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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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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 몰아내 ‘두번째 독립’ 쟁취한 방글라데시, 앞으로 미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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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셰이크 하시나 전 총리가 분노한 시위대를 피해 망명·퇴진한 5일(현지시간) 방글라데시 다카 총리 관저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환호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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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순간이다. 방글라데시의 두 번째 독립이나 마찬가지다.”

호주에서 망명 중인 무바샤르 하산은 “방글라데시는 셰이크 하시나의 폭정에 매여 있었다. 독재자가 무너졌다”며 5일(현지시간) 알자지라에 이 같이 말했다.

이날 셰이크 하시나 전 총리가 반정부 시위대를 피해 인도로 피신하고 총리직에서 물러나며 방글라데시에는 환호가 퍼졌다. 알자지라·AP통신에 따르면 수십만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깃발을 흔들고 총리 퇴진을 축하하며 환호했다. 분노한 군중은 총리 관저로 몰려들어 창문을 부수고 하시나 전 총리의 초상화를 훼손했으며 쓸만한 물건을 챙겨 나왔다. 하시나 전 총리의 부친이자 방글라데시의 ‘국부’로 꼽히는 셰이크 무지부르 라만 초대 총리의 동상을 끌어내리려는 이들도 있었다.

지난 5주 동안 방글라데시 전국을 휩쓸었던 대규모 시위는 이로써 1막을 내렸다. 지난달 초 독립유공자 자녀를 위한 정부 일자리 할당제에 반대하는 시위가 시작됐고, 정부가 강경 진압에 나서며 유혈 사태가 전개됐다. 시위와 관련해 체포된 이들은 1만명 이상이며 300명 넘게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시위는 할당제 반대를 넘어 하시나 총리 퇴진과 진압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로 진화했다. 시위에 나선 한 학생은 “이는 폭군 하시나의 종말일뿐만 아니라 그가 만든 마피아 국가의 종지부”라고 AP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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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정부 시위로 5일(현지시간) 물러난 셰이크 하시나 전 방글라데시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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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새 막을 맞아 방글라데시는 안정과 더 큰 혼란 사이 갈림길에 섰다. 하시나 전 총리 사임 이후 방글라데시 군부는 과도정부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군부는 “살인과 불의에 정의를 가져오겠다. 군대를 믿어달라”며 진정에 나섰다. 이후 모하메드 샤하부딘 방글라데시 대통령은 군부 및 야당과 긴급회의를 열어 하시나 전 총리의 정적이었던 칼레다 지아 전 총리(78)와 시위에서 체포된 이들을 전원 석방하기로 결정했다. 샤하부딘 대통령은 또한 통금령을 해제했으며 현 의회를 해산하고 새 총선을 치르겠다고 밝혔다.

이번 시위를 주도한 학생단체 지도부는 6일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경제학자, 빈곤퇴치 사회운동가인 무함마드 유누스 박사를 과도정부 수반으로 추천했다. 치료차 프랑스에 있는 유누스 박사는 이날 르피가로 인터뷰에서 “지금이 국가 비상사태이고 다른 모든 대안이 소용없어졌다고 한다면 (과도)정부를 이끌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유누스 박사가 과도정부의 최고 고문을 맡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방글라데시 정치 전문가 알리 리아즈 일리노이주립대 교수는 “방글라데시는 이제 엄청난 정치적 도전에 직면했다. 군이 과연 중재자 역할을 유지할지 지켜봐야 한다”고 AP에 밝혔다. 정치분석가 자헤드 우르 라만 역시 “하시나가 나라에 입힌 가장 큰 피해는 사법부, 미디어, 법 집행 기관과 같은 주요 기관의 부패다. 이를 회복하는 데엔 긴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알자지라에 밝혔다.

셰이크 하시나 전 총리는 누구…초대 총리 딸·철권 통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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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크 무지부르 라만 방글라데시 초대 총리의 동상이 5일(현지시간) 시위대의 공격을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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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정치사는 총리 암살, 쿠데타, 민주 항쟁으로 이어지는 질곡을 겪었다. 1971년 독립 이후 쿠데타 혹은 쿠데타 시도가 20차례 이상 발생했다. 하시나 전 총리의 부친 라만 초대 총리도 1975년 군사 쿠데타로 암살당했다. 당시 총리 일가족도 함께 살해됐으나 하시나 전 총리는 해외에 거주하고 있어 화를 면했다.

