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개막식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 난민 대표팀이 입장하고 있다. 파리/로이터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2024 파리 올림픽 개막식은 성대했다. 경기장이 아닌 강변에서 프랑스는 자신들이 세계에 기여했다고 자부하는 문화유산들과 자유·평등·박애의 정신, 성소수자와 이주민 인권 등 여러 가치를 화려한 퍼포먼스와 함께 선보였다. 나라 이름을 내걸고 벌이는 경쟁 속에 그런 가치들은 그저 볼거리로 끝나버리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번 올림픽에서 국가별 대표단과 함께 올림픽 무대에 선 국가 없는 대표단이 있다. 난민 대표단. 이 팀에 속한 복싱 선수 신디 응감바가 처음으로 메달을 확보했다 해서 며칠 새 관심을 끌었다. 지난 5월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아이오시) 위원장은 12개 종목 36명의 선수가 파리 올림픽에서 ‘난민 대표팀’으로 출전한다고 발표했다. 세계에서 난민 혹은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1억명에 이른다. 아이오시 난민 올림픽팀은 그들을 대표한다. 난민팀이 올림픽에 나오는 것은 벌써 세번째다.
난민 대표팀은 국가별 선발 단계를 거칠 수가 없다. 그래서 아이오시 집행위원회가 대표팀을 뽑는다. 난민이라 해서 자격도 없는데 내보내는 것은 물론 아니다. 참가하려면 당연히 해당 스포츠의 여러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등 기량이 입증돼야 한다. 동시에 유엔난민기구(UNHCR)가 인정하는 수용국에서 난민으로 거주하고 있어야 한다. 스포츠, 성별 및 지역 측면에서 균형도 고려한다.
“가족 생각에 밤낮없이 울었다”
올림픽에 출전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2017년 설립된 올림픽난민재단(ORF)이 ‘올림픽 연대’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선수들을 돕는다. 체류국 도움도 받는다. 난민을 수용하고 있는 나라들, 오스트리아, 캐나다, 프랑스, 독일, 영국, 요르단, 케냐, 멕시코, 미국 등의 올림픽위원회가 이번 난민팀을 지원해준다. 출전 종목은 육상, 배드민턴, 복싱, 사이클링, 유도, 수영, 역도 등인데 전체 36명 중 태권도 선수가 5명이나 된다.
대표단 기수인 야흐야 고타니도 태권도 선수다. 시리아 출신인 그는 일곱 남매의 맏이다. 2011년 내전이 발발하자 가족과 함께 시리아를 떠나 요르단으로 피신했다. 난민 캠프에서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해 5년 만에 2단이 됐다고 한다.
카스라 메디푸르네자드는 이란 태생이다. 대표팀 웹사이트 등에 따르면 열살에 태권도를 시작했고 여러차례 이란 챔피언이 됐다. 2017년 이란을 떠나 독일에 망명했고 2년 뒤 난민 자격으로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 나갔다. 도쿄 올림픽에도 난민팀으로 출전했던 하디 티란발리푸르, 디나 푸르유네스 랑게루디 모두 이란 출신 태권도 선수들이다.
파르자드 만수리는 아프가니스탄 태생이다. 그는 3년 전 도쿄 올림픽 개막식에서 아프간 대표단 기수였다. 그해 8월 미군이 20년 전쟁을 끝내고 허둥지둥 철수해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카불에는 순식간에 탈레반 정권이 들어섰다. 1996년에서 2001년 사이 처음 정권을 잡았던 시기에 탈레반은 여성 차별로 악명 높았다. 그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스포츠도 금지했다.
