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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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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년 만에 처음 만난 5·18 성폭력 피해자들 [플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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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성폭력 피해자’ 10명 서로 처음 만나 손 잡아

‘서지현 검사 미투’에 용기 얻은 김선옥씨, 38년 만에 피해 증언하며 공동조사단 발족

2020년 위원회 직권 조사로 피해 실상 확인, 피해 주장 19건 중 16건 ‘진상규명’ 결정

“지난 44년은 제게 불리했고 지옥이었거든요. 앞으로는 이 사탕처럼 달콤하게 살고 싶어서 갖고 왔습니다. 다른 건 모르겠고 아주 반갑다는 거 하나하고요. 우리 열심히 끝까지 가자는 거요. 이미 이렇게 왔으니 끝까지 가고 싶네요.”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해 성폭력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 10명이 처음 만났다. 1980년 이후 44년 만이다. 1번 피해자, 181번 피해자 등 숫자 뒤에 드러나지 않았던 피해자 10명은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공개했다.

지난달 28일 5·18 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이하 위원회)는 광주광역시 북구 전남대 김남주기념홀에서 “2024년 봄 당신을 만나고 싶었습니다”라는 제목의 간담회를 열었다. 5·18 당시 성폭력 피해자인 이미영씨(가명)는 이 자리에 어릴 때 문방구에서 팔던 눈깔사탕을 가져와 “끝까지 함께 하자”고 말했다. 나머지 참석자들이 모두 박수를 쳤다. 경향신문이 간담회를 독점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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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성폭력 피해자 간담회가 열린 28일 전남대학교 김남주홀에서 참가자들이 진상조사 결과 발표를 듣고 있다. 정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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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1980년 광주에서 ‘버스안내양’으로 일했다. 스물한 살이었다. 공수부대원들이 버스에 타더니 청년들을 마구 구타했고 버스 바닥에 피가 엄청 흐르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버스를 더 이동시킨 계엄군 3명 중 2명이 이씨를 저수지까지 끌고가 강간했다. 나머지 1명은 “안 하겠다”고 말한 것을 기억한다. 사건 이후 버스 회사에서는 회사 이미지가 추락한다고 입단속을 시켰다. 평생 두통 때문에 신경안정제를 먹었다. 1980년 첫 자살 시도를 했고 결혼 전에도, 후에도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

피해를 당할 때 눈을 감은 것을 후회한다. “눈을 감는 순간 피해자가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후 눈을 감으면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잠을 자기가 힘들었다. 2019년 아들이 직업 군인이 되었는데 당시 통곡하며 말렸다. 아들은 엄마가 왜 군인을 싫어하는지 영문도 모르고 집에 잘 오지 않는다. 2014년 자궁경부암 선고를 받고 상담선생님에게 성폭행당한 것을 얘기하고 죽으면 국립5·18민주묘지에 잠들 수 있냐고 물었다.

5월이 되면 여전히 힘들지만 그는 이날 무릎 수술을 앞두고도 간담회에 참석했다. 이씨는 “반갑고 너무너무 보고싶었다”고 말했다.

피해자들 중 일부가 위원회에 먼저 서로를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오랫동안 가족들에게조차 성폭력 피해를 말하지 않았던 피해자들은 고립돼 있는 경우가 많았다. 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성폭력 피해 조사와 상담을 지원했던 이다감 상담전문가는 “개인으로 고립돼 있던 피해자들이 함께 세상에 나와 집단으로 첫 발을 내딛다는 자리”라며 “서로가 서로의 피해에 대해 ‘증언자’가 되어주는 자리기도 하다”고 말했다. 윤경회 위원회 조사4과 3팀장은 “19명이 증언했기 때문에 서로의 피해가 서로의 피해 사실을 견인했고 국가 폭력 사건에서 성폭력 피해의 유형이 드러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18년 서지현 검사의 미투를 보고 용기를 낸 김선옥씨가 공개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피해를 증언했다. 38년 만의 미투였다. 김씨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대에 붙잡혀 고문을 받고 석방 전 수사관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혔고 그의 증언은 그해 국가인권위원회와 여성가족부, 국방부가 공동 구성한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이 발족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조사단은 5개월간 조사 끝에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피해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법적 권한의 한계와 짧은 조사 기간으로 종합적인 피해 실상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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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해 성폭력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이 지난달 28일 광주광역시 전남대학교 김남주홀에서 ‘5·18 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주최로 열린 간담회에서 위원회의 진상규명 결과 발표를 듣고 있다. 정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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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는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에 기반해 2020년 법적 권한을 넓혀 직권 조사를 시작했다. 피해자들은 국가가 5·18 당시 성폭력 피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반성한다는 입장을 접한 후 진상규명에 대한 기대를 품고 피해 조사를 신청했다. 위원회는 1980년 5월 18일부터 이듬해 1월까지 이어진 시위·연행·구금·조사 등 과정에서 일부 계엄군이 자행한 강제추행, 강간, 성고문 등 피해 주장 사건 52건 중 피해자가 사망하거나 조사를 거부하는 건 외에 19건을 조사했고 그중 16건에 대해 ‘진상규명’ 결정을 내렸다. 조사를 위한 법적 권한을 가진 국가기관이 과거사 성폭력 사건의 종합적인 피해 실상을 규명한 것은 처음이다.

만남은 쉽지 않았다. 평생 숨겨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온 성폭력 피해를 밖으로 꺼내놓는 건 이들에게 어려운 일이었다. 이날도 원래 11명이 만날 계획이었지만 1명은 당일에 얼굴을 드러내지 못했다.

이날 간담회는 피해자들에게 직접 조사 결과를 설명하고 그들에게 조사에 대한 의견을 듣는 자리기도 했다. 윤경회 위원회 조사4과 3팀장은 “이러한 과정이 국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치유적인 경험이 되도록 하려 했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6월 26일 활동을 종료한다. 이후 피해자들이 지역사회 여성단체와 변호사 단체, 광주광역시와 시의회 등에서 필요한 정보를 제공받는 것도 중요하다. 이날 간담회에는 피해자 10명과 위원회 안종철 부위원장, 윤경회 팀장, 이다감 상담전문가 등 6명, 정다은 광주광역시의회 5·18특별위원회 위원장, 차경희 광주여성단체연합 젠더폭력특별대책위원장, 이소아 변호사(광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 이춘희 전 조사4과 3팀장, 연구를 맡았던 신상숙 서울대 여성연구소 연구원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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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해 성폭력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이 ‘5·18 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주최로 열린 간담회에 가져온 물품들이 놓여 있다. 이미영씨(가명)가 가져온 ‘눈깔사탕’이 가운데 보인다. 정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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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앞으로 국가를 상대로 한 정신적 피해 손해배상청구 소송도 함께 진행할 계획이다. 또 이날 간담회에서 자조모임을 만들자는 논의를 했다. 신상숙 서울대 여성연구소 연구원은 “성폭력 사건은 피해자들이 그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경우가 많아 오히려 피해자가 의심받는 경우가 많은 것이 특징”이라며 “한 사람 한 사람의 경험은 의심받을 수 있지만 피해자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준다. 또 함께 말한다는 사실 자체가 역사적으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서로 돕고 이끌어주고 믿어주는 과정이 사회적 공론화 과정에서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춘희 전 팀장은 “선생님들이 얼굴을 자랑스럽게 공개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다”며 “개인 개인도 좋지만 이렇게 집단으로 얼굴을 드러내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거였는데 꿈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그는 “선생님들에게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했었다. 서로 힘을 주고 어깨동무하며 좋은 기운을 전파해가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임아영 젠더 데스크 겸 플랫팀장 layknt@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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