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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이슈 성착취물 실태와 수사

서울대 N번방 또 터졌지만.."단 15명이 1년간 25만건 성착취물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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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개소 후 6년간 지원건수 100만건 넘어..예산·법적 권한 명문화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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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내부 /사진제공=여성가족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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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인 A씨는 수사기관으로부터 자신의 모습이 담긴 불법 촬영물이 유포된 걸 알게 된 후 단 하루도 제대로 잠들 수 없었다. 실시간으로 올라가는 조회수를 보며 유포물이 다른 곳으로 확산되진 않을까 매일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A씨는 "저에 대한 품평까지 사이트에 올라오는데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며 "직장이 보수적인 곳이었는데 행여나 이 사실이 알려질까 너무 무서웠다"고 심경을 털어놨다.


6년간 삭제 등 지원건수 100만건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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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피해 지원 현황/그래픽=윤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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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산하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이하 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센터에서 A씨와 같은 피해자를 지원한 건수는 27만5520건으로 전년(23만4560건) 대비 5만건가량 늘었다. 유해물 삭제가 24만5416건(89%)으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상담이 2만8082건, 수사·법률지원연계가 1819건이었다. 2018년 센터가 개소한 이후 6년간 총 지원 건수는 100만건을 넘어섰다.

실제로 센터는 피해자 상담부터 지원연계, 촬영물 삭제지원과 모니터링 등의 업무를 하고 있다. 온라인 상담, 그루밍(길들이기) 선제적 수사 의뢰, 온라인 사업자 핫라인 운영 등도 맡고 있다. 특히 2019년 'N번방' 사건이 불거지며 센터의 문을 두드리는 피해자도 늘었고, 사회적 관심도도 높아졌다. 이에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등 온라인 공간의 활성화로 센터가 지원한 피해자 숫자는 2022년 7979명에서 지난해 8983명으로 매년 증가세다. 지난해 센터의 플랫폼별 삭제지원 현황은 성인사이트가 47%로 가장 많았고, 검색엔진 30%, SNS 15% 등의 순이었다.


매년 피해자 증가..편집한 영상도 잡는 'DNA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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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서울 중구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서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종사자들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여성가족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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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들의 '잊힐 권리'를 위해 직원들은 발로 뛰고 있지만, 피의자들의 수법 역시 날로 교묘해지고 유포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센터가 일명 '삭제지원시스템 2.0'으로 불리는 DNA(유전인자) 기술을 개발·도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존의 해시(HASH) 기술은 유해물에 흑백이나 반전 등의 편집을 하면 잡아내는게 불가능하지만 DNA 기술은 영상을 조작했더라도 골라낼 수 있다. 현재 센터에선 310개 성인사이트에 올라오는 유해물과 피해자의 영상을 DNA 기술로 비교해 유포 여부를 매일 확인한다.

박성혜 삭제지원팀장은 "해시 기술은 지문처럼 닳거나 변형이 되면 같은 유해물인지 알 수 없지만, DNA 기술은 편집하거나 가공된 것도 찾을 수 있다"며 "해외의 경우 아직 해시 기술을 많이 활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불법 성인사이트에 대해선 수사기관에 의뢰해 운영자 검거 및 사이트 폐쇄까지 이뤄낸 경우도 있다. 강명숙 상담연계팀장은 "지난 2월 센터에 접수된 피해자 총 46명의 영상이 유포된 불법 성인사이트 9곳을 경기북부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했고, 5월에 사이트 운영자를 검거했다"며 "의뢰한 사이트 9곳을 포함해 총 14곳에 대해 폐쇄 조치를 했다"고 강조했다.

텔레그램과 카카오톡 등 접근이 어려운 대화방은 위장 수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박 팀장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형식의 '텔레그램 맛보기 방' 같은 것들이 있다"며 "어떻게든 들어갈 수 있는 모든 방에 침투해 운영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구매할 것처럼 속여 영상을 수집하지만 바로 모니터링해 삭제지원을 하긴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1명이 1년에 1.5만건 이상 삭제..트라우마 앓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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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별 삭제지원 현황/그래픽=윤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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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센터엔 39명(정규직 26명+기간제 13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다. 이중 삭제지원팀 인력은 통상 15~20명 정도다. 지난해 총 24만건이 넘는 삭제지원이 이뤄진 걸 감안하면 1인당 최소 1만5000건가량의 피해영상물을 맡고 있는 셈이다. 박 팀장은 "저희가 최초로 삭제지원을 하다 보니 전문 교육도 없고 스스로 노하우를 쌓으며 서로 멘토가 되는 상황"이라며 "기간제 비율도 적지 않아 정규직 직원들이 업무시간에 멘토를 해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매일 피해영상물을 보다 보니 트라우마가 생기는 사례도 있다. 박 팀장은 "힘들면 음악을 듣거나 각자의 방식으로 '거리두기'하는 법을 터득하며 이겨내고 있다"고 말했다.

불법 성인사이트가 해외에 서버를 둔 경우가 많다 보니 국제공조나 사이트 폐쇄 요청 등의 권한이 담긴 법안 마련도 시급하다. 현재 법률상 센터와 관련한 내용은 '삭제지원을 할 수 있다' 정도만 있는 상황이다. 이런 탓에 현장에선 성인사이트 운영자에게 촬영물을 내려달라 요청해도 어떤 기관이냐며 협조를 해주지 않는 애로사항이 존재한다.

신보라 한국여성인권진흥원장은 "딥페이크, 텔레그램 등을 통한 피해 촬영물을 잡는 게 어려워지면서 기술 고도화 등을 위해 30억원의 예산을 국회에 요청한 상황"이라며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의 효과적인 지원을 위해선 예산 확보는 물론 인력, 법적 권한 마련 등이 절실하다"고 지원을 요청했다.

김지현 기자 flow@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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