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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측서 퇴임후 생활비 요구… 300억 약속어음 만들어 전달했다”

동아일보 곽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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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측서 퇴임후 생활비 요구… 300억 약속어음 만들어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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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노소영 소송 핵심쟁점 관련

‘SK 2인자’ 손길승 前회장 인터뷰

“‘선경 300억’ 유입 메모 사실 아냐

태평양증권 인수는 그룹 비자금… 현 SK㈜ 설립에도 유입 안돼”
손길승 전 SK그룹 회장은 11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자금 300억 원이 최종현 선대 회장에게 유입됐다면 나를 통했을 텐데, 나는 정치인에게 돈을 받아본 적은 한 번도 없다”고 강조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손길승 전 SK그룹 회장은 11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자금 300억 원이 최종현 선대 회장에게 유입됐다면 나를 통했을 텐데, 나는 정치인에게 돈을 받아본 적은 한 번도 없다”고 강조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최태원 SK그룹 회장(64)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63)의 이혼소송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자금 300억 원이 최종현 SK 선대 회장에게 유입됐는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재판부는 300억 원이 SK에 흘러갔다고 판단했다.

동아일보는 SK그룹의 2인자였던 손길승 전 SK 회장(83)을 11일 인터뷰했다. 그는 1965년 선경직물에 입사해 1978∼1998년 선경그룹 경영기획실장을 지내며 최 선대 회장을 보좌했다. 비자금 조성과 정치권 접촉도 그가 맡았기에 항소심 판결문에 언급된 노태우 정권과의 관계, 비자금 문제 등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인물이다. 손 전 회장은 이번 재판에서 약속어음 발행 및 청와대 전달 경위, 태평양증권 인수 당시 자금 마련 등에 대한 진술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번 항소심에서 약속어음 300억 원(1992년 선경건설 명의 발행)이 증거로 제출됐다. 재판부는 약속어음 등을 근거로 노 전 대통령 자금 300억 원이 최 선대 회장에게 유입됐다고 판단했다. 약속어음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노 대통령 비자금 심부름을 하던 이원조 경제비서관이 노 대통령 퇴임 이후 지낼 거처와 생활비 등을 요구했고, 그걸 최 선대 회장에게 전하라고 했다. 일단 생활비 명목으로 월 얼마씩 전달했다. 그러다 정권 말이 되니 이원조가 그 돈을 퇴임 후에도 지속 제공하겠다는 증표를 달라고 요구했다. 그래서 최 선대 회장과 논의한 끝에 이원조가 요구한 금액인 300억 원을 어음으로 주자고 결론을 내렸다. 최 선대 회장은 당시 대부분 지분을 갖고 있던 비상장사인 선경건설을 통해 어음을 만들라고 하셨다. 그래서 내가 지시해 50억 원짜리 6장을 만들어서 봉투에 넣어 (1992년) 이원조에게 줬다.”

―항소심에서 ‘선경 300억’이라고 적혀 있는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의 자필 메모도 처음 제출됐다.

“메모는 어찌 된 것인지 모르겠다. 우리한테 받을 게 있으니 그 액수를 적은 것 같다.”

―노 전 대통령의 또 다른 사돈가였던 신동방그룹 신명수 회장에게는 230억 원의 자금을 맡긴 게 재판에서 인정됐다. ‘선경 300억’이라 적힌 메모도 선경에 300억 원을 전달했다는 의미 아닌가.

“당시 한국 정서에서 아들 장가보낸 집에서는 큰소리칠 수 있어도 딸 시집보낸 집에서는 그러지 못한다. 신동방에는 230억 원을 준 게 사실이니 차용증이든 증표든 받았을 것이고, 그러면서 그 돈의 흐름이 파악됐을 것이다. 하지만 우린 그런 게 없다. (1995년) 검찰의 비자금 수사에서 신동방이 드러났는데, 검찰이 선경을 봐줬겠는가. 선경은 김영삼 정부에서 오랜 기간 표적이 돼 강도 높은 수사를 받았지만 (자금을 맡긴) 흔적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의 아들인 노재헌 씨는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의 장녀 신정화 씨와 1990년에 결혼했다가 2013년에 이혼했다.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이 건넨 300억 원이 선경 자금에 합쳐져 1991년 태평양증권 인수에 들어갔을 거라고 판단했다.

“태평양증권 인수 자금은 그룹 비자금으로 만들었다. ㈜선경과 선경합섬, 유공해운, 유공가스 등 계열사별로 수십억∼100억 원을 준비하도록 했고 출처를 없애기 위해 사채시장에 돌려 타 명의 수표나 현금으로 만들어 태평양증권 인수에 사용했다. 기업이 불법 자금을 만들면 안 되지만 30년 전에는 대기업들이 수시로 비자금을 만들어 활용했다. 금융실명제도 없던 시절이었다.”

태평양증권은 선경그룹에 인수된 뒤 1998년 SK증권으로 사명이 바뀌었다. 2018년 사모펀드 J&W파트너스가 19.60% 지분을 인수하면서 SK그룹 계열사에서 제외됐다.

―재판부는 계열사를 동원해 태평양증권 인수 자금을 만들었다는 증거가 없어 사실로 인정하지 않았다.

“어불성설이다. 탈법을 동원해 자금을 만들면서 그 증거를 남겨 놓는다는 게 말이 되나. 반대로 노태우 정권에서 300억 원을 우리한테 줬다면 거기에 대한 자료나 문서는 왜 없느냐. 그럼에도 재판부는 그건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았느냐. 태평양증권 인수는 1991년 12월이고 어음이 발행된 것은 1992년 12월이기 때문에 (노 전 대통령) 비자금이 태평양증권 인수 자금으로 쓰였다는 것은 성립될 수 없는 이야기다.”


―재판부는 300억 원이 대한텔레콤(현 SK㈜) 설립에도 유입된 것으로 추정했다.

“SK는 경영권이 취약하니 최태원에게 돈을 줘 대한텔레콤 지분을 인수하게끔 하라고 최 선대 회장에게 조언했다. 최 선대 회장이 3억 원 가까이를 최태원에게 현금으로 줬다. 그 돈으로 최태원이 대한텔레콤 지분을 샀다. 대한텔레콤 주식이 여러 번의 합병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SK㈜ 주식이 됐다. 재판부가 말한 300억 원은 전혀 흘러들어 오지 않았다.”

선경그룹은 1991년 선경텔레콤을 설립해 1992년 대한텔레콤으로 사명을 바꿨다. 대한텔레콤은 1998년 SK컴퓨터통신을 흡수합병하며 사명을 SK C&C로 변경했고, 2015년 옛 SK와 합병해 SK㈜가 됐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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