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유수연 기자] 배우 설경구가 '돌풍' 비하인드를 전했다.
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는 넷플릭스 ‘돌풍’ 배우 설경구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지난달 28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에피소드가 공개된 ‘돌풍’은 세상을 뒤엎기 위해 대통령 시해를 결심한 국무총리(설경구 분)와 그를 막아 권력을 손에 쥐려는 경제부총리(김희애 분) 사이의 대결을 그린 작품이다.
이날 설경구는 작품 공개 소감에 대해 "94년도에 드라마를 하고 나서, 그때와는 환경이 전혀 다른 드라마를 다시 하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첫 시리즈물이었다. 재밌게 찍었다. 과정이 나쁘지 않았다"라며 "사실은 졸아서 시작했었다. (영화와는) 환경이 완전히 다를 줄 알았다. 영화보다 촬영 시간이 길 줄은 알았지만, 그런데도 여유롭게 찍었다. 물론 제 캐릭터가 거의 안 돌아다니다 보니, 거기서 오는 장점도 있었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처음에 '돌풍'을 하겠다고 하니, 주변에서는 다들 걱정만 하더라. ‘그거 쉽지 않을 텐데?’, ‘그 작가님 쪽대본으로 유명한데?'라는 반응이었다. 그런데 굉장히 빨리 대본이 나왔다. 전작에 같이 했던 배우들이 놀라더라"라며 "당시 제작사에서는 쪽대본 이야기는 안 하고, 최대한 책이 빨리 나올 거라고 하더라. 그래서 안심했다. 이렇게 평소에 쓰지 않는 언어로 쓰인 대본을 쪽대본으로 안 받았다는 게 기적이다. (쪽대본으로 받았다면) 감당을 못했을 텐데, 처음부터 책으로 5권을 내주셨었다"라고 회상했다.
이어 "저는 사실 박경수 작가님을 잘 몰랐었다. 책을 처음에 5권을 받았는데, 그 글이, 일상 말이 아닌데도 힘이 있더라. 저는 완전히 재미있지 않으면 책을 그 자리에서 한 번에 잘 못 읽는 사람이다. 근데 '돌풍'은 5권을 한 번에 읽었다. 그렇게 작가님을 알게 되었고, 호감을 느끼게 됐다. 처음 작가님을 뵀을 때는 ‘나는 1분 1초도 지루한 게 싫다. 내가 지루하면 시청자도 지루하다’고 하더라. 저도 지루하게 읽지를 않았었다. 작가님에 대한 믿음으로 작품을 선택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설경구는 '돌풍'을 통해 1994년 MBC 드라마 '큰 언니' 드라마 데뷔 이후 오랜만에 드라마에 참여했다. 이에 설경구는 "찍어내야 하는 분량이 많고, 호흡도 길더라. 총 12부이지 않나. 영화는 2시간이면 딱 끝나야 하는데, 드라마는 한 회차 40분씩을 모으면, 어마어마한 양 아닌가. 호흡을 놓치는 부분도 있고. 순서대로 찍는 것도 아니고. 박동호라는 캐릭터는 정중앙에 있고, 회차는 바뀌지만 배우들은 계속 들어오니까, 순간 패닉이 오더라. 스스로 제자리걸음 하는 거 같고. 촬영하는 상황은 바뀌고 있는데 같은 상황 같아서 어렵더라. (심지어는) 감독님께 공간 좀 바꿔 달라고 하기도 했다. 제 머릿속에서 진도가 안 나가는 거 같아서 괴롭더라"라며 드라마 촬영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박경수 작가와의 호흡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설경구는 "작가님이 연기로 요구한 것도 없었다. 여기에 중점을 둬서 연기해 달라는 말은 없으셨다. 하루에 찍어야 할 분량이 많다 보니, 하루하루 빨리 돌아가야 했다. 영화는 아쉬우면 한 번 더 가보자, 가 됐는데, 여기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또 영화는 작가의 존재감이 별로 없다. 감독님이 현장에서 (대본을) 바꿀 수도 있고 하는데, 드라마는 작가님의 존재감이 크더라. 저는 영화만 했어서 작가님과 소통을 전혀 생각 못 해봤었다"라며 "작품이 끝나고 나서 소통을 많이 해봤는데, 쑥스러움도 많이 타시고, 사람들 앞에서 말도 잘 못하신다. 제작발표회 때도 엄청나게 긴장하시더라"라고 웃었다.
