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
김경수 지음 l 필로소픽 l 1만7000원
‘밈’을 아십니까? 길거리에서 “도를 아십니까?”라는 질문을 만날 때보다 더 난감한 질문에 답하려는 야심찬 책이 나왔다. 연세대에서 인터넷 밈을 주제로 쓴 석사 논문으로 트위터 등에서 입소문을 탄 영화평론가 겸 밈 연구가 김경수가 쓴 ‘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이다. 책은 밀레니얼 세대 등장 이후 축적되기 시작한 밈의 발달사를 디씨인사이드 시절 개죽이·아햏햏·싱하형부터 펀쿨섹좌·개구리 페페·민희진 맞다이까지 20년 세월을 넘나들며 추적한다.
지은이가 연구한 밈의 생애주기는 다음과 같다. 사진·만화 등 원본이 유명세를 누린다. 원본의 의미를 풍성하게 하는 짤방 등 합성소스가 등장하고, 이 조합을 가지고 노는 불특정 다수의 암묵적 규칙이 형성된다. 이때 비로소 밈은 인터넷 놀이공동체의 하위문화로서 자생력을 갖게 된다. 레거시 미디어나 (특히) 정부 또는 공공기관이 이들 밈을 주목하기 시작할 때 밈은 그 생명을 잃기 시작한다. 모방과 변주를 통해 일상과 관습의 언어를 벗어나고자 하는 밈의 속성이 기성의 권위가 접근해오는 순간 스스로를 해체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런 밈의 탄생과 죽음의 과정이야말로 밈을 정의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특성인데, 밈의 생명력을 결정하는 요소는 다름 아닌 그 시대의 사회상이다. 세상의 거울상인 ‘매체’(미디어)로서 밈의 모습이다. 밈은 혐오의 무기나 허무의 도구가 되기도 하지만, 그것의 가장 원초적인 기능은 복잡한 감정을 불특정 다수와 유머스럽게 나누려는 다정한 소통이라는 게 지은이의 결론이다. 이런 ‘유희적 욕망’을 통해 “결국 우리가 타인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진실”을 발굴한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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