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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의 김정은 평가, 체임벌린의 히틀러 평가 [핫이슈]

매일경제 김인수 기자(ecokis@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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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의 김정은 평가, 체임벌린의 히틀러 평가 [핫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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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대통령의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 [사진 = 김영사]

문재인 전 대통령의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 [사진 = 김영사]


“상응 조치가 있다면 비핵화하겠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약속은 진심이었다고 생각한다”(문재인 전 대통령,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에서)

“여기 있는 남자(아돌프 히틀러)는 일단 약속을 하면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그의 얼굴에서 확인했다고 생각했다.”(네빌 체임벌린 전 영국 총리, 여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무리 노련한 정치 지도자라고 해도 한 두 번의 만남에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기란 매우 어렵다. 문 전 대통령과 체임벌린 전 총리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특히 상대가 작정하고 속이겠다고 덤벼들면 더욱더 그럴 위험이 크다.

1938년 9월 당시 영국 총리였던 체임벌린은 독일을 방문해 히틀러를 만난다. 히틀러는 그에게 독일인이 많이 거주하는 주데텐란트 지역을 차지할 생각이라고 했다. 체임벌린은 그게 원하는 땅의 전부냐고 물었고, 히틀러는 그렇다고 답했다. 체임벌린은 오랫동안 히틀러를 빤히 쳐다본다. 그러고는 그를 믿기로 결심한다. 그는 여동생에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편지 출처는 말콤 글래드웰이 쓴 책 ‘타인의 해석’)

“요컨대 내가 목표로 삼은 일정 수준의 신뢰를 확립했고, 내 편에서 보자면 냉정하고 비정한 면도 있었지만, 여기 있는 남자는 일단 약속을 하면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그의 얼굴에서 확인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영국은 독일과 협정을 맺고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토였던 주데텐란트 지역을 넘겨준다. 그러나 이는 엄청난 오판이었다는 것은 역사가 입증한다.


그렇다면 왜 체임벌린은 그 같은 오판을 했을까. 그는 어떻게 해서든 전쟁을 피하고 싶었다. 이런 그의 마음이 히틀러를 신뢰하도록 이끌었던 것이리라. 주데텐란트 외의 다른 땅을 원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을 믿지 않으면 본격적으로 전쟁 준비를 해야 한다. 눈앞의 전쟁을 거부할 수 없다. 그는 이런 불편한 미래를 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는데, 체임벌린과 비슷한 편향에 빠진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문 전 대통령은 협상을 통한 비핵화를 강하게 추진한 인물. 이게 성사되려면 김 위원장이 진심으로 비핵화 의지가 있어야 한다. 만약 그 의지가 가짜라면, 미국과 한국에게서 원하는 경제적 혜택을 챙기면서 몰래 핵무기를 만들겠다는 게 김 위원장의 본심이라면, 문 전 대통령의 전략은 틀린 게 된다. 그래서 그는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믿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어쨌든 미래는 불확실하다. 어떤 우연에 의해 그 경로를 바꿀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북한과 협상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그럴 가능성이 작다고 해도 북한이 비핵화만 한다면 놀라운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계속 알려야 한다. 동시에 우리는 그 반대 상황도 생각해야 한다. 김 위원장이 북한 전체의 이익이 아니라, 자신과 그 일족의 권력 유지를 최우선한다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지금 우리는 희망을 가지되 냉철함 역시 잊지 말아야 한다. 문 전 대통령은 전자에 치우친 거 같아 안타깝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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