 장애인 태권도 최초로 동메달을 획득한 주정훈은 2회 연속 메달 획득 성과를 냈다.

주정훈은 4분 21초를 남기고 상대 선수와 경고 1개씩을 주고받아 1-1이 됐다. 이후 왼발 공격으로 몸통을 가격해 3-1로 앞서갔다. 주정훈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고, 경기 종료 3분 10초 전 몸통 공격에 다시 성공해 5-1로 점수 차를 벌렸다. 경기 종료 1분 50초 전엔 상대 공격을 피한 뒤 기술적으로 몸통에 발끝을 꽂으면서 7-1까지 달아났다. 주정훈은 "항상 1등 한다는 생각을 하고 경기를 준비했다. 내가 상상했던 걸 이루지 못했지만 동메달을 따 감사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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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한국시간) 동메달을 따낸 뒤 김예선 감독과 태극기를 들고 기뻐하는 주정훈(왼쪽). 사진 대한장애인체육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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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훈은 4강전에서 만난 멕시코의 루이스 마리오 나헤라를 상대로 석패했다. 경기 초반 7-0으로 앞서다가 추격을 허용했고, 연장 혈투 끝에 8-10으로 역전패했다. 동메달결정전 이후엔 코칭스태프의 부축을 받아 나갔다. 그는 "8강전에서 무릎과 골반을 부딪혔다. 통증이 심해 다리가 잘 안 올라간다. '참을 수 있으면 무조건 참자'라는 생각으로 경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동메달 결정전을 앞두고 99번 정도는 포기하고 싶었다. (김예선)감독님께서 '나약한 소리 하지 마라. 인생에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다. 정신 차리라'고 말해줬다. 화장실에서 혼자 마음을 정리한 뒤, 진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하고 동메달결정전에 나갔다"고 했다. 시상식에선 금메달리스트 매트 부시(영국)과 은메달리스트 알리스카브 라마자노프(중립국선수단), 동메달리스트 에반 메델(미국)이 주정훈을 부축해주기도 했다.

주정훈은 그는 만 2세 때 경남 함안군에서 할머니 김분선 씨 손에 자랐다. 그러다 소여물 절단기에 오른손을 넣었다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주정훈은 기억도 하지 못하지만, 할머니 김씨는 아들 내외와 손자를 볼 때마다 본인이 죄인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주정훈은 초등학교 2학년 때 태권도를 접한 뒤 주변의 권유로 엘리트 태권도 선수의 길을 걸었다. 비장애인 선수들과 당당히 경쟁하던 주정훈은 주변의 시선에 상처받고 고교 2학년 때 운동을 포기했다. 그러나 태권도가 2020 도쿄 패럴림픽에서 처음으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자 2017년 12월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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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메달을 획득한 주정훈(왼쪽에서 세 번째)이 시상식에서 다른 메달리스트들 부축을 받으며 퇴장하는 모습. 사진 대한장애인체육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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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대회에서 동메달을 따낸 그는 할머니에게 메달을 보였지만, 이미 치매 증상으로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몇 개월 뒤 김씨는 세상을 떠났다. 그는 "할머니가 건강하셨을 때 이런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한 것이 참 아쉽다"고 말했다.

임종을 하지 못했던 주정훈은 선산을 찾은 뒤 "대회가 끝난 뒤 금메달과 함께 (평소 좋아했던)소고기를 싸 올게요"라고 약속했다. 아쉽게도 금메달은 아니지만 또다시 메달을 거머쥔 주정훈은 "약속한 대로 메달과 고기 반찬을 들고 묘소를 찾아가 인사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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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한국시간) 열린 2024 파리 패럴림픽 태권도 K44 80㎏에서 동메달을 따낸 주정훈(왼쪽). 사진 대한장애인체육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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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훈은 "밤새워서 경기를 보셨을 어머니와 아버지에게도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며 "그동안 무뚝뚝했는데, 애교를 부리는 막내아들이 되겠다"고 덧붙였다.

파리=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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