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진상규명위 ‘성폭력 피해자’ 간담회 독점 취재
2018년 서지현 검사의 ‘미투’를 보고 용기를 낸 김선옥씨가 공개 인터뷰를 통해 5·18 민주화운동 당시 자신의 피해를 증언했다. 김씨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대에 붙잡혀 고문을 받고 석방 전 수사관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혔고 그의 증언은 그해 국가인권위원회와 여성가족부, 국방부가 공동 구성한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이 발족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조사단은 5개월간의 조사 끝에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피해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법적 권한의 한계와 짧은 조사 기간으로 종합적인 피해 실상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위원회는 2020년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에 기반해 법적 권한을 넓혀 직권 조사를 시작했다. 그결과 1980년 5월 18일부터 이듬해 1월까지 이어진 시위·연행·구금·조사 등 과정에서 일부 계엄군이 자행한 강제추행, 강간, 성고문 등 피해 주장 사건 52건 중 피해자가 사망하거나 조사를 거부하는 건 외에 19건을 조사했고 지난해 12월 그중 16건에 대해 ‘진상규명’ 결정을 내렸다. 조사를 위한 법적 권한을 가진 국가기관이 과거사 성폭력 사건의 종합적인 피해 실상을 규명한 것은 처음이다.
피해자들은 이날 간담회에서 자조모임을 만들자는 논의를 했다. 이들은 앞으로 국가를 상대로 한 정신적 피해 손해배상청구 소송도 함께 진행할 계획이다. 경향신문이 간담회를 독점 취재했다.
“여성 옷 벗기라” 대대장 지시 후 ‘첫 여성 강제 탈의’ 피해 발생
도심 시위 진압·외곽 봉쇄 작전서도 연행·구금, 조사 과정서도 성폭력
“목포에 나같은 피해를 입은 사람이 산다고 해서 만나게 해달라고 했어요.”
후문 담벼락에는 총을 찬 계엄군 5~6명이 있었다. 그들은 김씨의 차량을 멈추게 했다.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한다고 사정했지만 계엄군은 차량 열쇠를 빼앗았다. 김씨는 “한 번만 살려주세요. 살려주면 허란대로 다 할게요”라고 했다. 계엄군은 차에 성냥을 대면서 불을 지르겠다는 협박도 했다. “열아홉에 면허 따서는 저한텐 오로지 그것밖에 없었어요. 차만 불 지르지 마라고 하니까 ‘불 안 지를 것이니 말 들을 거냐’고 하더라고요. ‘허란대로 헐게요’ 했지요.” 이후 계엄군 2명은 차량 뒷좌석으로 김씨를 밀어넣고 교대로 강간했다. 나머지 군인들은 차 밖에서 보초를 섰다. 당시 계엄군에게선 입 냄새, 땀 냄새가 많이 났다. 그들이 차 키도 가져가 집에 들어가지 못했고 다음날 동틀 때 귀가했다. 시가에는 군인에게 차 키를 뺏겼다고만 했다.
사건 이후 조산원에서는 유산기가 있다 했다. 김씨는 그렇게 아이를 잃었다. 자신의 차량에서 강간당한 기억 때문에 한동안 운전을 할 수 없었지만 운전 외에 배운 게 없어 다시 해당 차량을 운전할 수밖에 없었다. 몇 해가 지나 돈이 모였을 때에야 차량을 바꿨다. 강간 이후 남편과의 성관계가 어려워져서 사이가 나빠졌고 아이도 생기지 않았다.
5·18 성폭력 피해자 간담회가 열린 28일 전남대학교 김남주홀에서 참가자들이 치유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춤을 추고 있다. 정효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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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서지현 검사가 ‘미투’ 고백을 하는 것을 보면서 ‘검사도 저러고 살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후 김씨는 방송에서 5·18 민주화운동 성폭력 신고 방송 자막을 보고 정부 공동조사단에 직접 신고했다. 처음 조사관에게 자신의 피해 사실을 말했을 때는 더 잠을 이루기 힘들었다. 잊어버리려고 했던 일을 꺼내는 일은 그의 트라우마를 건드렸다. 그럼에도 위원회 조사에서 그는 말했다. “성폭행당한 일을 잊어버리고, 내려놓으려고 해도 그것만큼은 안 되더라고요. 남들은 5·18 영화도 보러 간다는데 나는 그걸 영화로 보는 것도 싫어요.”
