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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미중 무역' 갈등과 협상

미국·EU의 중국 전기차 관세폭탄…역사가 알려주는 승자는?[딥다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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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미국이 중국 전기차에 부과하는 관세를 8월부터 4배로(25%→100%) 올린다고 발표했습니다. 지난주엔 튀르키예 정부가 중국산 차량에 40% 추가 관세 부과 계획을 밝혔고요. 이번 주엔 유럽연합(EU)이 그 바통을 이어받습니다. 이르면 12일 중국 전기차에 대한 관세 인상(현재는 10%)을 사전 통보할 전망이죠.

중국 전기차에 대한 다른 나라의 견제가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손 놓고 있다가는 자칫 중국에 전기차 시장이 다 먹힐 수 있다는 위기감이 그만큼 크기 때문인데요. 40년 전인 1980년대에도 자동차 업계에선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당시엔 중국이 아닌 일본이 그 주인공이었죠. 오늘은 자동차 산업의 보호주의를 들여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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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기차를 겨냥한 각 국의 관세 인상이 이어지고 있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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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수출 할당제’의 기억

전설의 명작 ‘스타워즈 에피소드 5 : 제국의 역습’이 개봉하고, CNN이 24시간 뉴스 방송을 시작하고, 비틀스의 존 레넌이 총에 맞아 사망했던 1980년. 돌아보면 ‘풍요의 80년대’의 시작이었지만 당시 미국 경제는 심각한 침체에 빠져있었습니다. 특히 자동차 산업 중심지 디트로이트 경제는 엉망이었죠. 막대한 적자를 기록한 크라이슬러는 파산 일보 직전이고, 자동차 공장 근로자는 10만명 넘게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그해 11월 대선을 앞뒀던 로널드 레이건 공화당 대선 후보에겐 자동차 노조의 표가 절실했습니다. 그는 디트로이트 크라이슬러 공장을 찾아 이렇게 약속합니다.

“정부가 합법적으로 개입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자동차 산업이 정상화될 때까지 일본산 자동차의 홍수를 늦춰야 한다는 점을 일본에 설득할 겁니다.

일본산 자동차의 미국 공습을 막겠다는 공약이었는데요. 싸고, 작고, 연비 좋은 일본 차는 무서운 속도로 미국 시장을 점령해가고 있었습니다. 1976년 8%였던 일본 차 점유율은 2차 석유파동을 거치며 1980년 21%로 뛰었죠. 연간 수입량 182만대. 일본 차가 일본보다 미국에서 더 많이 팔렸습니다. 당시 미국을 휩쓴 하버드대 에즈라 보겔 교수의 베스트셀러 제목은 ‘Japan as Number One(1위인 일본)’. 세계 2위 경제대국 일본에 곧 추월당할 거란 위기의식이 미국엔 팽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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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공화당 대선 후보 시절의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 그는 자유시장주의자로 통하던 인물이었지만, 대선을 앞두고는 일본산 자동차의 홍수를 막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40여 년이 지난 지금, 미국의 자동차 보호무역주의가 다시 등장했다.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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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된 레이건은 이듬해 노골적으로 일본을 압박합니다. 일본 정부도 결국 백기를 들게 되는데요. ‘자발적인 수출 제한 제도’라는 다소 역설적인 이름의 자동차 수출 할당제가 도입됩니다. 일본 차 업체들이 1981년 168만대를 시작으로, 해마다 정해진 물량만 미국으로 수출하기로 한 건데요. 당초 3년 예정이던 이 할당제는 무려 10년간 이어집니다. 미국 입장에선 격차를 따라잡을 몇 년의 시간을 번 셈이었습니다.

자동차 보호무역주의의 결과는?

무역 상대국의 급부상과 미국 자동차 산업의 위기, 대선 후보의 정치적 계산과 보호주의 약속. 어떤가요. 지금의 중국 전기차 관세 인상과 상당히 닮아있지 않나요?

일본 차 수출 할당제는 상당히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제도였습니다. 관세로 치면 60%의 수입 관세를 매긴 것과 마찬가지 효과였죠. 이탈리아·프랑스·영국 등 다른 국가들 역시 미국과 비슷한 할당제를 잇달아 도입합니다. 자, 그리고 나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이와 관련한 연구는 미국에서만 수십 건 쏟아져 나왔는데요.

① 미국 자동차 가격이 올라갔습니다.

