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셔록 문서로 보는 광주의 진실…미국, 12·12와 5⋅18 당시 신군부 동태 대부분 파악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5⋅18 44주년 및 5⋅18기록물 세계기록유산등재 13주년 기념 국재학술대회가 16일과 17일 양 일간 개최된다. 사진은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한 사회자, 패널 등 관계자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광주 나윤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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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 l 광주=나윤상 기자] 1979~1980년에 발생한 12⋅12와 5⋅18과 관련해 미국 정부가 전두환 등 신군부의 군사적 움직임을 인지하고 한편으론 우려했으면서도, 결국은 신군부를 용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한미연합사는 신군부의 광주 무력진압을 승인하기까지 했다.
16일 5⋅18민주화운동기록관 7층에서 5⋅18 44주년 및 5⋅18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 13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나-들의 오월, 기록을 만나다’는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는 광주시와 국가유산청 주최로 5⋅18민주화운동기록관과 5⋅18국제연구원 주관으로 17일까지 이틀간 개최된다.
16일에는 개회식 및 개막회의와 함께 제1회 구술기록 연구에 대한 학술토론이 이어졌다. 개막회의에 참석한 5⋅18기념재단 이재의 위원은 '팀 셔록 문서로 보는 광주의 진실'에 대해 말하면서, 미국이 1979년과 1980년에 걸친 역사적 사실에 대해 대부분 인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위원은 "팀 셔록 문서에 의하면 미국정부는 12⋅12와 5⋅17 당시 한국군 투입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고, 한미연합사 또한 광주민주화운동 기간 신군부의 광주 무력진압을 승인했다"면서 "미국은 전두환 신군부의 집권 과정에 비판적이었지만 실제로는 용인했다"고 강조했다.
팀 셔록은 전직 미국 언론인으로 5·18 당시 미국 국무부와 주한미국대사관이 주고받은 비밀전보 등을 확보, 1996년 세상에 공개해 그동안 숨겨져 있던 진실을 규명하고, 당시 미국 정부의 역할을 밝혀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 해당 문건에는 5·18 당시 신군부가 광주 시민들을 폭도로 왜곡해 미국의 지지를 받아 무력 진압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시도한 정황 등이 들어있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신동일 조사관도 "미 국방정보국(DIA)에 의해 정보를 수집한 미국은 12⋅12를 일단의 장교들에 의한 계획적인 권력 찬탈 행위라고 규정하면서도 신군부의 우두머리였던 전두환과의 관계 설정에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며 "하지만 미 국무부는 1980년 6월 21일 주한 미 대사관에 내려 보낸 전문을 통해 전두환 장군과 그의 동료들이 한국정부에 대한 군부 통제를 성공적으로 정착시켰고 군이 단합하여 현 조치를 지지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려 사실상 전두환 신군부에게 권력을 안겨주었다"고 설명했다.
도쿄 대학교 마나베 유코 교수는 10⋅29 이후 전두환이 어떤 과정을 거쳐 실권을 장악했는지에 대해 문서를 통해 밝혔다.
마나베 교수는 일본 외무성의 정보를 토대로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 직후 육군 병원으로 옮겼는데 이 병원이 육군보안사령부와 이웃하고 있어 전두환이 가장 먼저 시신 확인을 할 수 있었던 점"을 지적하며 "이후 노재현(당시 국방부장관)이 전두환에게 명령하여 육군보안사령부를 국방부로 파견하고 김재규 등이 도착하자 바로 육군보안사령부로 하여금 중앙정보부를 무장해체 시켰다"고 언급했다.
영화 ‘서울의 봄’에 출연했던 김의성 배우는 "서울의 봄이 왜 이렇게 흥행에 성공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가 몇 가지 화두를 던진 것은 있다"고 밝히며 "이 영화는 군사반란에 대한 대한민국의 심판, 애국자의 재평가, 역사교육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전했다.
kncfe0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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