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최저임금위 노동자위원 인터뷰
“공익위원 견제 위해 회의 생중계해야”
최저임금 심의 ‘노동계 전략 부재’도 지적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인 박정훈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이 15일 서울 강서구 공공운수노조 회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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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약 두 달간의 심의 끝에 내년 최저시급이 올해보다 170원(1.7%) 오른 1만30원(월급 기준 209만6270원)으로 결정됐다. 인상률 1.7%는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수치다.
민주노총 추천으로 지난 5월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으로 위촉된 박정훈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39)은 올해 처음으로 최저임금 심의에 참여해 배달라이더·방문점검원·웹툰작가 등 ‘도급제 노동자 최저임금’ 논의를 주도했다.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을 지낸 그는 지난 3월 부위원장이 되기 전까지 배달라이더로도 일했다.
박 부위원장은 15일 서울 강서구 공공운수노조 회관에서 기자와 인터뷰하면서 “최저임금 심의는 공익(위원)놀음”이라고 평가했다. 차등 적용 안건이 부결되고 내년 최저임금이 1만원가량이 될 것이라는 걸 예상했지만 이 경로를 바꿔내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다만 그는 공익위원들이 최저임금 인상률을 억제하려는 전략을 쓴 것뿐 아니라 노동계의 전략 부재도 문제라고 짚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처음으로 최임위 노동자위원 자격으로 심의에 참여했는데 올해 심의를 평가한다면.
“업종별 차등 적용 안건은 최저임금을 1만원에 묶어두기 위한 수단일 뿐 통과되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정부와 사용자가 ‘설계’한 논의 구도를 흔드는 것이 올해 최저임금 투쟁 목표가 돼야 한다는 걸 공공운수노조 내부에 공유했다. 예측은 ‘100점’이었지만 최저임금위원으로선 ‘0점’이었다. 눈 뜨고 코 베인 격이다. 뻔히 보이는 판을 뒤집기 위해 지난 5월21일 1차 전원회의 때부터 배달라이더·방문점검원 등 도급제 노동자에게 별도로 적용할 최저임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아울러 최저임금 1만원이 목표가 아니라고 했다. 차등 적용 논의는 최대한 짧게 가져가려고 했다. 하지만 짜여진 판을 뒤집을 방법이 많지 않았다. 회의에 참여하면서 예측이 되는 것과 회의장 밖에서 노동자들을 설득하고 시민 여론을 만들어가는 것 사이에는 너무나 큰 간극이 있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0점’이라는 점수를 준 거다.”
- 올해 차등 적용은 여느 해보다 뜨거운 쟁점이었다. 왜 이 안건이 부결될 것이라 예상했나.
“올해가 예년과 달랐던 것은 정부, 한국은행 등이 차등 적용 쟁점을 주도했다는 점이다. 정부 목표는 돌봄 분야에서 이주노동자를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으로 쓰는 것이었다. 이는 사용자위원들의 관심사인 음식점, 편의점, 택시 등 업종 차등 적용과 거리가 있었다. 아울러 사용자위원 구성을 보면 돌봄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 위원이 없다. 공익위원들도 최저임금제도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차등 적용 문을 여는 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정부 목표는 최임위에서 관철되긴 어렵다고 예상했다. 대신 정부는 최저임금을 주지 않아도 되는 비공식 가사노동시장에 외국인 유학생, 이주노동자 가족 등을 투입하는 ‘꼼수’를 선택했다.”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인 박정훈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이 15일 서울 강서구 공공운수노조 회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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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저임금 심의가 어떻게 굴러갈지 대략 예상을 했는데 왜 대응이 안 된 건가.
“야구가 ‘투수놀음’이라면 최저임금 심의는 ‘공익(위원)놀음’이다. 공익위원이 합의든 표결이든 원하는 대로 끌고갈 수 있는 구조다. 심의 막판에 내년 최저임금 액수 정할 때는 공익위원들이 사실상 신호 위반을 했다. 지난 11~12일 논의를 끝내려고 생각해놓고 우리에겐 미리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 지난해의 경우 노사가 11차 수정안까지 냈는데 올해는 4차 수정안 이후 최종안을 내라고 했다. 공익위원들에게 견제구를 던질 방법이 사실상 없었다.”
- 매년 최임위 논의를 두고 ‘밀실주의’ 지적이 나온다.
“공익위원들이 사실상 모든 걸 결정하는 구조를 바꾸기 위해선 최임위 회의를 생중계해야 한다. 생중계가 된다면 최임위 논의를 노사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공익위원들이 끌고간다는 점이 보일 것이다. 노사 양측에도 생중계 시 위험부담이 있겠지만 노사의 혁신을 유도하기 위해서라도 생중계가 필요하다. 언론에 보도되는 노사의 모두발언과 실제 회의는 전혀 다르게 진행되기도 한다. 최임위 논의가 공개되면 편하게 대화를 할 수 없다거나 긴밀한 소통이 어렵다고 하는데 최임위 회의야말로 정돈된 이야기가 오가야 한다고 본다.”