지난해 12월 김씨는 드디어 위원회로부터 ‘진상규명’ 결정을 받았다. 신고한 지 5년 만이었고 사건이 일어난지 43년 만이었다. 위원회 조사를 받으며 자신과 비슷한 피해를 경험한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라면 평생 누구에게도 자유롭게 하지 못한 얘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제가 목포에 있는 그 사람 좀 소개해주면 안 될까요 그랬어요. 만나면 얼마나 좋겠냐고 했죠.”
28일 5·18 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이하 위원회) 간담회에서 민숙씨는 말했다. “그때는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어서 살려준 것만 해도 감사하다 생각했지만 정신과 약을 수년 동안 먹었어요. 너무 힘들고 견딜 수 없더라고요. 나는 봄이 왔다는 아카시아 냄새가 너무너무 싫어요. 어제 우리 손자가 휴가 나왔는데 할머니한테 올 때는 군복 입지 말고 그냥 옷 입고 오라고 했어요.” 그는 말하는 내내 울먹이고 가슴을 부여잡았다. 김씨는 발언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그래도 오늘 우리가 진짜 만났잖아요. 그냥 이렇게 산 것만 해도 감사해요.”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해 성폭력 피해를 입은 피해자가 지난달 28일 광주광역시 전남대학교 김남주홀에서 ‘5·18 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주최로 열린 간담회에서 마이크와 머리띠를 들고 있다. 정효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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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성폭력 피해자들이 만났다. 1980년 이후 44년이 지나서다.
이날 오후 1시10분 광주광역시 북구 전남대 김남주기념홀. 간담회는 2시 시작이었지만 일찍 도착한 이들이 많았다. 제일 먼저 도착한 이남순씨는 어떤 기분이냐는 질문에 “모르겠다”며 희미하게 웃었다.
이날 참여자들은 모두 원 모양으로 앉았다. 모두 평등하게 아픔을 나눠보자는 취지였다. 이다감 상담전문가가 간담회를 진행했다. “전라도 말로 ‘아따 애썼다’는 고생했다는 말이죠. 수고하셨어요. 내가 나한테 얼마나 야박했던지요. 가슴에 손을 대볼까요. 자살 시도했던 분도 계시고 죽지 못해 살았다는 분도 계셔요. 뛰고 있는 심장에 손을 대볼까요. 살아도 살지 않은 것 같았다고, 얼마나 소리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고 하셨어요.”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해 성폭력 피해를 입은 피해자 이남순씨가 지난달 28일 광주광역시 전남대학교 김남주홀에서 ‘5·18 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주최로 열린 간담회에서 ‘나비포옹’ 자세를 하며 눈을 감고 있다. 정효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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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다감 상담전문가가 두 팔로 몸을 감싸는 ‘나비 포옹’ 자세를 유도하자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부끄러워서 얼굴 보고 싶지 않다던 분, 뭐가 좋은 일이라고 모이냐고 했던 분, 너무 외로웠고 이 피해를 당한 사람이 나 혼자인 줄 알았다, 함께 하고 싶었다는 분도 계셨어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하고 싶다고 하셨죠.”
