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공간서 벌어지는 잇단 참사·재난에 "심리적 동일시"
사고 현장에 놓인 국화꽃 |
(서울=연합뉴스) 박형빈 홍준석 기자 = "지난주 금요일 회사 동료들과 회식 1차를 마치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는데…"
광화문 인근 직장인 박모(33)씨는 지난 1일 발생한 시청역 역주행 사고 당시 장면이 뉴스에 나올 때마다 고개를 돌린다.
가해 차량이 무서운 속도로 인도를 집어삼키고 나뒹구는 파편들을 보면 자칫 자신이 희생자가 될 수도 있었다는 아찔함 때문이다.
박씨는 "그 뒤로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릴 때, 대로변 인도를 걸을 때 혹시 차가 이쪽으로 돌진하지 않을까 두려워 차도를 쳐다보게 된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단 한 번의 사고로 9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걷는 인도가 침범당했다는 점에서 느끼는 불안감은 더하다.
양천구에 사는 김명지(27)씨는 "원래 인도에서는 휴대전화를 보며 마주 오는 사람과 부딪치지 않을 정도로만 신경 쓰는데 요즘은 고개를 들고 주위를 살핀다"며 "차들이 쌩쌩 달리는 모습을 보면 갑자기 이쪽으로 방향을 틀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든다"고 했다.
관악구에 사는 편모씨(52)씨도 매일 오가는 귀갓길이지만 요 며칠은 최대한 건물 쪽으로 몸을 붙여 걸어간다고 말했다. 혹시나 차량이 덮쳐오면 조금이라도 멀리 있어 몸을 피하기 위해서다.
'안전펜스가 시민의 안전 지킬 수 있을까? |
시청역 역주행 사건뿐만 아니라 하루가 멀다고 발생하는 크고 작은 인명사고들도 시민 불안감을 키우는 요소다.
지난 3일엔 충격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희생자 중 한명의 빈소가 차려진 국립중앙의료원에 택시가 돌진해 3명의 부상자를 냈다. 지난달 경기 화성시 아리셀 공장 화재로는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특히 2022년 이태원 참사 이후에는 일상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대형 참사에 대한 우려, 이러한 참사를 직접 겪은 피해자는 물론 SNS 등을 통해 현장을 적나라하게 목격하게 되는 대중이 집단 트라우마에 빠지는 현상 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기도 했다.
이번 시청역 역주행 사고 역시 직장인들이 아침 저녁으로 오가는 평범한 일상 공간에서 순식간에 벌어진 참사였다는 점에서 '남 일 같지 않다'는 반응이 많았다.
대학생 안정연(24)씨는 "얼마 전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존재한다는 '하인리히 법칙'에 대해 들었다"며 "요즘 일련의 사고가 끝이 아닌 전초일까 두렵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일상적인 장소·시간에 예측불가능한 재난이 일어나면 시민들이 심리적으로 간접적인 동일시를 느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시민들이 느끼는 불안, 공포감은 과도한 것이 아니라 충분히 가능하다"며 "이번 사고가 늘 발생할 수 있고 대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예기불안(자신에게 어떤 상황이 다가온다고 생각되는 경우에 생기는 불안)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사회가 발전하니 안전장치와 기술적인 발달은 이뤄지지만, 심리적으로는 방심하는 측면이 있다"며 "울타리는 점점 발달하고 있으니 끔찍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심리적으로 방심할수록 더 조심할 필요가 있다"이라고 덧붙였다.
김선현 마음지붕트라우마센터 원장은 "매일 사고 현장을 지나가야 하는 주변 상인과 직장인, SNS에서 사건을 접한 충격이 큰 사람 등은 심리치료를 받는 것이 좋고, 회사에서도 안전 교육과 트라우마를 가라앉혀주기 위한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며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해소되는 사람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 그 충격이 오래가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추모 발길 이어지는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 분향소 |
binzz@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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