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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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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진 부처님 다시 세우고 싶은 건 불자로서 당연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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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기적' 마애불 앞에서 기도하는 환풍스님…"부처님오신날 화합의 장 되길"

경주 남산은 '노천 박물관'…국보 칠불암 마애불상군 등 불교 유산 많아


(경주=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법문무량서원학 불도무상서원성 자성중생서원도(法門無量誓願學 佛道無上誓願成 自性衆生誓願度·한없는 법문을 배우오리다 위없는 불도를 이루오리다 자성의 중생을 건지오리다)…."

때 이른 더위가 찾아온 지난 3일 오전 경주 남산 열암곡에 '사홍서원'(四弘誓願)을 독송하는 소리가 목탁 음과 함께 맑게 울려 퍼졌다.

코가 지면의 바위에 닿을 듯 말 듯 한 상태로 엎어진 채 발견돼 '5㎝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주 남산 마애불상 앞에서 얼굴에 땀이 맺힌 스님이 기도하고 있었다. 태백산 각화사 주지이자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모시기 천일기도' 단장인 환풍스님이었다.

연합뉴스

마애불 앞에서 기도하는 환풍스님
(경주=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3일 오전 경북 경주시 소재 남산 열암곡 마애불 앞에서 환풍스님이 목탁을 치며 기도하고 있다.


그는 작년 2월부터 목탁을 들고 마애불 앞에서 섰다. 대한불교조계종이 마애불을 여법(如法·법과 이치에 합당함)하게 모시는 구상을 담은 '천년을 세우다' 프로젝트를 발족하자 같은 해 4월 28일 천일기도 입재식을 봉행하고 본격적으로 기도에 나섰다. 일 년 넘게 기도단을 이끌며 불상을 바로 모실 수 있기를 발원하고 있다.

환풍스님은 "역대 (조계종 총무)원장 스님 3∼4분께서 부처님을 세워 드리고자 하는 원을 세웠지만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며 "이번 (진우스님이) 총무원장이 되고 나서 부처님을 바로 모셔야 하겠다는 큰마음을 가지고 계셔서 나도 (천일 기도단을) 자원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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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의 기적'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불
(경주=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3일 오전 경북 경주시 소재 남산 열암곡 경사면에 놓인 큰 바위 아래쪽에 마애불이 조각돼 있다. 마애불 안면부 맞은 편에는 손상 방지를 위한 고무판이 놓여 있다.


2007년 5월 22일 모습을 드러내 이목을 집중시킨 지 17년이 다 되어가지만, 마애불은 이날도 엎어진 채로 놓여 있었다. 거대한 바위를 등에 진 부처님은 불편한 상황에도 침묵했다.

5㎝의 기적을 상징하는 콧날 앞에는 사각형의 고무판 여러 장이 불규칙하게 겹친 채 놓여 있었다. 외력에 의해 불상이 움직여 안면부가 훼손되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다. 침하와 미끄러짐을 파악하기 위한 계측기가 환자 몸에 꽂힌 주삿바늘처럼 귀, 복부 등 신체 곳곳에 연결돼 있었다. 안면부 주변에는 먼지를 뒤집어쓴 낙엽이 뒹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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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대 설치된 마애불
(경주=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3일 오전 경북 경주시 소재 남산 열암곡 경사면에 있는 마애불에 지지대가 설치돼 있다. 불상은 바위 아래쪽에서 바닥을 향하고 있다.


당국은 불상이 밀려 내려가지 않도록 지지대를 설치하고 보호각도 지었다. 하지만 암반 침하나 미끄러짐을 완전하게 차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문화재청의 '2022년 중점 관리대상 문화재 모니터링 결과보고서'를 보면 2019∼2022년 상시 계측한 결과 암반이 경사면을 따라 미끄러지거나 침하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 하부를 최대 21㎜ 정도 침하시킨 2016년 9월 경주 대지진처럼 지각이 크게 흔들리는 일이 또 벌어지면 마애불이 훼손될 가능성도 있다.

조계종은 넘어진 마애불을 다시 세우기를 바라고 있지만, 불상이 새겨진 길이 약 6.8m 무게 80t 정도의 바위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문화재 당국은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불상이 원래 있던 자리를 특정할 수 없으니 세우는 것은 또 하나의 변형을 가하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고 5㎝의 기적이라는 의미를 살릴 수 있도록 지하에 터널을 파서 방문객이 관람하도록 하자는 제안도 있다. 불교계도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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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측기 설치된 경주 남산 마애불
(경주=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3일 오전 경북 경주시 소재 남산 열암곡 경사면에 놓인 마애불에 침하와 미끄러짐을 파악하기 위한 계측기(화면 오른쪽 기기)가 설치돼 있다.


마애불을 다시 세우고 싶은 것은 불자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환풍스님은 털어놓았다. 다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고 지혜를 모으면 좋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불제자라면 넘어져 계시는 부처님을 보고 바로 세우고자 하는 마음이 당연히 들 것입니다. 일차적으로는 잘 세워 드리는 것이 잘 모시는 것이라는 생각합니다. 만약 그것이 어렵다면 잘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불교계나 국민들이 한마음으로 잘 모셔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환풍스님이 마애불만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마음의 평화, 가정 화목, 농사에 알맞도록 비가 때맞추어 알맞게 내리고 바람이 고르게 부는 '우순풍조'(雨順風調)까지 여러 염원을 담아 목탁을 두드린다고 했다.

그는 "부처님오신날이 불교인의 축제가 아닌 전 국민의 축제가 되어서 화합의 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모든 사람의 마음에 평화와 안락이 꽃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특히 "모두가 잘 살려면 '너'와 '나'라는 구분을 내려놓고 상생해야 한다"며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멈추기를 바란다는 뜻을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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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
[촬영 이세원]


경주 남산에는 마애불 외에도 많은 불상이 있다.

이날 남산에 동행한 진병길 신라문화원장은 "동서 약 4㎞ 남북 약 8㎞ 범위에 절터가 140여곳 있고 부처님(형상)은 100∼110명 정도 계시며, 탑 100기 정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남산은 노천박물관"이라고 말했다.

남산 일대에는 돌이나 바위·나무에 비는 신앙이 있었는데 불교가 유입된 후 이 지역에 풍부한 화강암을 이용해 부처를 조각하면서 많은 유산이 남았다는 것이다.

진 원장은 "남산에는 정으로 돌을 치니 부처님이 나타났다고 표현할 정도로 불상이 많다"며 "신라인들에게 부처님에 대한 간절한 염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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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촬영 이세원]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남산 곳곳에 자리한 부처상에는 불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일곱 부처의 모습을 새긴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국보) 주변에는 봉축 연등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암자를 찾은 이들이 합장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남산의 절벽에 놓인 바위에 새겨진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보물)은 1천년 전과 마찬가지로 경주 일대를 굽어보고 있었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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