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서 사고로 오른손 잃어…평생 죄책감 느꼈던 할머니
파리 떠나기 전 묘소 찾아 약속 "메달과 고기반찬 들고 다시 올게요"
동메달 딴 주정훈 |
(파리=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장애인 태권도 국가대표 주정훈(30·SK에코플랜트)은 어린 시절을 경남 함안군 시골 할머니 집에서 보냈다.
맞벌이한 부모님이 육아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할머니 김분선 씨는 아들 내외 대신 손자 주정훈을 지극정성으로 키웠다.
사고는 주정훈이 걸음마를 뗀 만 2세 때 벌어졌다.
주정훈은 할머니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집 밖으로 나왔고 소여물 절단기에 오른손을 넣었다가 사고를 당했다.
그날부터 할머니 김씨는 아들 내외와 손자를 볼 때마다 본인이 죄인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주정훈은 워낙 어렸을 때 일이라 당시 사고를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김분선 씨는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았다.
김분선 씨는 2018년이 되어서야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죄책감이 사라져서가 아니었다. 병원에선 치매 진단을 내렸다.
할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을 안고 있던 주정훈은 무척이나 괴로워했다.
그래서 그는 세상 사람들의 롤모델이 되어 우뚝 선 자기 모습을 할머니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눈물 흘리는 주정훈 |
할머니의 총기는 나날이 희미해졌지만, 주정훈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이어온 태권도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2021년에 열린 도쿄 패럴림픽에 출전해 동메달을 획득했다.
동메달을 목에 걸고 귀국한 주정훈은 가장 먼저 할머니가 계신 요양원을 찾았다.
할머니는 여전히 주정훈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리고 몇 개월 뒤, 할머니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주정훈은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요양원을 찾았지만,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대신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온 힘을 다해 |
주정훈은 할머니를 가슴에 품고 다시 뛰었다.
파리 패럴림픽을 앞두고는 할머니를 모신 선산을 찾아 "대회가 끝난 뒤 금메달과 함께 (평소 좋아했던) 소고기를 싸 올게요"라고 약속했다.
주정훈은 31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파리 패럴림픽 태권도 남자 80㎏급 스포츠등급 K44 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16강과 8강을 가볍게 통과했지만 4강에서 만난 멕시코의 루이스 마리오 나헤라를 넘지 못했다.
경기 초반 7-0으로 앞서다가 추격을 허용했고, 연장 혈투 끝에 8-10으로 역전패했다.
아쉬움을 삼키던 주정훈은 깨끗하게 패배를 승복했다.
그리고 카자흐스탄의 눌란 돔바예프와 동메달 결정전에서 7-1로 승리, 다시 한번 시상대에 섰다.
간절히 원하던 금메달은 아니지만 후회는 없다.
주정훈은 이제, 메달과 고기반찬을 들고 할머니를 만나러 간다.
cyc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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