그해 쿠데타가 두 차례 더 일어났고, 11월 지아우르 라만 장군이 권력을 잡으며 일단락됐다. 라만 장군은 1981년 군 장교들의 반란으로 살해된다. 이후 후세인 무함마드 에샤드 장군이 계엄령을 거쳐 1990년대까지 군부 독재를 이끌었다.

하시나 전 총리는 에샤드 장군을 몰아낸 민주 항쟁을 이끌어 1996년 첫 총리직에 올랐다. 이때만 해도 그의 등장이 “상쾌한 공기를 불어넣었다. 하시나 전 총리는 (당시) 민주적이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2009년 재집권에 성공한 이후 선거 패배, 망명, 암살 시도 등을 겪었고, 점차 반대 의견을 탄압하는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2009년 이래 안보 기관이 연루된 실종 사건이 600건 이상이라는 집계도 있다.

그는 올 초 치른 총선에서 야당의 보이콧과 최저 투표율 덕에 5연임을 거머쥐었다. 하시나 전 총리는 이번에도 반정부 시위대를 “테러리스트”, “라자카르(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당시 파키스탄에 부역한 이들을 일컫던 표현)”라며 낙인찍었다.

방글라데시 변호사 겸 활동가 샤딘 말릭은 “하시나 전 총리는 가장 높은 수준의 트라우마, 즉 온 가족의 죽음을 겪었다. 그 개인적 트라우마가 그의 정치적 행동에 반영돼있다고 느꼈다”고 NYT에 말했다. 그는 “우리는 마침내 독재 정권에서 벗어났다. 이전에는 군사 독재자가 있었지만 이 민간 독재자(하시나 전 총리)는 그보다 더 독재적이었다”고 덧붙였다.

참지 않는 새 세대·등돌린 군…“법의 심판대에 세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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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크 하시나 전 방글라데시 총리의 얼굴이 담긴 종이가 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시위에서 짓밟히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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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나 전 총리가 자랑했던 임기 내 경제 성장은 새 세대의 요구 앞에 무색해졌다. 남아시아 전문 저널리스트 제니퍼 초두리는 알자지라 기고에서 “하시나가 인권침해, 억압, 부패, 불평등을 경제 성장의 불가피한 대가로 제시했던 것은 엄청난 역효과를 낳았다”고 짚었다. 그는 “방글라데시 구세대는 부조리를 피해 해외로 떠났다면, 최근 성인이 된 Z세대는 남아서 나라를 바꾸기를 택했다. 이들은 침묵하지 않고 상황을 개선함으로써 나라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려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위기 국면에선 군을 시위 진압용으로 동원한 것이 하시나 전 총리의 운명을 앞당긴 측면도 있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방글라데시에서 군대는 대체로 중립적인 조직으로 인식되며 폭넓은 신뢰를 받고 있다.

이번에도 전직 군 장성들은 하시나 전 총리가 국경에서 군대를 철수해 시위 진압에 투입하기로 결정한 것을 비판했으며 시위를 지지하고 나섰다. 나오미 호세인 소아스런던대 교수는 “지난 4일의 인명피해에도 불구하고 시위가 다시 이어지면서 5일엔 ‘완전한 피바다’가 되리란 두려움이 있었다. 이로 인해 군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제 방글라데시 시위대는 더 큰 목표를 겨냥하고 있다. 시위에서 죽고 다친 이들을 위해 정의를 바로 세우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일이다. 시위 기간 두 차례 구금돼 고문을 당했던 학생지도자 나히드 이슬람은 “셰이크 하시나가 도망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그를 법의 심판대에 세울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인도 언론에 따르면 하시나 전 총리는 지난 5일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에 도착해 안전가옥으로 이동했다. 그와 동행한 자매 레하나는 영국 시민권자로, 둘은 차후 영국으로 망명을 신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시나 전 총리의 아들 사지브 와제드 조이는 “그는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수가 반기를 든 데에 실망했다. 정치적 복귀를 시도하지 않을 것”이라고 BBC에 말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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