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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미국 46대 대통령 바이든

마리화나에 빠진 미국… 바이든은 ‘표밭’을 봤다 [워싱턴 아나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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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마리화나 연방 합법화 시동
워싱턴 쇼핑가에 ‘1급 약물’ 판매점
술·담배가 더 나쁜데… 규제 거부감
인종주의 처벌 논란… 청년표 구애

편집자주

‘그레이 아나토미’는 한국에도 팬이 많은 미국 드라마입니다. 외과의사가 주인공이어서 제목에 ‘해부학’이 들어가고 무대는 병원이죠. 여성·인종·성소수자 차별, 가정 폭력 등 사회 병폐 이슈가 극에 등장하고, 바로 이런 요인이 장수 비결로 꼽힙니다. 워싱턴 특파원이 3주에 한 번, 미국의 몸속을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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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화나 흡연자들이 지난달 20일 미국 뉴욕의 데이즈드 카나비스(마리화나) 판매점에 모여 비공식 마리화나의 날(420데이)을 기념하고 있다. ‘420’은 마리화나 관련 하위 문화에서 상징적인 숫자로 통한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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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처럼 그렇게 심각한 물건이 아니에요. 편법을 써서 처벌을 피하는 게 관행이기도 하고 말이죠.”

지난 7일(현지시간) 낮 12시쯤 미국 수도 워싱턴 조지타운의 한 기념품 상점에서 들은 말이다. 사실 이곳은 마리화나(대마) 판매점이다. 부촌 쇼핑가(街) 위스콘신애비뉴에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다. 현행 미국 연방법상 마리화나는 1급 통제 약물로 분류된다. 남용 위험이 어떤 약물보다 크고 의료용으로 쓰지도 못한다. 헤로인, 엑스터시, LSD(리서직산디에틸아마이드) 같은 악명 높은 ‘하드 드럭(강력 마약)’이 같은 부류다. 그런데도 가게가 이렇게 버젓이 영업하고 있다. 5분 남짓한 시간 동안 고객 두 팀이 마리화나를 받아 들고 나갔다.

간판대로 여기서 사고파는 상품은 마리화나가 아니라 기념품이다. 온라인 사이트에서 ‘조지타운 드라이브’니 ‘조지타운 라이츠’니 하는 그림(‘디지털 아트’라 실물도 없다)이나 티셔츠, 가방 등을 먼저 결제하고 오프라인 매장으로 오면 구매한 상품과 함께 사은품을 주는데, 그게 마리화나다. 마리화나를 소지하는 것은 괜찮지만 판매하면 불법인 어중간한 워싱턴 법 체계가 ‘회색시장’을 낳은 것이다. 미국의 각 주(州)나 시(市)는 연방법과 따로 자체 법률을 갖고 있다. 충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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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미국 워싱턴 조지타운에 있는 한 마리화나 판매점. 쇼핑가인 위스콘신애비뉴의 의류 브랜드 랄프로렌 매장 옆에 자리 잡고 있다. 워싱턴=권경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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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 부매니저 라우라는 “교묘하긴(tricky) 하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무엇이 문제냐는 투였다. ‘미국인이 한국인보다 마리화나에 관대한 것 같다’는 인상을 말하자 그는 “그런(관대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왜 별 문제 없는 마리화나를 규제해 일을 번거롭게 만드는 것이냐며 정부를 책망하는 눈치였다. 죄책감은 찾을 수 없었다.

합법화 찬성, 10명 중 9명


라우라가 유난한 게 아니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의 올 1월 조사 결과에 따르면, 마리화나를 합법화해야 한다고 대답한 미국인이 10명 중 9명꼴(88%)이었다. 그중 57%는 향락용(기호용)으로 마리화나를 즐겨도 내버려 둬야 한다고 답했다. 연령대가 내려갈수록 비율은 높아졌다. 18~29세는 93%가 합법화에 찬성했다. 향락용 마리화나도 자유화해야 한다는 응답자가 71%였다.

