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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질병과 위생관리

"절대 오래 살고 싶지 않아요" 너무 큰 돈이 드는 재난, 고령화 [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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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조동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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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제주도에서 열렸던 대한신경외과 춘계 학술대회, 그때의 장면이 여전히 선명한 건 당시 받았던 '충격' 때문일 거다. 충격적인 장면은 '고령화와 의료'라는 특별 세션에서 발생했다. 한 강연자wjsansrk는 고령화 사회를 대비해야 하는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했다. 고령화의 첫 번째 원인은 장수, 즉 오래 사는 것인데, 이는 '정년 퇴임한 후 돈을 못 버는 상태로 살아가는 기간이 연장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고령화의 두 번째 원인인 저출생은 '돈 못 버는 노인을 먹여 살릴 젊은이가 적다'는 것을 뜻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다녀온 유럽 국가의 인터뷰 동영상을 틀었다. 거기에는 90대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60대 딸의 적나라한 문장이 담겨 있었다.

"제 현재 삶은 재난(disaster)입니다."

60대 딸의 재난은 어머니가 걷는 게 불편해지면서 시작됐다. 어머니는 어딘가 가고 싶을 때면 딸을 불렀다. 딸의 팔에 기대면 어머니는 그럭저럭 걸을 수 있었지만, 그만큼 딸의 무릎에는 어머니의 무게가 보태졌다. 어머니에게 생겨난 치매 증세는 그 어떤 대책으로도 해결할 길이 없었다. 정부가 치매 노인을 위한 위탁 시설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그 시설에 어머니를 모시고 오가는 일이 60대 딸에게는 버거웠다. 치매 노인을 완전히 돌봐주는 고품격 사설 요양원은 정부의 보조를 받을 수 없었다. 연금이 유일한 소득인 어머니와 딸의 주머니로는 그저 생존할 수밖에 없었다.

"저는 절대 오래 살지 않고 싶어요. 딱 걸을 수 있을 때까지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고령화로 의료 수요는 증가하지만



세계보건기구 보고서에는 "The aging population has contributed to an acute global shortage of doctors and nurses"라는 문구가 있다. 보건복지부가 2,000명 의대 증원 정책을 발표하면서 그 첫 번째 이유로 한국의 고령화 문제를 꼽은 것도 세계보건기구와 같은 맥락이었다. 고령화가 되면 의료 수요가 늘어날 것은 '의학 및 보건학 박사 학위 따위'가 없어도 쉽게 전망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보다 고령화를 먼저 겪은 나라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먼저 영국을 살펴보자. 영국의 공공의료제도(NHS)는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모범사례로 평가돼 왔다. '이상하게도'라고 한 것은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인데, 심지어 영국 자체 평가도 마찬가지이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영국 최고 권위 의학자는 '영국의 공공의료시스템은 국가적인 비리(스캔들)'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세계 3대 의학 저널인 란셋에 발표했고, 영국 내에서 갑상선 암 환자가 2년 넘게 기다리다 사망한 경우도 기사화된 바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영국의 공공 의료시스템은 붕괴 중이고, 그것이 영국의 고령화로 더 빨라질 것으로 분석했다.

이에 대해 영국은 어떤 대책을 내놓았을까? 그것은 영국 공공의료시스템의 변화를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영국 의료 시스템의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바로 외국인 의사 도입이다. 최근 그 증가세가 가파른데, 2021년 기준 영국에서 배출된 의사의 62.4%가 외국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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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국내에서도 외국 의사를 도입하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이미 영국은 그렇게 하고 있었다. 영국의 의사 수입 국가를 살펴보면 1위 인도, 2위 파키스탄, 3위 이집트, 4위 나이지리아, 5위 수단이다. 특히 나이지리아와 수단에서 의사를 수입하는 것을 두고 국제적인 비판이 강하다. 이들 국가는 인구 대비 의사 숫자가 영국의 1/3에 불과한데, 자국의 의사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보건 후진국의 사정은 '나 몰라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국제적 비난에도 외국 의사를 수입하는 이유를 영국은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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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영국에서 배출된 의사 중 10%가 영국 공공의료시스템을 떠났고, 이 비율은 30%까지 치솟을 전망인데 그들을 붙잡으려면 돈이 많이 든다.'
'외국에서 의사를 수입하면 그들의 학비를 대지 않았기 때문에 비용은 영국 전공의보다 싼 것이다.'
'외국 의사가 많아지면 영국 공공병원 의사들이 임금을 올려달라고 파업하는 명분도 약하게 할 것이다.'

결국, 돈 때문이었다.



결국, 돈 때문이었다. 고령화로 의료 수요가 늘어나는 건 맞다. 하지만, 그걸 지금의 퀄리티로 감당하는 건 돈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외국 의사를 수입한 것이다. 15년 동안 외국 의사를 수입하고 교육하는데, 24억 파운드(4조 2천억 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그렇다면 영국 공공의료시스템을 떠나는 영국 출신 의사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가장 많은 곳은 호주인 것 같은데, 호주 정부는 영국을 떠난 의사들 5명 중 1명이 호주로 오고 있다고 자료를 배포한 바 있다. 반면 국내 영국 전문가들은 호주보다 영국 내로 옮기는 것이 더 많을 것이라고 분석했는데, 바로 영국 사설 병원(private hospital)이다. 돈을 한 푼도 내지 않은 공공병원 대신 개인 돈을 내야 하는 사설 병원이 영국에서 늘고 있다. 영국 런던에 있는 대표적인 사설 병원의 홈페이지를 들여다보면, 이런 문구가 나온다.

'나쁜 (공공)의료 서비스를 기다리느라 수개월 혹은 수년을 낭비하기엔 당신의 인생은 너무 소중합니다. 당신의 비용을 직접 낼 결심을 했다면 바로 연락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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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사설 병원의 비용은 미국만큼 비싼 곳도 있는데, 이런 곳에는 영국 명문 의대를 졸업한 의사들이 많다고 국내 전문가들은 말한다. 고령화로 엄청나게 늘어난 의료 수요를 감당하려면 돈이 훨씬 많이 드는데, 그 돈을 충당할 수가 없으니 외국 의사를 수입했고, 외국 의사를 못 미더워하는 영국 부자들은 사설 병원을 찾게 되고, 그러다 보니 영국 자국 의사는 영국 사설 병원으로 이동한 것이다. 영국 부자들에게는 자국 의사에게 진료받는 비용이 높아진 것에 그치겠지만, 영국의 평범한 사람에게는 그 기회가 사라질 위기인 것이다. 모든 재난이 그렇듯 '고령화 재난'도 약자에게 더 타격을 준다는 게 영국에서도 증명되고 있다. 주재원으로 3년 동안 영국에서 살았던 한 대기업 임원의 증언이다.

"저희 회사는 꽤 든든한 보험을 가입해 줬는데도, 영국 최고 사설 병원은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수술이 필요한 큰 질병은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와서 받는 게 최선이었어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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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찬 의학전문기자 dongchar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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