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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세월호 인양 그 후는

"아빠가 배에 태워서 미안해"… 세월호 10주기 눈물의 '선상 추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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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타고 참사 현장 다시 찾은 유족들
"너무 잔인한 4월 빨리 지나갔으면"
진도 팽목항·목포신항서도 추모 행사
한국일보

세월호 10주기인 16일 오전 전남 진도군 맹골수도 세월호 침몰 해역에서 선상 추모식에 참석한 유가족이 국화꽃을 손에 쥔 채 생각에 잠겨 있다. 목포=김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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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0주기인 16일 오전 전남 진도군 조도면 맹골수도 해역에서 유가족 37명과 4·16 단원고가족협의회가 참석한 가운데 선상 추도식이 열렸다. 참사 지역을 표시해 놓은 노란 부표를 본 유족들은 깊은 침묵에 잠겼다. 잠시 뒤 추모의 의미를 담은 뱃고동이 세 차례 사고 해역에서 울려 퍼지자 여기저기서 흐느낌과 울부짖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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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상 추모식에 참석한 유가족들이 서로 끌어안은 채 위로하고 있다. 목포=김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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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사 낭독에 나선 고 김빛나라양의 아버지 김병권(60)씨는 “너희들을 가슴에 묻은 날이 벌써 10년이 됐다”며 “그 배에 태운 걸 후회하지 않은 날이 없다”고 슬퍼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달라”며 “더 이상 부모 가슴 속에 자식이 살아가게 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추모사가 끝나고 304명 희생자 이름이 한 명, 한 명 불리자 배는 다시 울음바다가 됐다. 유가족들은 “영원히 잊지 않고 사랑한다”며 국화를 한 송이씩 바다에 던졌다. 유족들의 마음은 여전히 2014년 4월 16일 그날에 머물러 있었다. 매년 선상추모식에 참석하고 있는 고 우소영양 아버지 우종희(60)씨는 “이제는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데 미안해서 그게 잘 안된다”고 했다. 이어 “4월이 되면 너무 울적해 빨리 5월로 훌쩍 넘어가버렸으면 좋겠다”며 “올해도 세월호 유가족 중 한 명이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자녀 곁으로 떠났다”고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먹먹한 가슴을 부여잡던 유가족들은 그래도 서로의 등을 다독이며 아픔을 이겨냈다.

선상추모식을 마친 유가족들은 목포 북항으로 돌아온 뒤 버스를 타고 다시 목포 신항으로 이동했다. 세월호 선체가 거치된 목포 신항만에는 별이 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한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출입구 옆 미수습자 5명의 영정 사진 앞에는 흰 국화꽃이 놓였고, 추모객들은 바래진 리본 대신 샛노란 새 리본을 걸며 애도를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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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소포걸군농악보존회가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에서 희생자를 기리는 연주를 하고 있다. 진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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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신항에서는 오후 2시 30분부터 ‘목포기억식 행사’가 진행돼 희생자 넋을 위로하는 추모시 낭송과 위령제가 이어졌다. 정다혜양 엄마 김인숙(61)씨는 추모사를 통해 “두려운 건 아이들이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이라며 “저처럼 가족을 잃은 아픔을 평생 짊어지고 갈 사람이 더 이상 생기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희생자 주검이 처음 수습됐던 진도 팽목항에서도 추모·기억식이 열렸다. 팽목항 인근 4·16 팽목기억관을 지키는 단원고 2학년 8반 고 고우재군의 아버지 고영환(55)씨는 “희생자들이 수습된 이 자리를 많은 사람들이 잊지 않고 기억했으면 한다”면서 “참사 후 며칠만 있어야지 한 게 벌써 8년이 됐다. 이젠 한 명이라도 이곳에 남아 아이들을 기억할 공간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해 이렇게 있다”고 씁쓸해 했다.



진도= 김진영 기자 wlsdud4512@hankookilbo.com
목포= 박경우 기자 gw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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