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총재 "인플레이션 낮아져도 국민 체감 못하는 이유"
한국 물가수준, 주요국 대비 의식주 높고 공공요금 낮아
낮은 개방도, 거래비용, 공공요금 정책지원 문제 해결해야
구조 개선으로 식료품 가격 낮아지면 소비여력 평균 7%↑
공공요금 오르면 소비여력 3%↓…저소득층 선별지원 필요
한국은행이 물가를 제대로 잡기 위한 해결책으로 '농산물 수입, 공공요금 정상화'를 꺼내들었다. 물가 안정이라는 법적 책무를 지닌 한은은 인플레이션이 하향 안정화 기조로 흘러가고는 있지만 통화정책 만으론 주요국 대비 유독 한국만 널뛰는 소비자물가를 대응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18일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에서 "인플레이션은 통화정책으로 대응할 수 있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생활비 수준은 통화정책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면서 "우리 인플레이션이 지난해 초 5.0%에서 올해 5월 2.7%로 낮아졌지만 국민들께서 피부로 잘 느끼시지 못하는 이유"라고 꼬집었다.
한은이 같은 날 발표한 'BOK 이슈노트-우리나라 물가수준의 특징 및 시사점'은 이 총재의 주장을 뒷받침 한다. 한국의 물가수준을 주요국과 비교해보면 전체 물가수준은 주요 선진국 중에서는 평균 정도이지만 의식주 비용은 더 높고 공공요금은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국의 식료품 물가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코노미스트인텔리전스유닛(EIU)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기준 식료품 물가는 OECD 평균(100%)보다 56% 비쌌다. 의류와 신발은 61%, 주거비도 23% 높았다. 반면 전기·가스·수도 요금은 36% 낮았다. 대중교통 등을 포함한 공공요금은 27% 낮았다.
가격 격차는 더 심화되는 추세다. 농축산물 가격은 1990년 OECD평균의 1.2배 수준에서 2023년 현재 1.5배 이상으로 높아졌다. 공공요금 전기·도시가스, 대중교통 등 공공요금의 경우 1990년 OECD평균의 0.9배 수준에서 최근 0.7배 수준으로 낮아졌다.
한은은 이런 기현상의 원인이 △낮은 생산성·개방도(과일) △거래비용(농산물, 의류) △정책지원(공공요금)이라고 제언했다. 농산물을 수입해 공급채널을 다양화하고 공공서비스 공급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공공요금을 단계적으로 정상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는 인구당 경작지 면적(0.3헥타르/명)이 매우 작고 영농규모도 영세해 노동생산성이 OECD국가중 하위권(27위)에 속한다. 그나마 유지하던 과일‧채소 생산량은 농가 고령화에 이상기후로 작황이 부진하게 되면서 2010년대 이후 크게 줄었다.
농가판매가격의 누적 상승률이 소비자가격 대비 낮은 이유로는 도·소매업체의 시장지배력이 큰 게 문제점으로 꼽혔다. 농산물 유통비용률(유통비용/소비자가격)은 1999년 39%에서 2022년에는 50% 수준으로 높아졌다.
한은 조사국은 "향후 고령화로 재정여력은 줄어드는 반면 기후변화로 인한 작황차질은 생활비 부담을 계속 증대시킬 가능성이 큰 만큼 생산성 제고, 공급채널 다양화 등과 같은 구조적 측면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생산비용 대비 낮은 공공요금은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공공서비스 질 저하, 에너지 과다소비 및 역진성, 세대 간 불평등 등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친환경 에너지 전환으로 생산비용 상승이 불가피한 상황인 만큼 공공요금을 단계적으로 정상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약 한은 주장대로 구조 개선이 이뤄져 우리나라의 식료품·의류가격이 OECD평균 수준으로 낮아진다면 가계의 소비여력은 평균 약 7%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특히 해당 품목에 대한 지출비중이 높은 저소득층의 소비여력은 더 크게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한은 조사국은 "공공요금이 OECD평균 수준으로 높아진다고 가정할 경우 소비여력이 약 3% 정도 줄어들 수 있으며 공공서비스 지출비중이 높은 저소득층에서 더 줄어들 수 있다"며 "단계적 정상화 노력과 함께 취약계층에 대한 선별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주경제=서민지 기자 vitaminji@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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