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출신… 23세 때 감전 사고
철인3종 선수 중 양팔 절단은 유일
불리한 수영, 사이클-육상으로 만회
아직 미정 수영 코스가 성적 가를 듯
한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 역사상 최초로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김황태. 2000년 사고로 양팔을 잃은 그는 아내 김진희 씨(위 작은 사진 오른쪽)의 도움을 받아 트라이애슬론 PTS3 등급 세계 랭킹 7위까지 올랐다. 트라애슬론 선수는 수영, 사이클, 육상을 연달아 해야 하는데 김황태는 사이클을 탈 때는 중심을 잡기 위해 의수를 착용한다. 대한장애인체육회·김황태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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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 가설 작업을 하다 2만2000V 고압선을 잘못 건드렸다. 정신을 잃었다 깨어 보니 두 팔이 없었다. 의사는 “목숨을 건진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했다. 쓴 소주로 아픔을 달래보려 해도 술잔조차 혼자 들 수 없었다. 김황태(47)가 스물세 살이던 2000년 여름의 일이다.
그때 고교 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동갑내기 친구 김진희 씨가 곁을 지키며 술잔을 채워줬다. 김 씨의 도움으로 김황태는 조금씩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다. 그러면서 김 씨가 술잔 대신 물병을 드는 일이 일어났다. 김황태가 마라톤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결국 부부가 된 두 사람은 2004년 딸을 얻었다.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받아온 생활기록부에 아버지 직업을 쓰는 칸이 있었다. 김황태는 이 칸을 채울 수 없었다. 펜을 들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직업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황태는 이 칸에 ‘국가대표’라는 네 글자를 채우기로 하고 뛰고 또 뛰었다.
김황태는 2020년 마침내 국가대표가 됐다. 종목은 마라톤이 아니라 태권도였다. 해병대 789기로 장애인이 되기 전부터 만능 스포츠맨이었던 김황태는 2018년 평창 겨울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을 앞두고 노르딕 스키 국가대표에 도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황태가 국가대표 타이틀을 따낸 K41 등급이 태권도 정식종목에서 빠지면서 김황태는 2021년 도쿄 패럴림픽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다시 트라이애슬론(철인3종) 선수로 변신한 김황태는 29일 막을 올린 파리 대회를 통해 패럴림픽 데뷔전을 치른다. 한국 트라이애슬론 선수가 패럴림픽 무대를 밟는 건 김황태가 처음이다. 김황태는 “이제 어른이 된 딸이 ‘아빠가 다치는 게 싫다. 집에만 계시라’고 했지만 패럴림픽에 꼭 나가보고 싶었다”면서 “아내가 그동안 고생을 많이 했는데 꼭 좋은 성적을 내서 보답하고 싶다”고 했다. 김 씨도 남편의 핸들러(경기 보조인)로 이번 대회에 참가 중이다.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경기는 수영(750m), 사이클(20km), 육상(5km) 순서로 경기를 치른다. 패럴림픽 때 각 종목은 장애 부위와 정도에 따라 등급별로 세부 종목을 따로 둔다. 다만 김황태가 출전하는 PTS3 등급에서 양팔이 모두 없는 선수는 김황태 뿐이다. 김황태는 사이클을 탈 때는 의수(義手)를 착용하는데 수영할 때는 허리 힘만으로 물살을 헤친다. 의수가 오히려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수영에서 불리한데도 패럴림픽행 티켓을 따냈다는 건 김황태가 사이클과 육상에서는 그만큼 뛰어나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번 대회 때는 유속이 빠르기로 정평이 나 있는 센강에서 수영 경기를 치른다는 점이다. 수영에서 차이가 크게 벌어지면 사이클과 육상으로 따라잡는 데도 한계가 있다. 김황태는 “평소 수영 기록이 18, 19분인데 지난해 센강에서 열린 테스트 이벤트 때는 27분에 그쳤다. 반환점을 지나 하류에서 상류로 거슬러 올라올 때는 떠내려가기 바빴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 조직위원회는 트라이애슬론 첫 종목이자 김황태가 출전하는 PTS3 등급 경기가 열리는 다음 달 1일까지 센강 유속을 점검해 수영 경기 방식을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 김황태는 “비가 많이 오면 수질이 나빠져서 수영 없이 사이클과 육상만 할 수도 있다고 들었다. 그러면 내가 유리한 건 사실이지만 요행을 바라지는 않겠다”면서 “상류에서 하류로 내려가는 식으로만 결정되어도 승산이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파리=김정훈 기자 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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