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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축하” “빈자리 클 것” 대통령 사망에 ‘분열된 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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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 등 헬기 사고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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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권력 서열 2위이자 유력한 차기 최고지도자 후보였던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이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급작스럽게 사망하자 이란 사회는 충격에 빠진 모양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20일(현지시간) 5일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다만 다른 고위 지도자들의 죽음 당시 그랬던 것처럼 광범위한 추모 물결은 없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라이시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들은 이번 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모스크와 광장에 모여들었다. 이들은 전날 헬기 사고 소식이 알려진 직후 광장 등에 모여 밤새 탑승자들의 무사 귀환을 기도했고, 이후 라이시 대통령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침통한 분위기 속 추모 기도회를 이어갔다.

시아파 성지 콤에서 활동하는 바시즈 민병대원 모하마드 호세인 자라비는 “그는 열심히 일한 대통령”이라며 “그의 유산은 우리가 살아있는 한 지속될 것”이라고 추모했다. 테헤란에 거주하는 에스마일 미르바히비도 “나라 전체에서 인기가 높았던 인물인 그를 대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그의 빈자리가 클 것 같다”고 애도했다.

그러나 2020년 미국의 드론 공격으로 이란혁명수비대 고위 사령관 카셈 솔레이마니가 사망했을 때처럼 전국적인 애도 물결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대부분의 상점은 정상 영업을 했고 당국 역시 시민들의 일상생활을 크게 통제하지 않았다.

라이시 대통령이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 이후 반체제 인사를 잔혹하게 숙청하고 2022년 히잡 시위 역시 강하게 탄압했다는 점에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는 이들도 상당하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테헤란에 거주하는 학생 라일라(21)는 “라이시가 여성의 히잡 착용에 대한 단속을 명령했기 때문에 그의 죽음이 슬프지 않다”면서 “그러나 라이시가 죽어도 이 정권은 바뀌지 않을 것이란 점 때문에 슬프다”고 말했다.

이란 북서부 라히잔에 거주하는 파리사(55)는 “사고 소식을 듣고 처음엔 안도감을 느꼈다”면서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이런 ‘쉬운 죽음’이 충분치 않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길고 고통스러운 처벌을 받아야 했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온라인에선 라이시 대통령이 주도한 반체제 인사 처형 피해자 유족들에게 ‘은밀한 축하’를 전하는 움직임도 있었다고 통신은 전했다.

라이시 대통령은 검사 시절인 1980년대 정치범 및 반대파 숙청 작업을 주도해 ‘테헤란의 도살자’로 불렸다. 그는 이란·이라크 전쟁 직후인 1988년 부역 혐의를 받는 반체제 인사를 대거 처형한 일명 ‘사망위원회’에서 활동했다. 국제앰네스티는 1979년 혁명 이후 10년간 5000명이 처형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라이시 대통령은 전날 오후 이란 북서부 동아제르바이잔주에서 열린 기즈 갈라시 댐 준공식에 참석한 뒤 타브리즈의 정유공장 현장으로 향하던 중 변을 당했다. 그가 탑승한 헬기는 아제르바이잔 국경에서 가까운 디즈마르 산악지대에 추락했다. 동승했던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외교장관 등 탑승자 9명 전원이 숨졌다.

라이시 대통령의 장례 행렬은 21일 오전 타브리즈에서 시작돼 쿰, 테헤란, 마슈하드 등으로 이어진다고 이란 내무부가 밝혔다. 22일에는 테헤란의 그랜드 모살라에서 대규모 장례식이 국장으로 치러진다. 장례는 23일까지 이어지며 시신은 시아파 성지 마슈하드에 안장될 예정이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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