- 내년 최저시급이 올해보다 170원(1.7%) 오른 1만30원으로 결정됐다.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인상률일 거라 예상했나.
“차등 적용 안건은 부결되고 액수는 1만원을 조금 웃도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예상은 했다. 사용자위원들이 네 차례에 걸쳐 10~30원씩만 올린 안을 제시해 사용자위원 4차 수정안이 9940원(0.8% 인상)에 불과했는데도 논의는 사실상 종결됐다. 공익위원들은 노사가 심의촉진구간을 요구하지 않는 한 끝까지 수정안 제출을 요구하겠다고 했지만 이는 되레 심의촉진구간을 내겠다는 이야기다. 사용자위원들은 최저임금이 1만원을 넘는 데 대한 부담감이 있고, 노동자위원들은 1만원을 넘기지 못하는 데 대한 부담감이 있기 때문에 양측이 심의촉진구간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는 걸 공익위원들이 노린 것이다. 결국 노사의 4차 수정안 제시 이후 1만(1.4% 인상)~1만290원(4.4% 인상)이라는 심의촉진구간이 나왔고, 노사는 이 구간 안에서 최종 제시안을 냈다. 심의촉진구간 상한선이 ‘국민경제생산성 상승률(경제성장률+소비자물가상승률-취업자증가율)’을 구하는 산식인 것을 보고 내년 최저임금을 1만원가량으로 하려 한다는 공익위원들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2022년, 2023년 적용 최저임금액 기준이있던 산식이 하한선도 아닌 상한선이 됐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은 심의촉진구간 상한선 아래에서 정해질 수밖에 없다.”
- 향후 노동계는 어떤 대응을 준비하고 있나.
“복기·평가를 하고 내년 최저임금 심의를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이번 최저임금 심의 과정에서 노동계 전략이 부재했다고 생각한다. 민주노총의 경우 차등 적용 안건 표결이 실제로 어떻게 될지에 대한 판단이 정확하지 않았다. 만약 차등 적용 안건이 통과될 것이라고 봤다면 초기부터 차등 적용 부결 계획을 세웠어야 했는데 판단과 실천이 제대로 맞물리지 않았다. 차등 적용 안건 표결은 지난 2일 진행됐는데 정부세종청사 앞 대규모 집회는 이틀 뒤인 4일에 잡혀 있었다. 그리고 사용자위원들이 차등 적용을 요구한 업종인 편의점, 음식점 등에서 일하는 당사자 조직도 하지 못했다. 당사자 운동과 내셔널센터(민주노총)의 전략이 없는 상황에서 최임위 노동자위원들이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인 박정훈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이 15일 서울 강서구 공공운수노조 회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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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최임위는 예년과 달리 1986년 최저임금법 제정 이후 법전에서 잠자고 있던 5조 3항(도급제 노동자 최저임금)에 대한 논의를 처음 시작했다. 노동자위원 중 가장 적극적으로 이 논의를 제기한 이유가 있나.
“우선 특수고용직·플랫폼 종사자와 프리랜서 등 최저임금법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늘고 있다. 노동계는 그간 경영계의 차등 적용 주장을 막는 수세적 입장이었는데 공세적으로 최저임금 적용 확대 의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봤다. 최저임금법 취지가 개별적 노사관계에서 협상력이 없는 노동자를 위해 국가가 직접 개입해 저임금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다. 산업구조 변화로 ‘정보 비대칭’이라는 문제도 생겼다. 배달의민족을 예로 들면 애플리케이션에 로그인해 있는 노동자 수, 일감의 수, 시세 등의 정보를 노동자는 알 수 없고 플랫폼 업체만 알고 있다. 여기에도 국가가 개입할 필요성이 있는 거다. 고용노동부도 최임위에서 도급제 노동자 최저임금을 정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양대노총의 조직적 역량, 광범위한 운동 등을 바탕으로 이 쟁점이 제기된 건 아니기 때문에 ‘추후 논의할 수 있다’는 진지를 구축하는 수준에 그쳤다. 최저임금위원으로서 스스로에게 0점을 준 주요한 이유다. 향후 최임위가 이 쟁점을 다루지 않을 수 없도록 하는 운동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
-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최저임금 결정 제도 개선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노동자위원으로서 어떤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나.
“노·사·공익위원이 최임위라는 사회적 대화 기구를 만들어 교섭을 하는 건 나쁘지 않다고 본다. 다만 아까도 말했지만 공익위원에 대한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 방법론 중 하나는 생중계를 하는 것이다. 또다른 방법은 물가상승률 등 일부 지표는 기본적으로 깔고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이번처럼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인상률이 나오진 않을 것이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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