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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연재] 연합뉴스 '천병혁의 야구세상'

[천병혁의 야구세상] 43년 만에 '수기 기록' 포기하고 피치 클록 재는 기록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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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KBO가 이승엽에게 전달한 은퇴 경기 공식 '수기(手記)' 기록지.
(서울=연합뉴스) KBO 기록위원회가 특별 제작한 이승엽의 KBO리그 은퇴경기 공식 기록지 기념패. KBO 기록위원회는 지난달 3일 대구 삼성라이온즈 파크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삼성 라이온즈 경기 공식 기록지에 이승엽의 사진을 새긴 기념패를 제작해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이승엽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2017.11.3 [KBO 제공=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천병혁 기자 = 이달 초 KBO는 공식 기록원 모집공고를 냈는데 지난 13일 지원서 마감 결과 총 51명이 응모했다고 한다.

그냥 일반인이 아니라 전문기록원 양성 과정을 수료했거나 최소한 기록 강습회 수료증을 소지한 이들에게만 응모 자격을 줬다.

KBO는 서류전형과 실기 전형 및 1차 면접, 2차 면접을 거쳐 계약직 기록원 1명을 뽑을 예정이다.

그라운드에서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며 세이프와 아웃, 스트라이크 볼 등을 판정하는 심판과 달리 기록원은 팬들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KBO 기록원은 안타와 실책, 타점과 야수선택, 자책점과 실점, 폭투와 패스트볼 등은 물론 각종 세세한 기록을 공식적으로 판정하며 선수와 팀 기록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야구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제법 인기 있는 직종이다.

지난 1월 일반인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기록 강습회는 온라인 공고를 낸 지 33초 만에 200명 정원이 마감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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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공식 기록원 모집 공고
[KBO 홈페이지 캡처]


기록원의 실제 근무 환경은 녹록지 않다.

현재 KBO 공식 기록원은 총 15명이다.

하루에 5경기씩 열리는 1군 경기에 2명씩, 2군 경기에는 1명씩 들어가는데 단 1명도 여유가 없다.

지난해까지는 16명이었다.

기록위원장은 평소 경기에 투입되지 않고 기록 전반을 관리했다.

하지만 전임 김태선 위원장이 지난 연말 정년 퇴임한 뒤 KBO가 추가 기록원을 뽑지 않아 15명으로 줄었다.

이 때문에 현재 이종훈 기록위원장은 거의 매일 경기에 투입돼 직접 기록 판정을 내리고 있다.

KBO 심판은 시즌 개막일 기준 52명으로 넉넉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대기 인원이 있다.

그러나 인원 여유가 없는 기록원은 다치거나 경조사가 생기면 아주 큰 일이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막막한 상태라고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발생했을 당시에는 은퇴한 기록원을 급히 불러 투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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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구장 공식 기록실
[촬영=김경윤]



이처럼 빡빡한 근무 일정 속에 KBO 공식 기록원들은 올 시즌 새로운 업무가 생기면서 지난 43년간 이어온 '수기(手記) 기록'을 포기했다.

KBO 1군 기록은 1990년대 후반부터 2명이 투입돼 한 명은 전통적인 '수기 기록', 다른 한명은 '전산 기록'을 담당했다.

그런데 올 시즌 KBO가 시범적으로 도입한 '피치 클록' 업무가 기록원에게 떨어졌다.

한 명은 전산 기록을 계속하지만, 다른 한 명은 '수기 기록'을 포기하고 대신 초시계를 잡게 된 것이다.

전산 기록은 아직 시스템 문제로 인해 복잡한 상황이 발생하면 경기 시간상으로 제때 입력할 수 없는 큰 단점이 있다.

공식 기록원이 전산 입력 때문에 다음 경기 상황을 놓칠 수도 있는 것이다.

기록원들은 이런 문제점뿐만 아니라 '수기 기록'의 역사성을 지키기 위해 KBO에 제고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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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한국시리즈 5차전 갑지 기록지.
(서울=연합뉴스) 2023년 11월 1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kt-LG 한국시리즈 5차전이 KBO리그에서 공식 수기로 기록한 마지막 경기다. [KBO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대신 KBO는 각 구장에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수기 기록을 하고 있다.

혹시라도 공식 기록원이 전산 입력을 하느라 경기 상황을 놓치면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아르바이트생이 작성하는 수기 기록은 단순 참고 자료일 뿐이지 공식 기록이 될 수는 없다.

결국 1982년 KBO리그 출범 이후 이어져 온 '수기 기록'이 올 시즌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도 올 시즌 자동 투구판정시스템(ABS)과 피치 클록을 도입한 KBO는 공식 기록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분위기다.

KBO가 8년 만에 기록원 모집 공고를 낸 이유는 올 시즌을 끝으로 고참 기록원 한 명이 또 은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명이 충원되더라도 내년 KBO 기록원은 똑같이 15명이다.

프로야구의 모든 경기 상황을 하나하나 판정하고 역사에 남기는 공식 기록원은 웬만하면 아픈 것도 참아야 하고, 경조사는 동료 눈치를 봐야 한다.

shoeles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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