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에 태평양 밀리환초(環礁·산호초가 띠 모양으로 연결된 곳)로 끌려가 총기 학살과 굶주림 등으로 숨진 조선인이 20세 청년을 포함해 총 218명이라는 일본 학자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7일 일제강제동원 연구자 다케우치 야스토(竹内康人·67·사진) 씨는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주최로 광주시의회에서 열린 ‘강제동원 조선인 밀리환초 칠본(체르본)섬에서의 저항과 학살’ 주제의 기자회견에서 이런 내용을 발표했다.
1990년부터 밀리환초 학살 사건을 연구해 온 다케우치 씨는 “1973년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에 제공한 피징용 사망자 연명부를 일일이 수작업으로 분류한 결과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밀리환초에서 숨진 조선인이 총 218명이라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사망자의 창씨개명 이름과 출신지, 출생 연도, 사망 원인 등을 공개하면서 최연소자는 20세, 최고령자는 53세였다고 밝혔다. 사망자 중 214명은 전남 지역에서 징용됐다고 한다.
밀리환초는 일제가 1942년 3월 비행장 건설 등을 위해 조선인 800∼1000명을 데려가 강제노역을 시켰던 곳으로, 파푸아뉴기니와 하와이 중간에 있다. 일본군은 미군의 봉쇄 작전 때문에 보급이 끊기자 조선인을 살해해 인육을 먹었고, ‘고래 고기’라고 속여 배급했다. 이를 눈치챈 조선인들이 저항하자 기관총을 난사해 학살했다.
다케우치 씨는 밀리환초에서 숨진 218명 가운데 학살 희생자가 55명이고, 그중 30명은 총살했으며 25명은 강요에 의해 자살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밀리환초 사망자는 당시 미국 해군이 조선인을 구조하면서 촬영한 사진 등을 토대로 ‘최소 125명’ 등으로 추정됐으나 일본 정부의 문서를 근거로 정확한 숫자가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역사 교사 출신인 다케우치 씨는 1980년대 말부터 일제강제동원 피해를 연구했다. 1990년 11월 3일자 동아일보 기사를 통해 밀리환초 사건을 알게 된 뒤 30년 넘게 이를 연구해 왔다. 그는 “내년 밀리환초 사건 80주년을 앞두고 피해를 명확하게 밝히는 진상 규명을 해야 역사가 반복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며 “희생자의 유해 봉환과 일본의 사과·배상 요구, 추모 등에 유족이 참여할 수 있도록 명단 공개를 결정했다”고 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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