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입 공매도 과징금 신설 후 첫 판결서 패소
처벌 강화됐지만 실효성 확보는 더 어려워져
불법 공매도 기준, 과징금 수위 등 적정성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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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원회가 불법 공매도로 부과한 과징금에 대해 법원이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지난 2021년 불법 공매도 처벌 강화 이후 이뤄진 제재에 대해 여러 불복 소송이 진행 중인 가운데 나온 첫 판결에서 금융당국이 패소한 것이다.
정부가 불법 공매도와의 전쟁을 선포한 후 최근 수백억원의 과징금 부과 사례까지 나왔지만, 결국 소송대응에 실패하면서 처벌 강화가 무색해진 상황이다.
'불법 공매도' 과징금 신설 후 첫 소송서 금융위 '완패'
29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23일 외국계 금융회사 케플러 쉐브레(Kepler Cheuvreux S.A.)가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과징금 취소소송에서 원고(케플러) 전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해외 운용사와 국내 증권사 사이에서 문제의 주문을 중개한 케플러의 행위 과정에 불법 공매도를 하려던 의도가 없었고, 과징금의 대상이 된 공매도 주문금액 산정에도 오류가 있었다는 취지다.
증선위는 지난해 7월 케플러의 불법 공매도 행위에 대해 과징금 10억6300만원을 부과했다. 2021년 9월 펀드가 소유하지 않은 SK하이닉스 보통주 4만1919주(44억5천만원)를 매도해 '무차입 공매도'를 한 혐의다.
재판부는 "이 사건 과징금 처분은 비례의 원칙과 책임주의 원칙에 위반되는 등 재량권을 일탈·남용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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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케플러 측이 A펀드의 보유 주식에 대한 매도 위탁을 받았지만 실수로 B펀드에서 매도 주문을 내면서 결과적으로 무차입 공매도를 하게 됐다는 점에서 단순 과실에 기한 행위라는 점을 인정했다.
또 실제 케플러 측이 매도를 요청한 건 2만 9771주인데, 주문을 전달받은 증권사에서 매매기법상 위탁 받은 수량을 초과해 낸 4만1919주에 대한 주문금액으로 과징금이 매겨진 점도 적법하지 않다고 봤다. 최종적인 매도계약도 2만 9771주에 대해서만 체결됐기 때문이다.
케플러 측을 대리한 법무법인 화우는 "불법 공매도 규제를 강화한 이유는 해당 규제 취지를 잠탈하는 행위를 규율하고 부당이득을 환수하려는 것인데 수백만원 정도의 수수료만 받은 중개업자도 유사하게 제재하는 것이 맞는지 따져본 것"이라며 "과징금 산정의 기준이 되는 '공매도 주문금액'에 대해서도 참고할만한 판례"라고 설명했다.
불법 공매도 성립 기준, 제재 대상·수위 등 논란 커질 듯
기존에 불법 공매도(무차입 공매도)에 대한 제재는 '1억원 이하의 과태료'에 불과했지만, 2021년 4월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위법한 공매도 주문금액의 10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게 됐다. 1년 이상의 징역형과 부당이득의 3~5배에 해당하는 벌금형도 신설됐다.
제재 수위가 높아지면서 그만큼 제재의 실효성을 확보하기는 어려워진 상황이다. 지난해 3월 불법 공매도에 대해 첫 과징금을 부과받은 ESK자산운용을 시작으로 적게는 수십억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대 제재 대상이 된 금융회사들이 잇따라 불복 소송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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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강훈식 의원실이 금융위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 상반기까지 금융위·증선위에 제기된 과징금 처분 취소소송은 32건으로 이 중 상당수가 불법 공매도 사건이다. 신설된 불법 공매도 과징금 규정이 적용되기 전인 2022년과 2021년 불복 소송 건수가 각각 10건, 5건에 그친 것과 비교된다.
이들 재판 과정에서는 '불법 공매도' 성립 기준과 제재 대상·수위의 적합성 등을 두고 치열한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케플러의 사례처럼 불법 공매도가 이뤄지게 된 경위(고의성)나 단순 중개자에 불과한 지위(이득 여부) 등을 놓고 봤을 때 수십억~수백억원대 과징금은 과도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또 158억원 규모의 불법 공매도 혐의로 기소된 홍콩 HSBC의 최근 재판에서는 무차입 공매도의 발생 기준을 놓고도 다른 해석이 나왔다. 금융당국의 조사를 바탕으로 HSBC를 기소한 검찰은 무차입 공매도 '주문' 시점에서 이미 법을 위반했다고 적시했지만, 재판부는 해당 주문에 대해 '체결'이 이뤄져야 기수(범죄 성립)라고 본 것이다.
금융당국 출신의 한 법률 전문가는 "잦은 결과 번복은 단순히 금융당국이 체면을 구기게 되는 문제를 넘어 행정제재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정부와 제재 대상자의 시간적·물질적 비용을 모두 증가시킨다"며 "처벌을 강화한 만큼 국내 사정에 어두운 외국 기관들도 충분히 납득할만한 정합성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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