일본 차는 물론, 미국·유럽산까지. 미국에서 팔리던 자동차 가격이 일제히 인상됩니다. 차량당 평균 가격이 당시 돈으로 1000달러 넘게 뛰었죠. 차를 더 비싸게 사게 되었으니 당연히 미국 소비자는 그만큼 손실을 본 겁니다. 이러한 소비자 손실 금액은 연간 60억 달러로 추정되는데요. 현재 물가를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177억 달러에 달하는 금액입니다. 할당제의 최대 피해자는 미국 소비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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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1989년 미국에선 일본 자동차 제조사의 조립공장 7곳이 문을 열었다. 아메리칸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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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일본 자동차 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세웁니다.

일본 자동차 기업은 규제를 우회할 수 있었습니다. ‘수출 할당제’는 일본에서 제조된 차량만 해당하니까요. 이후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일본 엔화 가치까지 급등하자, 일본 자동차 제조사는 앞다퉈 미국 현지 공장을 속속 세웁니다.

도요타·혼다·닛산·마쓰다·미쓰비시·이스즈·스바루. 1980년대에만 미국에 7개의 신규 자동차 조립공장이 문을 열었고, 하청업체를 포함해 총 10만개 일자리가 생겨납니다. 보수 싱크탱크 아메리칸캠퍼스는 “할당제 덕분에 더 이상 일본 자동차는 미국 노동자에게 위협이 되지 않게 됐다”고 평가합니다. 보호주의가 국내 산업을 육성하는 효과는 있었던 셈이죠.

1970, 80년대 미국 빅3 자동차 제조사의 미국 시장 점유율 추이. 일본차 할당제가 도입된 1981년 이후, 1984년과 85년에 잠시 점유율이 반등하는 듯했지만, 이후 가파르게 다시 줄어들었다.

③빅3는 옛 명성을 되찾진 못합니다.

할당제가 도입되자 한동안 미국 자동차 제조사 이익은 급증했습니다. 정부 보호 덕분에 자동차를 더 비싸게, 많이 팔 수 있게 됐으니까요. 그럼 빅3는 이 이익을 일본을 따라잡기 위한 품질 혁신과 경쟁력 향상을 위해 썼을까요?

만약 그랬다면 미국 자동차 산업의 위상이 지금 같진 않겠죠. 그 대신 경영진은 자동차와 상관없는 금융·항공기·컴퓨터 기업을 인수하거나, 막대한 보너스를 임직원에게 나눠줬습니다. GM이 1984년 당시로는 엄청난 금액인 25억5000만 달러에 컴퓨터 시스템 기업 일렉트로닉데이터시스템즈를 인수한 게 대표적인 뻘짓이었는데요(1996년 결국 분사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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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 80년대 미국 빅3 자동차 제조사의 미국 시장 점유율 추이. 일본차 할당제가 도입된 1981년 이후, 1984년과 85년에 잠시 점유율이 반등하는 듯했지만, 이후 가파르게 다시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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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3의 매출과 시장점유율은 1985년까진 상승했지만 이후 다시 하락세로 돌아섭니다. 반짝 찾아왔던 기회를 잡지 못한 겁니다. 1989년 뉴욕타임스 기사는 이렇게 한탄했죠. “오늘날 미국 자동차 산업 전망은 디트로이트 생산자들이 일본 수입차의 ‘자발적’ 할당제를 도입하기 위해 워싱턴으로 달려갔던 1980년대 초반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더 불확실하다.

그사이 적응을 마친(미국 제조공장 설립) 일본 자동차 기업과의 격차는 점점 벌어집니다. 결국 2007년엔 도요타는 GM을 제치고 세계 1위 자동차 제조사로 올라섭니다.

관세전쟁의 승자는 누가 될까

기억도 가물가물한 1980년대 일본 차 이야기를 들춘 건 지금의 중국 전기차 때문입니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이 값싼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를 크게 높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40년 전 상황을 대입해 보면 두 가지는 명확해 보입니다. 일단 당장 미국과 유럽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는 건 불가피합니다. 전기차 가격이 더 높게 유지될 게 뻔하니까요. 가뜩이나 예전만 못한 전기차 수요가 더 꺾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컬럼비아대학의 코너 월시 교수는 NYT 기고문에서 이렇게 지적하죠. “이런 관세로 인해 전기자동차는 주로 부자들에게만 제공되는 사치품으로 남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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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전쟁의 승자가 누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역사는 미국에 썩 유리해보이지 않는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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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미국과 유럽 자동차 업체는 관세장벽 덕분에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까요? 이건 어디까지나 기업이 하기에 달렸습니다. 이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헤맨다면, 오히려 격차가 더 벌어질 위험도 얼마든지 있죠. 카토연구소의 스콧 린시컴 부사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일본 차에 할당량을 부과해서 갑자기 빅3가 구해지지도 않았고, 자동차노조가 마법처럼 경쟁력을 갖게 되지도 않았습니다. 혁신적이고 저렴한 경쟁업체로부터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은 현실과 역사를 거스릅니다.”

