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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경주 보문호수 따라 걷다 만난 박정희 동상, 10분 걸으니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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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경주보문관광단지 관광역사공원에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 동상이 세워져 있다. 배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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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군사독재 피해자가 버젓이 살아 계신데, 저런 걸 세워도 되나요?”



지난 21일 찾은 경북 경주시 경주보문관광단지(보문단지) 관광역사공원. 공원 입구 주차장에서 보문호수를 둘러싼 길을 5분여 걸었을까. 우뚝 선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을 맞닥뜨렸다. 그 옆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 수행원 3명의 동상이 나란히 섰다. 그곳에서 만난 김아무개(27·인천)씨는 “경주에 와서 조용히 호수 물결을 감상하며 걷다가 박정희, 박근혜 동상을 보고 좀 놀랐다”며 “요즘 시대에 동상이 맞나 싶기도 하지만 그와 별개로 호수의 경관과도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라고 했다.



해마다 천만명이 찾는 보문단지에 때아닌 ‘박정희 우상화’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해 11월 보문단지 안 관광역사공원에 동상 8개와 대형 조형물이 세워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다.



동상을 만든 건 경상북도문화관광공사(이하 관광공사)다. 도 산하기관인 관광공사는 2025년 관광단지 지정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22년부터 공원 재조성 사업에 착수했다. 주요 사업 중 하나가 박정희 동상 건립이었다. 공원 재조성 예산 45억원 중 동상 제작비만 5억여원이 투입됐다. 실제 사진을 본떠 만들었다는 동상 ‘무리’는 한군데만 있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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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4월12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보문관광단지 안 관광역사공원을 둘러보는 모습. 경상북도문화관광공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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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호수를 옆에 끼고 산책로를 따라 10분 정도 걸으니 박정희 동상이 또 등장했다. 이번엔 책상에 앉은 두 아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원래 등나무 쉼터로 조성된 그곳엔 동상만 아니라 ‘보문관광단지가 걸어온 길, 열어갈 미래’라는 이름의 조형물도 세워져 있었다. 가로 40m, 높이 2.5m 규모의 돌판 위엔 △‘관광의 미래를 꿈꾸다’ △대통령이 사랑했던 곳, 경주 △‘관광’의 꽃을 피우다 △‘경주를 개발하라’ 등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된 내용이 빼곡했다. 1974년 5월20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썼다는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라는 붓글씨도 눈에 띄었다. 인천에서 왔다는 최아무개(26)씨는 “역사를 잘 모르는 아이나 외국인이 공원에 왔을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을 지나치게 미화하고 우상화할 것 같아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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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보문관광단지 관광역사공원에 설치된 히스토리월.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1년 작성한 친필 개발 지시서다. ‘신라고도는 웅대, 찬란, 정교, 활달, 진취, 여유, 우아, 유현의 감이 살아날 수 있도록 재개발할 것’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배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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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보문단지를 만든 사실은 인정해야 하지 않느냐는 목소리도 있었다. 경주 토박이라는 권아무개(44)씨는 “보문단지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아이들에게 설명하기는 좋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적 성과를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정도는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결국 ‘우상화’ 논란은 시민단체 반발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16일 경북지역 시민단체 10곳이 참여하는 ‘박정희우상화사업반대 경주범시민운동본부’(가칭)가 꾸려졌다. 이들은 앞으로 경북도청에 항의 방문을 하고, 동상 앞에서 천막 농성을 벌일 예정이다. 최성훈 임시 대표는 “박정희는 군사쿠데타로 국가를 전복하고 유신독재로 나라를 18년 동안 이끈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경주 대표 관광지에 동상으로 세우는 건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고 노골적으로 우상화하려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우상화 지적과 관련해 김일곤 경상북도문화관광공사 본부장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사업을 추진한 것이지 우상화는 아니다”라며 “과거를 알아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민들이 공원을 찾았을 때 보문단지 조성 역사를 알았으면 좋겠다는 취지”라고 했다.



배현정 기자 spr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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