피해자들 앞에는 초록색 원 모양 천 위에 올려진 꽃 ‘작약’과 작은 조각상 ‘여신상’이 있었다. 5월에 피는 작약의 꽃말은 ‘정이 깊어 떠나지 못한다’이다. 이 위원은 “여신상은 어떤 피해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의 온전함을 훼손시킬 수 없다는 걸 표현했고 작약은 오늘 끝날 때 정이 깊어가지고 또 만나야지 하는 마음을 가지셨으면 좋겠어서 준비했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1980년 5월 18일 최초 투입된 제7공수여단이 “여성의 옷을 벗기라”는 대대장의 지시를 받고 작전을 수행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지시 이후 ‘첫 여성 강제 탈의’ 피해가 발생했다. 도심 시위 진압작전 단계에서 일부 계엄군은 주택가 차량 안에서, 군용트럭으로 이동 후 강간한 것으로 드러났다. 외곽봉쇄작전 단계에서도 성폭력이 일어났다. 일부 계엄군은 도심 외곽으로 여성들을 끌고 가 강간했고 호송 차량 또는 상무대 등 연행 단계에서도 강제추행, 강간이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5·18 운동에 참여한 여성들을 구금하고 조사하는 과정에서 성고문도 있었다.
“만약 3명만 증언했다면 누구도 믿지 않았을 겁니다. 여러분들이 함께 증언을 해주셨기에 진상규명을 할 수 있었어요. 52명 중에 거절하신 분들도 많았고 돌아가신 분, 정신병원에 계신 분들, 알츠하이머 때문에 증언할 수 없는 분들이 많았어요. 증언해주신 여러분들이 주인공이고 산 증인이세요.”(이다감 상담전문가)
이날 1번, 181번 등 사건 번호로 되어 있었던 피해자들이 처음 자신의 이름을 공개했다. 10명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어렵게 꺼냈다. 성폭력 사실에 대해서 말할 때는 호흡을 골랐고 피해 사실을 자세하게 말하지 못했다. 이들은 간담회를 위해 ‘5·18과 오늘의 나’를 상징하는 물건을 가져와 자신에 대해 표현했다.
“저는 이지순(가명)입니다. 5·18 때 열아홉 살이었어요. 고3 때 대검으로 맞았고 이렇게 살게 됐어요. 44년이라는 세월이거든요. 그때 기억이 너무 생생해서 악몽 같은 악몽을 살아 왔습니다. 나는 봄이 싫어요. 정말 꽃도 싫고요. 푸름 자체도 싫을 때가 있는데 그나마 그래도 나를 치유해준 게 파란 이파리인 것 같아요.”
이지순씨(가명)는 고등학교 때 책을 좋아했고 글을 쓰고 싶었다. 5·18 당시 가게에서 일하다 집에 가는 길 막다른 골목에서 계엄군 수 명에게 맞고 강제추행을 당했다. 옆에 있던 아저씨가 죽을 만큼 맞는 걸 지켜봤고 극도의 공포를 느꼈다. “지금은 이런 얘기도 할 수 있지만 그 순간에는 아무 말이 안 나왔어요.” 그는 그때 워커에 맞은 자국이라며 정강이 상처를 보여줬다. “이것이 날 44년을 괴롭히고 있어요.” 그는 <봄을 초대하고 싶다>는 시집을 가져왔다. “다 함께 겪은 아픔에 봄을 초대하고 싶어서, 같이 보면 괜찮을 것 같아서 이 책을 가져왔어요.”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해 성폭력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이 지난달 28일 광주광역시 전남대학교 김남주홀에서 ‘5·18 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주최로 열린 간담회에 ‘5·18과 오늘의 나’를 상징하는 물건을 가져와 내놓았다. 정효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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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생생해 악몽 같은 악몽 살아와
봄이 싫고 꽃도 싫고 푸름 자체도 싫어
다 함께 겪은 아픔에 봄을 초대하고파”
윤인순씨(가명)도 그때 열아홉 살이었다. 한 가게에 근무하다 밖을 보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집에 가려고 사장님 댁에 말하러 가는 길 계엄군에게 성폭행당했다. “위원회에서 조사받는 중에 군인이 입은 옷 색깔이 어땠는지 물어보는데 까만 것밖에 안 보였어요. 제가 볼 수 있는 게 없었어요. 눈을 뜨면 죽을 것 같았거든요.” 윤씨는 그림을 잘 그려 학교 다닐 때 인기가 많았다고 했다. 쉬는 시간이면 아이들이 그림을 그려달라고 줄 설 정도였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꿈을 이루지 못한 그는 이날 스케치북과 필통을 가져왔다.
