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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우외환 덮친 대통령 추락사…이란·중동 정세 출렁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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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을 태우고 가던 헬기가 20일(현지시간) 이란 바르즈건 산맥에 추락했다. 이 사고로 라이시 대통령을 비롯한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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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현지시간)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63)의 헬기 추락사는 가뜩이나 불안정했던 이란 국내 정서와 중동 정세가 또 한차례 출렁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란은 탄압과 경제 파탄으로 악화된 민심 속에서 차기 대통령과 최고 종교지도자의 후계자를 이른 시일 내 찾아야 한다. 가자지구 전쟁에 휩쓸린 중동에도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대통령·최고 종교지도자 후계자 동시에 비어…권력 구도 ‘출렁’


외신을 종합하면, 이란 헌법은 현직 대통령이 임기 중 사망하면 최고 지도자의 승인을 거쳐 제1부통령이 대통령의 권한과 직무를 맡도록 규정한다. 또한 부통령, 국회의장과 사법부 수장은 권한대행 임명 이후 50일 이내로 새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를 실시해야 한다. 이에 따라 모하마드 모흐베르 제1부통령(69)이 대통령 권한대행이 됐다.

신정일치 국가인 이란에서 대통령은 최고 종교지도자의 뒤를 잇는 권력 2인자로 꼽힌다. 쥐고 있는 실권은 별로 없지만 최고국가안전보장위원회, 최고문화혁명위원회 등의 의장을 맡는다. 강경 보수 성향이었던 라이시 대통령은 생전 최고 종교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85)의 측근이자 후임으로 꼽혔단 점에서 존재감이 컸다. 따라서 이제 이란 정계는 차기 대통령과 차기 종교지도자를 동시에 물색해야 하는 상황이다.

권한대행이 될 모흐베르 부통령은 라이시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하메네이와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라이시 대통령이 2021년 당선되면서 함께 부통령직에 올랐다. 최고지도자와 연계된 투자기관인 세타드(Setad)의 대표로서 ‘하메네이의 자금줄’로 활동했으며, 핵 또는 탄도미사일 활동에 연루된 혐의로 과거 유럽연합에서 제재를 받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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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이란 동아제르바이잔주에서 헬기에 탑승했다. 이 헬기가 추락하며 라이시 대통령을 비롯한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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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부터 집권 중인 하메네이는 이미 고령으로 인한 노환과 지병을 앓고 있어 후계자 확정이 시급하다. 후계자로는 하메네이의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55)가 라이시 대통령과 경쟁 구도를 형성했던 바 있는 만큼 라이시 대통령 사후 가장 강력한 후계자로 꼽힌다. 최고 종교지도자는 국민의 직접선거가 아닌 임기 8년의 성직자 88명으로 구성된 전문가 회의에서 선출한다. 모즈타바가 최고 종교지도자 자리를 세습할 경우 전문가회의를 비롯한 이란 사회가 ‘이슬람혁명 정신에 어긋난다’며 반기지 않으리란 전망도 나온다.

1979년 이슬람혁명 이래 이란에선 대통령이 임기 중 사망한 적이 없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패트릭 윈투어 에디터는 “모흐베르를 차기 대통령감으로 보는 시선은 거의 없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란의 최고 지도부에게 50일이란 시간은 대통령이자 어쩌면 최고 종교지도자가 될 수도 있는 사람을 추리기엔 짧은 시간”이라고 짚었다.

미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앞으로 며칠 동안은 최고 종교지도자 승계를 포함해 정권의 역학이 재편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라이시의 죽음은 현 정권의 강경하고 보수적인 국내 정책과 공격적인 역내 정책 궤도를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당성 위기 처한 정권·전쟁…격변의 시기 덮친 ‘악재’


이란은 대내외적으로 격변의 시기에 대통령 사망이라는 악재가 덮친 모양새다. 국내적으로 보면, 이란에선 2022년 대학생 마흐사 아미니가 도덕경찰에 구금된 후 의문사한 사건을 계기로 1979년 이슬람혁명 이래 가장 큰 시위가 번졌다. 현재 시위는 잦아들었지만 정권의 억압적 통치를 향한 반감은 남아있다. 또한 통화 가치가 폭락하고 물가상승률이 30%를 넘나드는 암울한 경제도 정권 위협 요인이다. 정치에 대한 불신과 냉소로 인해 지난 3월 치른 총선에선 투표율이 41%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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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국영 방송이 19일(현지시간)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의 헬기 추락 사고를 보도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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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것들이 “이란 지배계급의 정당성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준다”고 뉴욕타임스(NYT)는 평가했다. 알리 바에즈 국제위기그룹(ICG) 이란 담당 국장은 “이란 정권은 국내에서 심각한 정당성 위기에 처해 있다. 이는 이란 당국이 현재 국내에서 얼마나 인기가 없는지를 보여준다”고 NYT에 말했다. 그는 이어 “이란은 이 일대에서 이스라엘 및 미국을 향해 칼날을 휘두르고 있기 때문에 (라이시 사망은) 이란엔 큰 도전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차기 대통령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어떠한 입장을 취할지도 관전 사안이다.

이란이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중동에 끼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이란은 오래도록 ‘이스라엘의 숙적’이자 ‘팔레스타인의 후원자’로 자국을 규정했다. 이란은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지워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 개발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물리적 공격도 감행했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벌어지자 이란은 헤즈볼라를 비롯한 무장세력을 지원함으로써 이스라엘에 압박을 가하는 ‘그림자 전쟁’을 수행했다. 이는 결국 지난 4월 이스라엘의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 폭격을 계기로 이란이 이스라엘 본토를 공격하는 직접적인 무력 충돌에 이르렀다.

현재까지 라이시 대통령 추락사에 이스라엘이 연루됐다는 증거는 없다. 이스라엘 측은 헬기 추락과 라이시 대통령 사망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또한 차기 이란 대통령은 핵협정(JCPOA) 협상 재개를 비롯한 핵 개발 문제에 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지난해부터 협상이 다시 시작됐다는 관측이 나왔으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터지며 전망이 흐려졌다. 라이시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서방과의 협상에 강경한 태도를 취한 바 있다.

크리스티안 아만푸어 CNN 국제수석은 “그의 죽음은 가장 불안정한 시기에 발생했다. 미국과 서방 모두에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이란 핵”이라며 “지난주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란과 다시 대화해 핵 규제를 준수하는지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밝혔다.

이란 당국은 안정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내놨다. 헬기 추락이 보도된 이후 하메네이는 “국정 혼란은 없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란 정부는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이란 국영 IRNA통신이 보도한 사진을 보면, 라이시 대통령이 평소 앉던 의자는 비워뒀으며 그를 추모하기 위해 검은 띠가 드리워져 있었다. 이란 정부는 “라이시 대통령 사후 차질 없이 국정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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