만일 만수리가 유명한 선수가 아니었더라면, 어쩌면 지금도 아프간에서 살아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올림픽 대표팀 기수였다는 것 때문에 오히려 그는 탈레반의 탄압을 피해 고향을 떠나야 했다. 아프간 전역이 탈레반에 함락되자마자 탈출할 방법을 모색했고, 몇몇 식구와 함께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하지만 뒤에 남겨진 가족들 생각에 “밤낮으로 울었다”고 한다. 태권도 유망주는 열아홉살에 그렇게 고향을 떠났고, 이제는 난민이라는 이름으로 스포츠를 계속하고 있다.
왜 이들은 태권도를 택했을까. 세계태권도연맹(WT)이 설립한 태권도박애재단(THF)은 전쟁 또는 자연재해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은 난민 청소년들에게 태권도를 무상으로 가르치는 사업을 꾸준히 해왔다. 이번 난민 대표팀 기수인 야흐야도 요르단의 아즈라크 난민 캠프에서 이 재단이 진행한 프로그램을 통해 태권도를 배웠다. 재단은 2023년 아이오시로부터 ‘올림픽컵’을 받았다. 태권도를 통해 세계 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동안에도 지구상에는 전쟁의 포연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수영 선수 밸러리 타라지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미국의 전설적인 수영 선수 마이클 펠프스를 보면서 꿈을 키웠다고 한다. 파리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 나서게 됐지만 그가 훈련하고 대회에 나가는 동안에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초토화되고 있다. 4만명이 죽었는데 그중 절반이 아이들이다. 타라지는 올림픽 참가가 자신에게는 추모의 행위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유엔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반대 때문에 팔레스타인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팔레스타인도 올림픽에는 출전을 한다. 이번엔 8명이 나섰다. 1996년 첫 출전 이래 여덟번째 여름올림픽이다. 그런데 대회를 앞두고 벌어진 전쟁에서 스포츠 선수들 역시 큰 피해를 입었다. 2023년 10월부터 2024년 7월까지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180명이 넘는 선수와 스포츠 관계자가 숨졌다. 그중에는 가라테 선수 나감 아부 삼라, 팔레스타인의 첫 올림픽 기수였던 마지드 아부 마라힐도 있었다.
☞한겨레S 뉴스레터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뉴스레터’를 쳐보세요.
☞한겨레신문 정기구독. 검색창에 ‘한겨레 하니누리’를 쳐보세요.
가슴에 팔레스타인 깃발
프랑스는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하지 않는다. 지난 5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국가를 공식 인정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도 “유용한 순간”에 그런 조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픔을 딛고 출전한 팔레스타인 대표단이 지난달 25일 파리에 도착하자 군중들이 꽃다발로 환영했다.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는 이날 “팔레스타인에 자유를”이라는 구호가 울려퍼졌다.
올림픽이 시작될 무렵, 전쟁범죄로 지탄받는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미국 워싱턴의 연방의회에서 연설했다. 하지만 올림픽 현장에서 가자 주민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타라지와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 출신 부모를 둔 야잔 바우와브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나고 자란 수영 선수다. 스물네살 바우와브는 사우디와 이탈리아 시민권을 갖고 있지만 이번 올림픽에는 팔레스타인 대표로 출전했다.
올림픽은 엘리트 스포츠의 제전이고, 돈 잔치에 상업적 이벤트일 뿐이라고들 말한다. 혹은 국가주의 힘자랑 무대다, 하는 비판도 많다. 하지만 스포츠를 통해 세계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 그 감동과 재미는 놓치기 힘들다. 어쩌면 난민 대표단이나 팔레스타인에 연대를 보내는 선수들이야말로 평화, 인권, 다양성, 화해와 우애 같은 올림픽의 가치를 대변하는 이들이 아닐까.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
신문기자로 오래 일했고, ‘사라진, 버려진, 남겨진’, ‘10년 후 세계사’ 등의 책을 냈다.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 목소리에 힘을 더해주세요 [한겨레 후원]
▶▶행운을 높이는 오늘의 운세, 타로, 메뉴 추천 [확인하기]▶▶행운을 높이는 오늘의 운세, 타로, 메뉴 추천 [확인하기]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