조사팀은 ‘진상규명 의견’으로 전원위원회에 올렸지만 전원위에서 ‘불능’ 결정을 내린 사건의 피해자 이연순씨도 이 자리에 왔다. “반갑습니다. 5·18 당시 나이는…” 이씨는 나이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렸다. 참석자들이 “괜찮아 괜찮아요”라며 그를 다독였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해 성폭력 피해를 입은 피해자 이연순씨가 지난달 28일 광주광역시 전남대학교 김남주홀에서 ‘5·18 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주최로 열린 간담회에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4.04.28. 정효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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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였던 이씨는 당시 ‘버스 안내양’이었다. 도청 앞에 버스가 도착했을 때 군인 두 명이 학생들을 끌고 내려갔고 한 명이 남아 있었는데 자신을 붙잡았다. 옷을 앞뒤로 잡아당기더니 자신의 몸에 올라탔고 저항도 할 수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온몸이 처참한 상태였다. 옷은 다 찢어지고 군인은 달아났고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그는 “평생 말도 못 하고 가슴앓이만 하고 지내왔다”며 “그때는 그래도 죽이지 않고 짓밟고만 갔다는 게 다행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남순씨가 계속 울먹이며 말하는 이씨의 어깨를 계속 토닥이며 “살아준 것이 다행이지”라고 말했다.
이씨가 피 흘린 상태에서 집에 가니 엄마는 “성폭행 이런 거 말도 하지 마라”고 했다. 며칠 후 치료를 받으러 전남대병원에 갔다가 피 흘리는 사람이 응급실 앞에 줄을 너무 많이 서 있어 병원에 들어서지도 못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여기 와서 이런 말이라도 하니까 가슴이 후련하고요. 아직은 뭐 해결된 게 없어요. 그래도 제가 용기가 있는 거잖아요.” 다들 박수를 쳤다.
윤경회 위원회 조사4과 3팀장은 “조사팀은 피해자를 어렵게 설득해 조사했는데 그 결과가 ‘진상규명’이 아닌 ‘불능’ 결정이 내려졌다”며 “국가가 피해자에게 43년 만에 보내는 종이 쪽지가 ‘너의 피해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내용이라는 게 굉장히 어려웠다. 살면서 처음으로 애간장이 녹는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지난해 12월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진상규명 조사보고서를 의결했고 6월 종합 보고서를 채택한다. 윤 팀장은 “이 보고서의 첫 번째 독자는 피해자 선생님들이라고 계속 생각했다”며 “우리 모두 함께 한 합작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5·18 성폭력 피해자 간담회가 열린 28일 전남대학교 김남주홀에서 참가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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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들은 이날 간담회에서 조사 결과가 어떻게 입증됐는지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자신의 피해 사실이 국가로부터 어떻게 규명됐는지 확인하는 순서다. 위원회는 진술조사, 실지조사, 기록조사를 통해 피해를 입증했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군과 경찰에 대해 총 127회, 참고인에 대해서 71회 조사를 했고 이때 또다른 성폭력에 대해 제보를 받기도 했다. 실지조사는 4년 동안 48회 다녀왔다. 피해자의 동선을 확인하거나 주변 주민들을 탐문하기 위해 피해 현장을 찾았다.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당시에 없던 아파트나 도로가 생겨서 위치관계 파악이 어려울 때는 항공사진을 이용해 피해 장소 추정지를 나타낼 수 있었다.
