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세종문화회관 싱크넥스트 '광광, 굉굉' 공연에서 연주하는 성시영, 황민왕, 이일우. 세종문화회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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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 생황, 가야금 등 오래된 전통 악기가 혁신적인 소리를 만든다. 제각기 울려대는 듯한 소음이 하나의 음악이 된다. 얼핏 모순적이지만, 경계를 허물면 소리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젊은 국악 연주자들이 결성한 창작집단 '무소음'이 관객 앞에서 증명하려는 바다.
특히 그 중심에 있는 20년 지기 친구 사이, 서울시국악관현악단 단원이자 피리 연주자 성시영, 세계적 포스트록 밴드 잠비나이의 리더·기타리스트이자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수석악장 이일우, 음악그룹 블랙스트링의 황민왕 등 3인방은 그저 "이런 음악이 재밌어서" 한데 뭉쳤다.
이들은 지난해 세종문화회관 여름 축제 싱크넥스트에서 창작 공연 '광광, 굉굉'을 처음 선보인 데 이어 이달 31일 앙코르 공연으로 세종 S씨어터 무대에 다시 오른다. 11월엔 영국 사우스뱅크센터 퍼셀룸에서 열리는 런던재즈페스티벌 초청 공연도 앞두고 있다. 객석의 관객은 이들의 음악에 윤제호 작가의 미디어아트 작업까지 더해진, 그야말로 빛과 소리가 쏟아지는 한복판에 앉아 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최근 서울 광화문광장에 인접한 연습실에서 만난 이들은 그 순간을 위해, 작당모의하듯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공연 음악감독이자 작곡·일렉트로닉 기타 연주 등을 맡은 이일우가 신곡 악보를 보며 "생황, 가야금이 '와그작와그작' 대다가 대금이 나오고, '어억' 따라가 줘야 해"라고 '느낌적 느낌'을 지시했다. 그는 계속해서 '따라리~' '아, 아아~'라며 육성으로 소리를 전달했다. 그러자 황민왕이 "뒷부분 타악기 솔로는 채를 가져와서 치겠다"고 의견을 내는 듯 함께 공연을 완성해가고 있었다.
이일우는 "악보는 70~80% 정도만 쓰고 나머지는 연주자에게 맡긴다"고 했다. "연주자에 대한 신뢰가 있으니까요. 악보를 아무리 섬세하게 글로 써도 직접 소리로 표현하고 감성과 감성의 대화를 해야 메시지가 잘 전달되더라고요." 그러자 친구들도 말을 보탰다. 황민왕은 "일우는 지휘도 잘했을 것 같다"고, 성시영은 "스무 살 때부터 일우의 곡을 연주해봤기 때문에 익숙한 방식"이라고 했다.
세 사람은 1982년 동갑내기(이일우는 1983년 1월생)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동기생이다. 성시영과 이일우는 국악중·고를 다니며 밴드 활동도 함께했던, 26년이 넘은 인연이다. 지난해 어느 날 성시영이 싱크넥스트 기획공연차 자세한 설명도 없이 "시간 돼?"라고 오랜 친구들을 모았을 때, 이일우와 황민왕은 "뭘 하는지도 모르지만 그냥 한다"며 모였다. 올해 재공연에도 망설임은 없었다. 성시영은 "대체 불가능한 구성"이라고 단언했다.
2024년의 '광광, 굉굉'은 광장과 소음을 주제로 삼았던 지난해 공연에서 일부 덜고 비워내 새롭게 선보인다. 황민왕은 "행복을 얘기하려면 불행을 보여줘야 하듯 내 이야기의 본질에서 반대되는 걸 이야기하지 않으면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힘들더라"고, 성시영은 "조용한 공간에선 아주 작은 소리도 소음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일우는 "작년엔 제목에 이끌려 시끄럽고 깨부수는 느낌의 곡을 만들었다면 올해는 다른 면도 보여주려고 한다"며 "신곡이 3곡 추가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오늘의 광장이 갖는 장소성, '광광, 굉굉'이란 말 자체가 가진 리듬에서도 영감을 받았다. 이일우는 "음악 작업을 할 때 언제나 '실험에서만 끝내지 말자'고 다짐한다"며 "연주자에겐 실험적이고 촘촘히 맞물려진 리듬이지만, 듣는 분들에겐 오히려 쉽고 편안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재공연은 프로젝트성으로 꾸렸던 팀이 명맥을 잇게 됐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이일우는 "워낙 멤버들 합이 좋아서 농담 삼아 타임스스퀘어(미국 뉴욕), 트래펄가 광장(영국 런던) 등 전 세계의 광장을 돌며 음악을 만들면 재밌겠다'는 얘기를 같이한 적이 있는데 진짜 이뤄졌다"며 웃었다. 그러더니 "이렇게 뭉쳐보니 할 수 있는 게 많겠단 생각은 든다. 기회만 된다면 뉴욕도 좋고, 2028 LA올림픽도 좋다"고 진심을 섞어 농을 던진다. 황민왕은 "일우는 얘기한 걸 진짜 하는 스타일이라 가끔 겁날 때가 있다"고 받는다. "특히 일우와 시영이 '불과 기름'이거든요. 불이 붙어서 안 꺼지면 어떡해요. 제가 그나마 소방수 역할을 해야죠." 성시영은 고칠 말도 덧댈 말도 없이 "(민왕의 말에) 동감한다"면서 "우리가 자주 모인다면 또 다른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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