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현지시간) 아제르바이잔과 이란 국경에 위치한 아라스강의 댐 완공식에 참여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왼쪽에서 둘째). 라이시 대통령은 이 행사 후 뒤 헬기로 이동하던 중 실종됐고 사망이 확인됐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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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라힘 라이시(63) 이란 대통령이 헬기 추락 사고로 사망하면서 이란 특유의 정치 체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현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85)와 라이시 대통령과의 관계, 하메네이의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55)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2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이코노미스트, 가디언 등에 따르면 인구 9000만 명의 이란에선 권력이 성직자, 정치인, 군대 사이에 불투명한 방식으로 분산된 듯 보이나 주요 국내·외교 정책의 최고 의사결정자이자 군통수권자는 대통령이 아니라 최고지도자다. 지난달 1일 이스라엘이 시리아 주재 영사관을 공격한 데 대한 보복으로 지난달 13일 이스라엘에 수백 대의 드론과 미사일을 발사하기로 한 결정을 승인한 사람도 최고지도자인 하메네이였다.
가디언은 “이란에서 대통령직은 종종 최고지도자가 비판을 피할 수 있도록 돕는 유용한 희생양 역할을 맡는다”고 지적했다. 라이시 대통령의 전임자였던 하산 로하니도 그런 역할을 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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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지도자의 선정은 88명으로 구성된 ‘전문가 회의’에서 이뤄진다. 이들 중 상당수는 80, 90대다. 이란 성직자들은 여성의 역할, 히잡 시행, 음주 금지 등 문화·사회 문제에 중점을 둔다. 역사적으로 성직자들은 부유한 시장 상인과 유대를 통해 정부 기관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했다.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도 하메네이의 주요 기관이다. IRGC는 육·해·공군·쿠드스군·바시민병대 등 약 25만 명으로 구성된다. 특히 쿠드스군은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 팔레스타인 하마스 등 ‘저항의 축’ 세력을 지원한다.
국내 정치에서 반대파 감시, 탄압도 맡는다. 그래서 혁명수비대를 “그림자 정부”라 부르기도 한다. 이란이 지난달 이스라엘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이란이 적대 행위 확대를 꺼린다는 메시지를 미국에 전달하기 위해 다른 나라 대사를 소환한 것은 이란 외무부가 아닌 이슬람혁명수비대였다.
이런 상황에서 라이시는 전 정부 수장들과 달리 최고지도자와 IRGC에게 도전하지 않았고, 하메네이의 지침을 면밀히 따랐다. 그 덕에 하메네이의 유력한 후계자가 됐다.
그러나 국민에게 인기는 없었다. 집권 후 40%가 넘는 인플레이션, 자국 통화 약세 등을 겪으면서다. 이코노미스트는 “라이시는 자신이 소외시킨 상대적 온건파부터 자신을 무능한 대통령이라고 생각하는 동료 보수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내부 적들을 갖고 있다. 국내의 적들이 그를 죽이려고 공모했다고 의심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차준홍 기자 |
라이시 대통령 사망으로 최고지도자 지위는 하메네이의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물려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지지자들은 그가 고위 성직자이고 최고 역할을 맡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주장하지만, 상당수 성직자들이 이런 세습은 이란의 혁명적 원칙에 어긋난다고 반대한다.
이런 가운데 라이시가 차기 최고지도자로 유력했다는 점에서 사고에 이스라엘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는 지에도 관심이 높다. 이를 두고 이코노미스트는 “이스라엘의 스파이 기관인 모사드는 적들을 암살해온 오랜 역사가 있으나 이란의 격렬한 대응을 불러일으킬 명백한 전쟁 행위인 국가 원수를 암살하는 데까지 간 적은 없다”며 “이란의 중요한 많은 정책 결정에 실제로 최종 발언권을 갖고 있지 않은 매우 인기 없는 정치인인 라이시를 죽이기 위해 그 결과를 감수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이란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 유고시 50일 이내에 새 대통령 선출을 위한 선거가 실시돼야 한다. 부통령 모하마드 모흐베르가 그때까지 대통령직을 맡게 된다. 성직자와 율법학자로 구성된 헌법수호위원회(Guardian Council)가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을 결정한다. 이 위원회는 2021년 대선 전에 수백 명의 예비 후보를 실격시킨 바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란 대통령의 죽음은 권력투쟁을 촉발시킬 것”이라고 예상했다.
백일현 기자 baek.il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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