설경구는 극 중 부패한 세력을 쓸어버리기 위해 기꺼이 손에 피를 묻히기로 결심한 국무총리 ‘박동호’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그는 '박동호'에 대해 "저는 박동호가 현실 인물이라고 생각 안 했다. 판타지라고 생각했다. 이런 사람이 어딨어? 싶었다. 그래도 등장인물 속에서도 판타지가 되면 안 되고, 사람들과 섞여야 한다고 생각했다"라고 떠올렸다. 특히 죽음으로 최후를 맞이하는 박동호에 대해 "깜짝 놀랐다. 감옥에 갇히거나, 그렇게 마무리가 될 줄 알았는데"라며 "저렇게까지 독하게 자신의 것을 지키면서 가는구나 싶었다. 다만 제가 박동호가 아니고 인간 설경구라 그런지, 당시 촬영 때 뒤로 떨어지는데 저도 모르게 와이어 줄을 잡게 되더라. 저도 모르게. 줄이 있는데도 무섭더라"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또한 그는 박동호에 대해 "위험하고 무서운 사람이다. 칼에 꽂히면 거기로만 질주하는 사람이다. 가정사가 잠깐 있긴 했는데, 편집되었다"라며 "만약 실제로 박동호 같은 사람에게 최고 권력을 주면, 위험할 거로 생각한다. 물론 속 시원한 부분도 있겠지만, 전체 과정을 보면 권력을 이용해서 자신의 욕망을 실천한 건데, 그 과정은 더 큰 악이었다고 생각한다. 보시는 분마다 다르겠지만, 이야기 자체가 위험한 신념과 타락한 신념이 부딪힌 이야기라, 저는 정수진도, 박동호 같은 인물도 (실제로) 원하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극 중 '박동호'의 싱크로율에 대해서는 "저는 동호와 달리 신념 같은 거 없다. 신념이 뭔지도 잘 모른다. 주어진 것에만 열심히 한다. 큰 대의는 없다"라고 말한 설경구. 그러나 연기 속 새로움을 추구하는 신념만은 확고했다. 그는 "연기 자체를, 철학을 가지고 하진 않는 거 같다. 누가 안 되게, 내가 할 거를 열심히 하자는 마음이다. 내 철학이 이거야 라는 건, 잘 모르겠다. 추상적인 거 같다. 나한테 주어진 작품을 진짜 열심히 하고, 오늘을 열심히 한다"라며 "연기는 쌓여서 무언가가 되는 건 아닌 거 같다. 저를 재료로 쓰는 연기이기 때문에, 다른 역을 한다고는 하지만, 겹칠 수밖에 없는 괴로움도 있다. 역할도 직업도 다르지만 결국 내가 하는 거기 때문에 겹치고, 해결 방안이 없는 것에 대한 괴로움이 있다. 연기가 쌓인다는 느낌은 잘 안 든다. 새로운 작품 할 때마다 두려움도 있고, 긴장도 하고 그렇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새로운 역할도 해보고, 안 겹치게 하려고 하긴 하는데, 계속 그래도 외형적으로는 겹치는 기분이다. 안 겹친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애를 쓰기는 한다. 이번 '돌풍'에서도 제 딴에는 한다고 했다. 단계별로 욕심낸 게 있다. 이때 다르고, 이때 다른 욕심은 있었다. 그게 보일지는 모르겠다. 계획과 설계는 있는데, 설계만큼은 현실적으로 잘 안되더라. 목표는 있었지만, 쉽지는 않더라"라며 "주변에서 그런 얘기를 하긴 했다. '속도 조절을 하고 다음 캐릭터를 준비해 봐라.'라고. 그런데, 시간이 있다고 준비가 될까? 싶다"라고 털어놨다.
더불어 설경구는 "저는 연기는 연구하거나, 가르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느끼는 거지. 그래서 작품이 안 들어와서 안 하는 경우는 있어도, 재충전하고 다음 캐릭터를 위해 준비하는 시간을 핑계로 작품을 안 하지는 않을 거 같다. 저는 안 겹친다고 생각하면 그냥 바로 작품에 들어 가는 거 같다. 제 딴에는 안 겹친다고 생각한다. 보는 분들은 ‘아유, 지겨워’하실 수도 있지만"이라고 웃으며 "'돌풍'을 하기 전까지는 말로는 ‘책이 좋으면 드라마도 해야죠’ 했는데. 속으로는 조금 관념 같은 게 있던 거 같다. 그런데 드라마 '하이퍼 나이프'(가제)를 차기작으로 또 결정한 거 보니. 속으로 드라마에 대한 관념이 좀 깨진 거 같다. 시리즈여서 안 하는 건 없는 거 같다. 혹시 안 보여준 캐릭터 같거나, 재미가 있다면 또 드라마를 하지 않을까 싶다"라며 포부를 드러냈다.
한편 대통령 시해를 둘러싼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의 갈등과 정치판을 배경으로 쉴 새 없이 휘몰아치는 강렬한 사건들을 밀도 있게 담아낸 ‘돌풍’은 오직 넷플릭스에서 절찬 스트리밍 중이다.
/yusuou@osen.co.kr
[사진]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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