현재도 성폭력 사건은 하루 이틀만 지나면 입증하기 어렵다. 40년 이상 지난 시점에서 피해 사실을 입증할 수 있었던 방법 중 하나가 의료 기록이었다. 권하예 위원회 조사관은 “의료 기록은 선생님들의 지난 40년 삶의 기록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6월 26일 활동을 마친다. 이후 피해자들이 지역사회 여성단체와 변호사 단체, 광주광역시와 시의회 등에서 필요한 정보를 제공받는 것도 중요하다. 이들은 앞으로 국가를 상대로 한 정신적 피해 손해배상청구 소송도 함께 진행할 계획이다. 정다은 시의회 5·18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이제 시의회, 변호사단체, 여성단체에서 여러 방면에서 여러분들 옆에 있겠다고 말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며 “여러분들께서 5·18 역사를 위해 용기내 진술해주신 것처럼 보답을 하겠다”고 말했다. 광주 여성단체연합 젠더폭력특별대책위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광주전남지부)은 정서·심리적인 지원과 법률 지원을 할 계획이다. 이소아 변호사는 “양측이 선생님들의 양쪽 손을 하나씩 잡고 가고자 하니 믿음을 주시고 적극적으로 따라와 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이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개인의 아픔을 세상에 내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다감 상담전문가는 “선생님들이 아직 세상에 나가서 목소리를 내기에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때까지 우리 손을 좀더 잡아달라고 했다”며 “선생님들이 해야 할 일을 할 것이고 피하지 않겠다고 하시니 좀 안내해주고 이끌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5·18 성폭력 피해자 간담회가 열린 28일 전남대학교 김남주홀에서 참가자가 가져온 물품을 소개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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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빛나는지, 얼마나 멋진 인연들인지 말로 다 전할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참석자들은 다같이 춤을 추는 시간을 가졌다. ‘느룹나무 춤’으로 불리기도 하는 엘름댄스(Elm Dance)를 배우기 위해 참석자들은 이다감 상담전문가의 지도에 따라 팔과 다리, 손과 발을 움직였다. 5분여간 배우니 쉽게 출 수 있는 춤이었다. 엘름댄스는 1986년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 사고 때 인간을 대신해 방사능비를 맞고 죽어간 느룹나무를 위로하며 평화를 기원하는 춤이다.
동그랗게 모인 뒤 음악에 맞춰 서로의 손을 잡고 오른쪽으로 계속 돌다가 마지막에는 다같이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버리자는 뜻으로 메고 있던 스카프를 공중으로 날렸다. 이남순씨는 “너무 후련하고 시원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세상에 목소리를 낼 계획이라고 했다. “이제 나이도 들었고 있었던 일을 알리려 해요.”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해 성폭력 피해를 입은 피해자 정현순씨가 지난달 28일 광주광역시 전남대학교 김남주홀에서 ‘5·18 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주최로 열린 간담회에서 스카프를 하늘로 던져 올리는 치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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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성폭력 피해자들은 앞으로 ‘자조모임’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지순씨는 “이제 목소리를 같이 내야 하니 5월 초나 중순에 같이 만나자”고 제안했다. 다른 피해자들은 “끝까지 같이 가요” “우리는 무조건 같이 해야지”라고 화답했다. 부상자회·유족회처럼 모임 이름을 고민해보자는 의견도 나왔다. 이씨는 “‘치유’가 들어가는 예쁜 이름을 짓자”고 말했다.
위원회는 조사를 거부했던 피해자들이나 감춰진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여성단체들에 연계할 계획이다. 윤경회 팀장은 “위원회의 진상규명 결정은 시작”이라며 “고립되고 감춰졌던 피해자들이 세상에 나와 목소리를 낸다면 집단의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피해자의 증언이 첫 진상규명 조사를 이끌어냈듯이 개인의 증언이 위원회의 조사로 역사의 기록이 되는 것을 지켜본다면 가려진 피해자들을 공론장으로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며 “성폭력 피해를 말하는 것이 당당한 권리라는 것을 위원회도 최선을 다해 전하겠다”고 말했다.
▼ 임아영 젠더 데스크 겸 플랫팀장 layknt@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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