워싱턴에서는 매년 4월 20일을 전후해 축제도 열린다. 2016년부터 연례 행사가 된 ‘전국 카나비스(마리화나) 축제’(NCF)다. 지난달 19, 20일 열린 올해 축제에는 2만여 명이 찾았다는 게 주최 측 얘기다. 인기 힙합 그룹 우탱클랜과 래퍼 레드맨, 신진 밴드 누치 등이 야외 무대를 꾸몄고, 박람회장은 65세 이상 시니어, 성소수자, 퇴역 군인 등 수요 계층별로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는 파빌리온(임시 건물)들로 채워졌다.
한국일보

7일 미국 워싱턴 조지타운에 있는 한 마리화나 판매점의 내부. 기념품을 사면 마리화나를 사은품으로 주는 ‘회색시장’이다. 5분 남짓 동안 두 팀이 마리화나를 받아 갔을 정도로 장사가 잘 된다. 워싱턴=권경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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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의 마리화나 선호는 별난 구석이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2019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그해 최소 한 번 마리화나를 사용했다고 답한 미국인이 18%였다. 2021년 3월 영국 통계청이 공개한 2020년 자국 성인(18~59세) 마리화나 사용률 5.8%의 3배가량이다. 미국인은 담배보다 마리화나에 훨씬 더 너그럽다. 지난해 CDC 연구를 보면 성인 57%가 담배 판매에 반대했다. 같은 해 향락용 마리화나 합법화 찬성률은 59%였다(퓨리서치센터). 중독성과 폐에 끼치는 해악을 감안할 때 마리화나가 덜 해롭다는 인식이 영향을 미쳤다.

밑바닥에 깔린 정서는 정부 규제에 대한 미국인의 오랜 반감이다. 지난해 11월 보수 성향인 오하이오주에서 주민투표로 통과한 향락용 마리화나 합법화안에 공화당 소속으로 찬성한 의원은 제이미 칼렌더 주 하원의원이 유일했다. 그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제한된 정부와 규제 최소화가 옳다는 신념에 따랐다”고 말했다. 자유로운 선택이 침해될 수 없는 개인 권리라는 미국인의 믿음은 이념 진영을 막론한다. 행복 추구도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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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화나 합법화 찬성 미국인 비율. 그래픽=송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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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세대별 마리화나 합법화 찬성률. 그래픽=송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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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화나는 억울하다는 게 합법화 찬성 측의 항변이다. 영국 옥스퍼드대 출신이라 유명했던 마약상 하워드 막스(1945~2016)는 2015년 영국 BBC방송 인터뷰에서 “어떤 약이 당신에게 살인이나 강간 충동을 일으킨다면 꼭 불법화해야 하지만, 마리화나는 아니다. 오히려 유일하게 합법인 알코올이 그런 약물”이라며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런 만큼 마리화나 사용자가 가진 것은 처벌될 의무가 아니라 보호받을 권리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모건 폭스 전국마리화나법개혁기구(NORML) 정치국장은 본보 인터뷰에서 “책임질 수 있는 성인이 담배와 알코올보다 객관적으로 더 안전한 물질을 사용한다는 이유로 벌을 받아서는 안 된다”며 “그들은 면허를 갖고 있고 당국 규제를 받는 출처로부터 제공된, 안전하고 신뢰할 만하고 저렴한 마리화나 제품에 합법적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합법화는 재앙”이라던 바이든


