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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5 (수)

“한식구라도 같은 타깃 싸움”...허울좋은 K-팝형 멀티레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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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히트 등 하이브 산하 11개 레이블

K-팝 글로벌 성장·자본력 갖추며 도입

장르·기획·타깃층까지 겹쳐 경쟁 치열

시장특성상 다양성 어려운 건 문제

헤럴드경제

하이브 산하 레이블의 K-팝 아티스트. 어도어의 그룹 뉴진스(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빅히트뮤직의 방탄소년단,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의 투어스, 빌리프랩의 아일릿 [어도어·빅히트뮤직·플레디스·빌리프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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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도 없고 독립성도 사라진 멀티 레이블 시스템....”(민희진 어도어 대표)

빅히트엔터테인먼트에서 출발한 국내 1위 엔터테인먼트 기업 하이브 산하에는 방탄소년단이 소속된 빅히트뮤직, 세븐틴이 소속된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 르세라핌의 쏘스뮤직, 엔하이픈의 빌리프랩, 지코의 KOZ(코즈)엔터테인먼트, 뉴진스의 어도어 등 국내외에 총 11개의 레이블이 있다.

하이브의 ‘멀티 레이블’ 시스템은 일종의 성공 전략이었다. 특정 대형 아티스트 의존 구조를 벗어나 안정적인 행보와 투자를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 대표는 25일 기자회견을 통해 하이브의 멀티 레이블 시스템에선 자율성과 독립성을 찾아보긴 힘들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그는 “지금의 멀티 레이블은 중앙 통제가 가능한 방식으로 모회사가 있고 그 아래 레이블들이 포진돼있다”며 “각각의 레이블마다 PR과 인사 방법이 다 다를 수 있는데, 중앙에서 통제가 쉬운 방식으로 설계된 것을 허울 좋게 멀티 레이블 체제라고 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민 대표는 특히 현재 하이브의 멀티 레이블에서 방시혁 하이브 이사회 의장이 주도하는 시스템의 문제점을 ‘군대 축구’에 비유했다. 그는 “플레디스·코즈·어도어를 제외하고 빅히트뮤직·빌리프랩·쏘스뮤직은 방 의장이 직접 프로듀싱을 하고 있다. 방 의장이 손을 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장이 주도하면 알아서 기는 사람들이 생긴다. 병장에게 골을 다 몰아주는 군대축구처럼 레이블들이 의장한테 잘 보이려고 이상한 짓을 한다. 최고 결정권자는 그냥 위에 붕 떠있어서 자율 경쟁을 하는 것을 지켜봐야 건강한 멀티 레이블이 된다”고 일갈했다.

멀티 레이블은 K-팝의 글로벌 성장에 발 맞춰 시작된 전례 없는 시스템이다. K-팝의 급격한 성장과 자본력을 갖춘 엔터테인먼트사들이 몸집 불리기 식의 문어발 확장을 한 결과가 지금의 멀티 레이블 시스템이라고 보는 전문가들의 견해도 적지 않다.

롤모델이 된 것은 미국 3대 음반사인 유니버설 뮤직 그룹·워너뮤직 그룹을 비롯, 인디 음악의 베가스 그룹 등의 멀티 레이블 시스템이다. 현재 하이브와 어도어 사태에서 드러난 멀티 레이블의 문제점은 해외에선 단 한 번도 불거진 적이 없다.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는 “해외의 멀티 레이블에선 각 레이블의 색깔이 뚜렷하고, 음악적 장르와 타깃이 조금씩 달라 공존할 수 있었다”며 “산하 레이블들이 다채롭고 조화로운 팔레트를 이뤄 하나의 큰 음반사를 구성할 수 있었다”고 봤다.

반면 K-팝업계에서 멀티 레이블 시스템을 이루며 ‘다양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시장 특성상 쉽지 않은 일이다. K-팝조차 한국 대중음악 시장의 한 장르로 그 안에서 이미 변별성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획일화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임 평론가는 “K-팝시장은 비슷한 장르, 비슷한 기획, 비슷한 홍보 마케팅과 겹치는 타깃층을 상대하고 있다”며 “멀티 레이블이라고 하지만 밥만 한 솥에서 먹지 결국 똑같은 작업장에 나가 서로 밀치며 경쟁하는 것과 같다”고 봤다.

민 대표는 여기에 방시혁 의장 주도의 프로듀싱 시스템이 멀티 레이블의 개성을 가로막았다는 입장이다. 애초 지적한 하이브 산하 레이블 빌리프랩의 신인 걸그룹 아일릿의 ‘뉴진스 카피 의혹’이 그 사례다. 그는 “이 회사(레이블)를 어떻게 운영할 건지 확실한 로드맵을 세운 뒤엔 오너(방 의장)가 균형을 맞춰야 하고, 카피가 나오면 오너가 지적해야 한다”며 “그렇지 못한 이 상황은 서로 제 살 깎아먹기가 됐다”고 말했다.

문제는 좁은 시장에서 경쟁하며 다양성 추구를 이유로 산하 레이블의 색깔과 장르를 의도적으로 구분하는 것도 억지스럽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정으로 K-팝업계의 멀티 레이블 시스템은 음악적 다양성과 개성을 확보하기 보다는 기존의 성공 전략을 답습, 한 회사에서 비슷한 콘셉트와 음악을 반복·재생산하게 된 상황이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전략은 완벽하게 통했다. 현재 국내 최대 음원 차트에서도 하이브 산하 레이블의 모든 아티스트가 국내외 차트를 장악하고 있다.

임 평론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 활동에 있어 선함을 따지긴 힘들 수밖에 없다”며 “지금은 K-팝 시장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나, 기본적으로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와 작은 시장에서 서로 경쟁을 해야 하는 시스템이고 한두 가지 장르에 굉장히 쏠려 있다 보니 불가피하게 발생하게 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각 레이블이 가진 취향과 색깔을 잘 북돋아 사업적인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컨설팅과 방향 제시를 하면서 모회사가 컨트롤 타워 역할을 충분히 하는 것이 이상적인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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