만약 관세 장벽을 뛰어넘기 위해 중국 전기차 제조사가 현지에 공장을 세운다면 어떨까요. 실제로 일부 국가에선 이런 움직임도 나타납니다. 예컨대 브라질은 룰라 대통령이 ‘수입차에 대한 단계적 관세 인상’ 계획을 밝혔는데요(올해 10%인 관세를 2026년 35%로 점진적 인상). 동시에 이 나라에선 중국 전기차 기업 GWM과 BYD의 공장 건설이 한창 진행 중입니다. 브라질은 이미 중국 전기차의 최대 수출국으로 올라섰죠.

튀르키예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BYD가 유럽의 두 번째 공장 부지를 알아보고 있다는 소식(첫 번째는 헝가리)이 전해졌는데요. 블룸버그에 따르면 튀르키예 정부가 BYD와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하죠. 40%의 추가 관세 부과를 발표한 진짜 목적은 따로 있는 겁니다. 자국 제조업을 키워야 하는 신흥국 입장에선 영리한 전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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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브라질에서 출시된 BYD 전기차 ‘씰’. 올해 1~4월 중국의 대 브라질 자동차 수출은 536% 급증해 10만대를 넘어섰다. 브라질이 중국 전기차의 가장 큰 수출 시장이 된 것이다. BYD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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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미국은? 전문가들은 미국 정부가 중국 전기차 기업의 현지 투자를 막을 게 확실하다고 내다봅니다. 중국 전기차에 대한 관세는 산업 보호의 차원을 넘어서 ‘국가 안보’를 위한 일로 여겨지니까요. 요즘 미국에선 완성차는 물론 중국 배터리 공장도 짓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습니다. 할당제가 일본 자동차 공장을 미국으로 끌어들였던 40년 전과는 다른 상황인데요. CSIS 선임연구원인 일라리아 마조코는 바로 이 점에서 “이것(관세 상향)이 중국보다 미국에 더 나쁠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중국 기업은 새로운 시장을 찾고 있고, 많은 국가가 새로운 기술과 인프라 확보를 위해 이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전기차 분야에서 가장 크고 인상적인 시장인 상황에서 미국이 기술적으로 훨씬 더 고립된 미래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현대차가 소형 세단 ‘엑셀’을 미국에 수출하기 시작한 게 1986년 1월이었죠. 40년 전 미국의 일본 차 할당제는 한국 자동차 기업엔 기회로 작용했습니다. 일본 차가 할당량 제한에 묶여 마음껏 뛰지 못하는 틈을 타서 미국 시장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었는데요. 과연 이번에도 기회를 살릴 순 있을까요. 누가 승자가 될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반사이익을 기대해봅니다. By.딥다이브

자동차 산업을 둘러싼 강대국간의 무역전쟁이 40여년 만에 다시 불붙었습니다. 우리는 그 틈바구니에서 무엇을 얻어낼 수 있을지가 궁금하네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중국 전기차의 질주를 막기 위한 주요국의 관세인상 움직임이 본격화합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40년 전 일본 자동차에도 벌어졌는데요. 1981년 시작돼 10년 간 이어진 ‘자발적 수출 제한’ 제도입니다.

-일본차의 미국 수출이 줄면서 한동안은 미국 자동차 업계가 시장점유율과 이익이 되살아나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빅3는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한 채 날려버렸습니다. 품질 격차는 점점 더 벌어졌고, 1980년대 후반이 되자 미국 자동차업계는 다시 위기에 빠집니다.

-대신 일본 자동차 업체가 미국에 조립공장을 설립하면서 미국 경제엔 플러스 효과가 분명히 있었는데요. 지금의 중국 전기차의 경우 미국이 현지공장 설립을 허용할 것 같진 않죠. 중국 전기차에 대한 무역전쟁이 자칫 미국 자동차 산업을 고립시킬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40년 전 일본차 수출 할당제로 미국 진출의 기회를 잡았던 국내 자동차 업계는 이번에도 기회를 살릴 수 있을까요.

*이 기사는 1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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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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