지난달 17일 NCF의 부대 행사로 워싱턴에서 진행된 ‘전국 카나비스 정책 지도자 회의’(NCPS) 참석자 중에는 2019년 의회 첫 인종 정의(正義) 마리화나 개혁 법안을 발의한 바버라 리 민주당 하원의원도 있었다. 그는 미국 연방정부가 고집한 마리화나 범죄화와 형사 사법 체계에 스며든 인종주의에 의해 흑인 집단이 부당한 대우를 받아 왔다고 여겼다. 실제 퓨리서치센터의 2020년 집계에 따르면 마리화나를 소지하다 적발된 흑인과 백인의 비율이 엇비슷했는데도 체포된 사람은 흑인이 39%를 차지했다. 흑인은 미국 인구의 12%에 불과하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과거 잘못을 바로잡고 규제를 푸는 게 정의를 구현하는 길이라고 판단했다. 2022년 10월 마리화나 소지 전과자 6,500명을 사면했고, 같은 달 보건당국에 마리화나의 통제 약물 등급 재분류 검토를 지시했다. 리 의원은 NCPS에서 “우리는 먼 길을 왔지만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그런 뒤 2주쯤 흐른 지난달 30일 마약단속국(DEA)을 감독하는 법무부가 백악관에 현재 1등급 약물인 마리화나를 타이레놀처럼 처방을 받으면 복용할 수 있는 약물들과 함께 3등급으로 묶을 것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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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미국 워싱턴 펠리세이즈 지역에 있는 의료용 마리화나 판매점. 반경 1,000피트(약 305m) 내에 학교가 5개나 있어 학부모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마리화나에 관대한 미국이지만 여전히 갈등은 존재한다. 워싱턴=권경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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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에서는 연방 합법화에 시동을 걸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세기 동안 마리화나 규제 완화를 추진해 온 75세 고령 얼 블루머나워 민주당 하원의원은 “마약과의 전쟁 50여 년간 연방정부가 취한 가장 중요한 조치”라고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마리화나 자유화로 가는 문을 열었다는 것이다. 다만 회의론도 없지 않다. 폭스 국장은 “완료까지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프로세스의 시작일 뿐”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진정성이 의심되기도 한다. 재선을 노린 정치공학적 발상의 결과일 뿐이라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2019년까지 연방 차원 마리화나 합법화에 반대했다. 상원의원 시절인 1998년에는 청문회에서 “합법화가 재앙이라고 확신한다”고까지 했다. 그렇게 강경했던 그가 올해 보여 주는 모습은 아무리 전향했다 해도 생경하다.

마리화나 사용자 형사 처벌 경감을 지지한다는 게시물을 일부러 4월 20일 오후 4시 20분에 맞춰 엑스(X)에 올린 일이 대표적이다. ‘420’은 마리화나 사용자 사이에서 흡연을 가리키는 일종의 은어다. 1971년 캘리포니아주 샌라파엘고교 학생 몇몇이 매일 오후 4시 20분 모여 마리화나를 피웠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돈다. NCF 날짜가 4월 20일 근처인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암시장 정상화 땐 세금 노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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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슈머(가운데) 미국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1일 워싱턴 연방의회에서 마리화나 합법화 방안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왼쪽은 코리 부커 상원의원, 오른쪽은 론 와이든 상원의원. 두 사람 다 민주당 소속이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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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연방 마리화나 합법화 입법을 다시 추진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NYT는 의회 구도상 올해 11월 선거 전에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내다봤다. 2022년 펜실베이니아 부지사 시절 바이든 대통령에게 마리화나 합법화를 잘 활용하라고 조언한 것으로 알려진 존 페터먼 민주당 상원의원은 얼마 전 NYT에 “보상은 크고 위험은 제로(0)”라고 농담조로 말했다. 국민 건강은 뒷전인 포퓰리즘(대중영합) 정치라는 비난도 공화당에서 제기된다.

하지만 합법화가 영 요원한 일도 아니다. 세수를 바라는 각 주와 연방 간 알력 해소 성격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38개 주에서 마리화나 사용은 합법이다. 24개 주는 의료용뿐 아니라 향락용까지 법으로 막지 않는다. 미국인 과반(54%)이 용도와 상관없이 마리화나가 합법인 주에 살고 있다는 게 퓨리서치센터 1월 조사 결과다.

시대는 변했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갤럽에 따르면 2000년만 해도 31%에 머물렀던 마리화나 합법화 찬성률이 지난해 70%까지 늘었다. 연방 합법화로 마리화나 암시장이 정상 시장으로 전환할 경우 거둘 수 있는 세수가 막대하리라는 게 주 정부들의 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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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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